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사장 공모에 등록 의사를 밝힌 인사가 경향 편집국장 등 내부 핵심인사의 압력을 받고 등록을 포기했다고 주장하고 나서 파문이 일고 있다.

1일 송영승 경향신문 사장과 경향 해직기자 출신 강병국 변호사(법무법인 한민) 등에 따르면, 사장 공모(4월 23일~5월 1일)와 관련해 사장후보로 출마할 뜻을 갖고 있던 강 변호사는 지난달 24일 송영승 사장을 만나 ‘몸이 좋지 않으면 혼자 짐을 지지 말라’, ‘연임에 뜻이 없다면 내가 출마하겠다’라는 취지의 말을 전했다. 송영승 사장도 이날 오전 국실장 회의에서 출마의사를 밝힌 상태였다.

그러나 그 이튿날인 25일 돌연 이대근 편집국장과 박구재 경영기획실장이 강 변호사를 만나자고 찾아와 출마를 만류하면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막겠다’는 발언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병국 변호사는 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그날(25일) 이 국장과 박 실장이 만나자마자 ‘나오지 말라’라는 말을 했다”며 “압력을 느껴 사장 공모에 응모를 포기했다”고 밝혔다. 1일 오후 6시 경향신문 사장 후보자 신청 마감 결과, 송 대표만 등록한 채 단 한 명도 후보자로 등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강 변호사는 “이대근 국장에게 ‘송 대표 건강을 생각해서 나오려고 한 것이다’, ‘(송 대표가) 여러분들에게 떠밀려서 연임의사를 밝혔을 수 있다고 본다’는 말을 했지만 이 국장은 ‘응모 자체를 하지 말라’,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막겠다’라는 말까지 했다”고 전했다.

강 변호사는 “송 대표가 이들에게 이런 일을 시켰을지는 모르겠으나 송 대표에게만 얘기를 했는데 어떻게 이들이 바로 다음날 날 찾아올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이 같은 상황이 알려지자 사장 공모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경영자추천위원회는 지난달 30일 회의를 열어 이 국장과 박 실장에 대해 ‘공식 선거 기간 중 공적 라인에 있는 핵심 간부가 잠재적 예비후보를 만난 것부터 부적절했다’며 서면으로 경고조치했다. 또한 경추위는 후보 등록 전이지만 송 대표의 건강 문제를 꺼내며 자신이 출마하겠다고 한 강 변호사에게도 ‘선의라고 할지라도 오해를 살 소지가 있다’는 취지의 유감을 표명했다.

경향의 한 관계자는 경추위의 결정이 미온적이라며 “사장을 공모한다고 해놓고 다른 후보의 등록마저 막는 것은 ‘대국민 사기극’이자 선거 개입행위나 다름없다”며 “공모 절차에서 원천적인 문제가 드러난 만큼 경추위는 사장 공모 절차 일체를 중단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강진구 경향신문 노동조합위원장(전국언론노동조합 경향신문 지부장)은 “경추위가 송 대표는 빼고 강 변호사에게만 유감을 표한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면서 “당사자들이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것이 올바른 처사”라고 말했다.

송영승 대표는 자신의 지시로 국장이 강 변호사에 압력을 가한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언어도단”이라고 반박했다. 송 대표는 “강 변호사에게 단단히 오해가 있는 것 같다”며 “편집국장이 압력을 넣어 출마를 만류했다는 주장은 경향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 변호사가 압력의 당사자 중 한 명으로 지목한 이대근 국장은 인터뷰를 요청한 기자에게 1일 밤 “(내가) 당사자이므로 (말하기 어려우니) 진상조사를 한 경추위원장에게 알아보라”는 문자메세지를 남겼다. 또 다른 당사자인 박구재 실장은 수차례 통화에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경추위는 이번 일을 계기로 재발을 방지하는 규약을 제정할 계획이다. 장정현 사원주주회장은 통화에서 “경영진 추천 과정에서 금지 행위를 적시하고, 특정 후보의 등록을 방해하거나 부당행위를 한 후보의 피선거권을 제한하고, 후보가 아닌 경우 인사 상 불이익 등을 주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규약을 제정할 것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송 대표와 강 변호사는 경향신문 입사 동기(1982년)로, 강 변호사는 2009년 사장 공모 때도 후보로 거론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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