“이맹희씨는 감히 나보고 건희 건희 할 상대가 아니에요. 내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양반이라고. 우리 집에서는 퇴출당한 양반이에요. 자기 입으로는 장손이다 장남이다, 그렇게 말하지만 나를 포함해서 누구도 장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고. (아버지도) 맹희는 완전히 내 자식이 아니다, 하고 제낀 자식이고 숙희는 이건 내 딸이 이럴 수 있느냐, 삼성의 주식은 한 장도 줄 수 없다고 20년 전에 그 때 얘기를 하셔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달 25일 출근길에 기자들을 만나 쏟아낸 독설이다. 이맹희씨는 이병철 전 회장의 장남이다. 이건희 회장의 큰형이기도 하고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이하 직책과 존칭 생략) 이맹희는 지난 2월, 서울중앙지법에 삼성에버랜드와 이건희를 상대로 이병철이 차명으로 신탁한 삼성생명 주식 824만주와 배당금을 돌려달라는 반환청구 소송을 낸 바 있다. 물론 이건희는 “한 푼도 줄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이다.

중앙일보 편집부국장 출신의 이용우씨가 최근 펴낸 ‘삼성가의 사도세자 이맹희’에는 이맹희·이건희 형제의 얽히고 설킨 갈등과 원한의 과정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이씨는 그 시절 중앙일보가 ‘SCIA’(삼성정보부) 역할을 했다고 털어놓고 있다. 대구 주재기자를 오래 지냈던 이씨는 로열 패밀리의 온갖 뒤치다꺼리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병철의 부인인 박두을의 부탁으로 "비운의 사도세자" 이맹희의 몰락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고 한다.

이건희가 공식적으로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물려받은 건 1976년 9월의 일이었다. 장남 이맹희에게 경영을 맡겼더니 6개월 만에 그룹 전체가 혼란에 빠지더라, 오히려 삼남 이건희가 경영 능력이 뛰어나 그에게 그룹을 물려주기로 했다는 게 이병철의 발표였다. 그러나 이맹희가 그룹을 맡아 경영한 기간은 6개월이 아니라 1967년 제일제당의 사카린 밀수사건 이후 7년여에 이른다. 평가가 엇갈리긴 하지만 삼성그룹이 상당한 외형 성장을 이뤘던 기간이다.

동생이 회장에 취임한 이후 이맹희는 동생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조용히 숨어 지낼 생각이었던 모양이지만 온갖 음해에 시달린다. 알코올 중독자가 됐다거나 색정도착증에 걸렸다는 등의 소문이 떠돌았고 정신병원에 감금될 위기에서 도망쳐 나오기도 한다. 같은 고향 출신인 전두환·노태우와도 막역한 사이였는데 그 때문에 역모를 꾀하는 것 아니냐는 누명을 쓰기도 했다고 한다.

몇 가지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이맹희가 경북 의성의 별장에서 지내던 무렵, 학비 마련을 위해 가출한 학생들을 도와준 적이 있었다. 이 학생들이 이맹희에게 받은 돈으로 학교에 돌아가 등록금을 내자 ‘삼성그룹 회장이 어린 소녀들을 꾀어 함께 자고 돈까지 줬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 사실이 대구 법조기자단에게 흘러들어갔고 이 책의 저자인 이용우씨가 그룹의 지시를 받고 진상조사에 나섰다.

조사 결과 이맹희가 학생들에게 돈을 준 것은 사실이었지만 성매매 대가는 아니었다고 한다. 별장 관리인이 ‘회장님’이라고 부르는 걸 보고 학생들이 그를 삼성그룹 회장으로 오해한 것이지만 이 사건은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이맹희·이건희 형제를 더욱 멀어지게 만든다. 애초에 이맹희를 밀어내고 이건희를 옹립했던 가신들은 ‘이맹희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라는 루머를 확대 재생산했다.

