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가 지난달 30일 이충재 편집국장을 전격 경질하면서 한국일보 내부 분위기가 끓어오르고 있다. 특히 이상석 사장이 이번 경질의 이유를 ‘경영실적 부진’으로 적시하면서, 기자들 사이에서 “기업 눈치 보는 신문을 만들라는 것이냐”는 비판이 터져 나오고 있다.

당장 노조는 30일 성명을 통해 “지난 1년간 편집국이 힘겹게 추구해 온 모든 가치를 전면 부정하는 행위”라며 “경영 난맥의 책임을 편집국장 개인에게 묻는 이번 인사에 수긍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사태는 “편집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행위”라며 강재구 회장과 이상석 사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노조 내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앞서 열린 대의원대회에서도 노조원들의 성토 분위기가 짙었다. 사내 공고도 붙지 않은 채 이루어진 전격적인 경질이라 구성원들의 충격이 컸고, ‘광고문제’라는 경질사유,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 사장과 경영지원실 쪽이 아닌 편집국장에게 책임을 물은 꼴이 되었다는 것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노조 민실위는 이날 오후 회의를 열고 1일부터 이틀간 사장퇴진시까지 임명동의안 잠정유보와 즉각적 인사 철회를 놓고 편집국 조합원투표에 돌입키로 했다. 두가지 안만 놓고 투표에 돌입하는 것은 사측의 이번 인사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내부에서는 기수별 성명을 내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윤필 노조위원장은 “기자들로 이루어진 민실위 회의에서는 노조 대의원대회보다 분위기가 격앙되었고 성토 분위기가 더욱 높았다”며 “후배 기수들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기수 성명도 내자는 분위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측은 이번 인사가 ‘경질성’이 아닌 ‘분위기 쇄신’차원임을 강조하고 있다. 사측의 한 관계자는 “한국일보가 워낙 재정이 어려운 상황이라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편집국장 인사를 단행한 것”이라며 “원래 사장 등 경영 측도 인사 조치를 단행하려 했지만 사장이 취임한지 얼마 안 되어 우선 편집국장 교체를 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일보 창간기념호가 얼마 남지 않아 광고수주가 필요해 인사시점을 조금 앞당긴 것”이라며 “이충재 국장 이후 지면의 질이 좋아지는 등 내부에서도 평가가 좋아 편집국장이 교체된다 하더라고 지금의 기조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기자들은 “정부 경제정책 실패의 책임을 지고 기재부 장관 등을 놔두고 공정거래위원장을 자른 꼴”이라며 “결국 사장이나 광고국이나 책임을 지지 않고 편집국장에게 책임을 물은 우스운 상황이 되었다”고 지적했다. 한 기자는 “한국일보 지면을 이충재 국장이 이끌어왔는데 편집국장 바뀐다고 문제가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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