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은 흔적을 남긴다'

미국 유명 드라마 CSI에서는 범죄현장에서 채취한 DNA를 통해 범인을 잡는 장면을 숱하게 볼 수 있다. 지난 2010년 7월 우리나라도 DNA신원확인정보의이용및보호에관한법률(DNA법)을 제정한 이후 DNA로 인해 여죄를 찾아내고 범인을 잡았다는 언론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DNA법 시행 이후 헌법재판소에 위헌 소송이 제기될 만큼 인권침해 여부가 크다는 사실은 알고 있을까?

DNA법이 시행된 이후 무분별하게 DNA를 채취하면서 인권침해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DNA법은 아동, 청소년을 상대로한 성폭력을 포함해 살인, 강간, 추행, 강도, 방화, 특수절도 등으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11개 주요 범죄 피의자를 대상으로 DNA 채취를 할 수 있고, DNA를 채취하면 숫자로 부호로 조합된 신원확인 정보로 변환해 영구 보관할 수 있게 했다. 인신구속을 넘어 유전자를 구속시켜놓은 것인데 범죄를 소탕한다는 제정 취지임에도 애초부터 인권침해 사건으로 불거질 가능성이 높았던 셈이다.

지난 2010년 8월 인태순씨의 경우 용산 참사 추모집회 과정에서 경찰의 업무를 방해했다는 혐의로 체포돼 1년 6개월 만기를 채우고 출소하는 과정에서 DNA 채취 요구를 받았다. 인씨는 자신이 DNA 채취를 허락한다면 공안사건으로 전국의 구금시설에서 구속돼 있는 다른 양심수들까지도 DNA 채취가 확대될 가능성도 높다고 생각해 거부했지만 DNA 채취를 거부하면서 출소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문희주(51)씨도 지난 2009년 8월 경기도 성남 수정 경찰서에서 강제로 DNA를 채취 당했다. 문씨는 쌍용차 공장 점거 농성을 풀고 난 뒤 경찰서 유치장 입감 절차 과정에서 DNA를 채취당했다. 문제는 2009년 당시는 DNA법 시행이 되기 전이라는 점이다. DNA법은 지난 2006년'유전자 감식 정보의 수집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안 '이란 이름으로 국회에 발의됐으나 인권 침해 논란으로 수년 동안 표류하다가 지난 2010년 겨우 제정됐다.

시민사회단체들은 DNA법이 애초 재범률이 높은 성범죄 등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됐지만 그 실제 운용이 입법 취지를 벗어나면서 오남용 논란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유죄가 확정되지 않은 구속피의자에게 DNA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것은 다른 나라 사례에 비춰서도 위헌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한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 2011년 8월 DNA법이 인권침해라는 의견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다른 청구인도 DNA법을 헌법재판소에서 청구해 심리 중이다.

신옥주 전북대 교수는 개인정보에 대한 자기결정권과 무죄추정의 원칙에 위배되는 등 인권침해의 우려가 크다며 DNA법 폐지를 주장하면서 "형사피의자까지 채취대상으로 규정한 것은 무죄추정의 원칙과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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