이용우씨는 소병해 비서실장에게 “이맹희씨를 직접 만나서 육하원칙에 따라 일문일답식으로 진술조서를 받아오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이용우씨는 “나는 중앙일보 기자이지 삼성 비서실 직원이 아니지 않은가”라며 “그렇다고 회장의 명령이라는데 거역할 수도 없었다”고 털어놓고 있다. 여러 정황을 종합하면 이용우씨가 올린 보고가 이맹희에 대한 오해를 푸는 데 도움이 됐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용우씨는 미디어오늘과 통화해서 “이 책에 담긴 내용은 100% 논픽션(허구가 아닌 진실)”이라고 말했다. 이건희와 이맹희 사이에 실제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흥미로운 것은 이 책 전반에서 여러 차례 묘사되고 있는 삼성그룹과 중앙일보의 관계다. 업무 협조라는 명목으로 기자들이 비서실의 지시를 받아 정보를 수집해서 보고하고 정부와 검찰, 경찰에 압력을 넣고 심지어 회장 일가의 행차에 에스코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회장이 대구에 내려올 때는 언제나 삼성의 전 임직원들은 물론이고 중앙일보 대구 취재반 기자들도 초비상 사태에 돌입하기 마련이었다. 기자들은 기자들 나름대로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취재반장인 나는 그날도 경북도경과 관할 동대구경찰서에 청탁을 넣어 경찰 사이드카 두 대를 지원 받았다. 서대구 톨게이트에서 제일모직 대구공장까지 이 회장 전용 차량을 에스코트하기 위해서였다.”

이건희의 어머니, 장충동 왕할머니로 불렸던 박두을이 중앙일보 기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이맹희의 안부를 묻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야야, 이군아, 니 요새 우리 맹희 소식 몬 들었나.” 이용우씨는 이 책에서 “나는 삼성의 창업지인 대구에 줄곧 주재하면서 삼성가의 크고 작은 일에 관여하고 일종의 민원 격인 잔심부름이나 해결사 노릇도 하면서 이른바 로열 패밀리들과 인연을 쌓아왔다”고 털어놓고 있다.

이밖에도 이병철이 위암에 걸리자 중앙일보 기자들이 전국의 도인들을 수소문하면서 신약을 찾아 나섰다든가 부회장까지 출동해 이맹희의 밀수 사건을 무마하러 나섰다든가 공항 출입기자들이 로열 패밀리들의 공항 의전을 도맡았다든가 하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들이 많다. 지난 1999년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검찰 출두 때 중앙일보 기자들이 “회장님 힘내세요”를 외쳤던 기억과 묘한 데자뷰를 이룬다.

이용우씨는 일찌감치 삼성그룹의 황태자로 낙점됐던 이맹희가 버림을 받은 이유를 창업공신들의 눈 밖에 난 탓이라고 보고 있다. 이맹희는 꼼꼼한 이병철과 달리 저돌적인 스타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와 충돌도 잦았고 가신그룹을 제대로 챙기지 않는다는 불만도 많았다. 이맹희가 자동차에 의욕을 보였던 것과 달리 이병철은 전자를 먼저 키운 다음 자동차와 중화학에 진출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정적인 계기는 둘째 이창희의 투서사건이었다.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징역 5년의 실형을 받았다가 6개월 뒤 보석으로 풀려난 이창희는 경영일선에서 배제되자 아버지와 형을 모함하는 투서를 청와대에 보낸다. 나름 혼자 죄를 뒤집어쓰고 감방에 다녀왔는데 아무런 보상이 없자 벌인 일이었다. 결국 무혐의로 결론 났지만 이를 빌미로 삼성 소유였던 대구대학을 헌납하게 된다. 이병철은 이 사건에 이맹희가 관여된 것으로 의심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맹희의 주장에 따르면 사카린 밀수는 박정희 정권의 방조 아래 이뤄졌다. 이병철이 일본 거래업체에서 리베이트를 받기로 했다는 사실을 청와대에 보고했고 이 검은 돈을 세탁해 정치자금으로 제공하는 조건에 합의한다. 처음에는 5만원 상당에 양변기를 들여와 15만원에 팔 계획이었는데 몇 대 풀지도 않았는데 가격이 뚝 떨어졌다. 그래서 그나마 어느 정도 시장규모가 되는 품목을 고른 게 사카린이었다.

