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도 가장 이념·이데올로기지향적인 민족을 들자면 아마 우리 민족을 꼽아야 할 것이다. 조선왕조 5백년동안 성리학(性理學)을 주제로 하는 이념·이론의 계보가 바로 붕당(朋黨)을 형성하고, 논쟁을 해온 민족이 이 민족이다.

주장이 다른 사람을 정통주자학과 다른 이단이라고 해서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면 중세 유럽에서 ‘파문선고’를 내리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대보단(大報壇)-명나라가 망한지 60년이 되던 해인 숙종 30년(1704) 조선왕조가 명나라 황제를 위해 창덕궁에 쌓은 제단이다. 임진왜란때 원군을 보내준 명나라의 신종(神宗)과 마지막 황제 의종(毅宗)이 주인공이었다.

병자호란때 비록 오랑캐인 청(淸)에 항복했지만, 명나라에 대한 의리는 저버릴 수 없다는 주자학적 대의명분을 받들어 모시겠다는 뜻이었다. 겉으로는 청나라에 대해 사대(事大)의 예(禮)를 지키면서 죽은 자를 위해 의리를 지키는 세계에 유례없는 ‘이념의 신도’가 이 민족이다.

이런 역사적 유산이 피묻은 총칼과 공포위에 구축된 전두환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게 한 기적의 어미니였다. 또 반세기만에 정권교체를 이룩할 수 있게 했다. 정권교체가 어떤 성과를 가져올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그것 자체가 정치사적 사건임엔 틀림없다.

이처럼 뿌리깊은 이념·이데올로기 지향성은 좋게 말해서 신념에 투철한 국민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죽은 자를 위해 제단을 쌓을만큼 비현실적이고 독선적인 교조주의자를 만들 수도 있다.

지금 이념논쟁의 회오리가 언론계를 무대로해서 휩쓸고 있다. 고려대 교수라기보다는 김대중정부의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인 최장집씨의 ‘현대사관’, 그중에서도 ‘6·25전쟁관’이 시비의 초점이다.
논쟁과 시비의 주역은 조선일보다. 조선일보는 최장집위원장을 고발한 발설자요, 그뒤 대대적으로 그의 이념을 문제 삼고 있다. 조선일보는 말하자면 법정의 원고(原告)라고 할 수 있다.

10개 중앙 종합일간지 가운데 조선일보를 뺀 9개 신문은 80년대의 소위 ‘민중사관논쟁’때와 달리 대부분 방관하거나 ‘최장집비판’을 비판하고 있다.
조선일보처럼 최위원장의 이념을 문제삼는 신문은 2개(문화·세계)인 반면, 3개 신문(서울·중앙·한겨레)이 최장집비판을 비판했고, 4개 신문(경향·국민·동아·한국)은 논쟁의 단순보도만 했다(‘미디어오늘’ 4일자 보도).

이제와서 논쟁의 내용을 새삼 되풀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논쟁의 진행과정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만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다. 그것은 주요 언론매체들이 어떤 입장에서건, 적극적이건 제3자적 입장에서건 참여하고 있는 논쟁치고 논쟁답지 않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논쟁진행과정상의 쟁점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조선일보의 고발내용이 어느 정도로 ‘사실’을 반영하고 있는가하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최위원장의 논문을 전체적 문맥과 의미를 무시한채 거두절미(去頭截尾)해서 왜곡한 마녀사냥식 고발인가 아닌가하는 것이다.

이 나라 언론계가 들썩한 논쟁이지만, 조선일보는 단편적인 문구를 나열해서 고발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조선일보의 자의적 재단행위’를 비난하는 반박과 반반박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 회오리속에서 문제된 최위원장의 논문을 읽은 사람은 원고측 조선일보의 몇사람이나, 대학가의 동학(同學) 교수들 그리고 소수 대학생들을 빼고 몇사람이나 될까? 이 논쟁은 그야말로 지극히 한국적인 이상한 논쟁이다.

문제의 논문이 어느 정도의 길이로 쓰여진 글인지 모르지만, 최장집비판에 편드는 사람이나 비판의 비판에 편드는 사람이나 모든 사람들이 공정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만큼 상당한 지면을 내서 논문자체를 알려주는 게 매체의 기본적인 직무다.

이 이상한 논쟁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보다도 못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모두가 증거없는 가공의 이념적 피라미드를 쌓아보이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과정으로 본다면 최장집논쟁은 또 하나의 정치적 ‘색깔시비’의 성격이 강하다.

더구나 조선일보는 그동안 가장 적극적인 ‘반(反) 김대중’ 대열의 선두에 서왔다. 92년 대통령선거때에는 김영삼후보의 사병(私兵)이나 다름없는 킹메이커역할을 했다. 우리 신문사상 이처럼 노골적인 ‘편들기’는 유례가 없다.

조선일보의 이러한 행태는 사회적 공기(公器)로서의 신뢰도에 타격을 줬고, 이번 논쟁에서도 알게 모르게 찬·반을 가르는데 영향을 주고 있다.

이 논쟁에서 최위원장과 조선일보 두당사자중 어느 편이 ‘사문난적’이 되고 어느 편이 ‘교조주의자’로 결말지워질지 두고 볼 일이다. 그것은 독자들이 얼마나 공정하게 설득되고, 그래서 진상을 공정하게 이해하느냐에 달려있다.

신문은 우선 문제된 논문을 객관적이고 공정한 자세로 독자앞에 펴보여야 한다. 그것은 언론의 초보적인 직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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