정부와 짜고 친 고스톱이었는데 정부가 이 사실을 언론에 터뜨린 이유는 뭘까. 이맹희는 김종필 당시 공화당 의장이 개입돼 있었다고 주장한다. 사카린 밀수사건을 전해들은 김종필이 정치자금 5억원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이를 언론에 흘렸다는 이야기다. 이 사건으로 삼성은 공사 중이던 한국비료를 정부에 헌납하게 된다. 박정희는 ‘이제 비료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공약을 내걸고 재선에 성공한다.

이 과정에서 성상영 한국비료 사장이 내부 기밀을 청와대에 갖다 바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성상영은 청와대 비서실장을 대동하고 나온 자리에서 퇴직금 10억원을 요구했는데 이맹희가 이걸 3억원으로 깎아 이병철에게 칭찬을 받았다는 에피소드도 흥미롭다. 이때만 해도 이병철과 이맹희의 신뢰는 굳건했던 것처럼 보인다. 나중에 이맹희는 대대적인 숙청 작업에 나서 제일모직에 성씨 성을 가진 여공을 모두 퇴사시키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한다.

이용우씨는 이건희가 회장 자리에 오르기까지 중앙일보가 상당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앙일보 부사장으로 있었던 이맹희는 ‘라지 홍’이라고 불렸던 홍진기 사장을 무시하고 전횡을 휘둘렀다. 홍진기는 이건희의 장인이다. 삼성 비서실의 정보수집 창구 역할을 했던 중앙일보가 이맹희에 대한 부정적인 루머를 확대 재생산해 부자지간을 갈라놓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이용우씨의 관측이다.

이건희의 여동생 이덕희의 남편인 이종기 중앙일보 부회장의 기구한 인생도 눈길을 끈다. 중앙일보에서 온갖 굳은 일을 도맡아 처리했던 이종기는 중앙일보가 계열분리되는 과정에서 차명으로 관리해 오던 자산을 이건희에게 넘기는 작업을 했다. 이종기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중앙일보에는 부고 한 줄 실리지 않았다. 대신 며칠 뒤 이종기가 삼성생명 주식을 무상으로 삼성그룹에 증여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용우씨의 설명에 따르면 이종기가 넘긴 삼성생명 주식은 차명으로 보유하고 있다가 김영삼 전 대통령이 금융실명제를 실시하는 바람에 묶여 있던 자산이었다. 이종기의 죽음을 쉬쉬했던 중앙일보가 삼성이 이종기 명의로 돼 있던 차명자산을 넘겨받는 과정에 명분을 만들어 준 셈이다. 이용우씨는 “삼성가의 치졸하고 비열한 인간미를 드러낸 케이스가 아닐 수 없다”고 적고 있다.

이 책은 상당부분 이맹희에게 우호적인 관점에서 쓰여졌지만 그런 전제를 깔고 읽더라도 이맹희·이건희 형제의 권력 다툼 이면을 다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지난 2007년 삼성 비자금 특별검사 수사팀은 삼성생명 차명주식 978만1200주를 모두 이병철의 상속 재산으로 규정했지만 이 차명자산이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 실명 전환 과정이 적법했는지 세금을 제대로 냈는지 등은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아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병철의 상속재산은 491만4천주뿐이고, 나머지 486만7200주는 이병철의 사망 이후 차명전환된 것으로 상속과는 무관하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만약 상속재산이 아니라면 이맹희나 이건희나 이 주식에 아무런 권리가 없다. 특검의 결론 대로 이 주식이 모두 상속재산이라고 하더라도 증여세 납부 등의 문제가 남는다. 이맹희·이건희의 재산 다툼이 아니라 불법으로 취득한 자산의 사회적 환수가 쟁점이 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삼성가의 사도세자 이맹희 / 이용우 지음 / 평민사 펴냄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