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은 미디어평론가 명박근의 온라인 칼럼을 연재합니다. 이 칼럼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정치와 언론의 ‘속내’를 들춰내고 도발적인 ‘촌평’도 시도할 예정입니다. 필자 요청으로 필명 ‘명박근’을 사용하게 된 점 양해 바랍니다. 논쟁적인 주제를 담고 있는 이번 칼럼은 정치 평론가 고성국 박사에 대한 세간의 의혹을 검증하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명박근의 문제제기와 함께 고 박사의 해명을 편집자 주 형태로 나란히 싣습니다. / 편집자 주.

4·11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이 1당이 된다고 거의 유일하게 예측한 평론가가 있다. 정치학 박사 고성국이다. 그의 ‘신묘’한 예측은 2010년 6·2 지방선거 및 7·28 재보선, 2011년 4·27 재보선 및 10·26 서울시장 재보선 예측에서도 빛났다. 거의 모두 맞췄다. 현재 OBS, MBN, 불교방송 등에서 시사 프로그램 진행을 맡고 있고, KBS 1라디오 등 주요 토론 프로그램의 고정 패널을 담당하는 그, 지금은 박근혜의 대선 승리를 점쳤고, 총선 승리로 박근혜 대선 가도가 한층 탄력을 받게 되면서 영향력을 더욱 키우게 됐다. 그의 현재 가치를 감정하자면, 단언컨대 이 땅에 직선제 개헌 등 절차적 민주화가 완성된 이후로는 가장 관록 있는 정치평론가라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 야권 지지층에서는 고성국에 대한 비토 정서가 비등하다. 그가 예측 정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새누리당과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유리하게 판을 만드는 ‘플레이 메이커’였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총선 정국에서는 이른바 조중동과 더불어 ‘김용민 막말’의 파급력을 과대 포장하고 문대성 김형태 파문에 대해서는 물 타기를 하며 여당에게 이로운 국면을 조성하는가 하면, 대선 정국에 이르러는 박근혜 대세론을 옹호하고 그 반대 논리에 건건이 변론했다. (그러다가 MBC <100분토론>에서 보수논객 전원책에게조차 ‘지나치게 박근혜를 옹호한다’고 질타당했다.)

과거 기록 속에 그는 20대였던 1980년대 자타가 인정하는 운동권이었다. 공저 ‘덤벼라 인생’에는 5공화국 시절 고문당한 과거가 기술돼 있다. 또 1986년 ‘좌경이념’ 서적을 일본 등으로부터 들여와 운동권 학생과 노동자에게 판 혐의로 서울형사법원으로부터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은 이력도 남아있다.

이후에 그는 송건호 최장집 등 당대 진보 지식인이 함께하는 학술단체협의회의 공동협력분과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이듬해 ‘진보정당준비모임’의 토론회에 참여했다. 나라정책연구회 정책실장 직함으로 여러 학술, 평론 활동을 담당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활약상으로 1991년 당시 진보성향의 프로그램으로 평가받던 CBS라디오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의 진행자로 발탁된다.

그러나 문민정부 출범 이후, 그의 ‘스텝’은 꼬인다. 당시 <한겨레> 보도를 종합해보면, 1996년 KBS <추적 60분> 진행자로 활동하면서 PD와 노조의 반대를 묵살하고 사측 요구에 따라 “한총련이 친북 이적성을 띄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듯합니다”, “좌경의 문제는 이제 국가 생존의 문제로 우리 앞에 등장했습니다” 등의 색깔론 제기 멘트를 방송해 물의를 빚은 바 있었다. 그리고 이듬해, 노조에 의해 ‘김영삼 (당시) 대통령 아들 김현철 인맥’으로 지목받고는 그 직을 내놓게 된다.

(이를 두고 고성국 박사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김현철과 친구인 것은 사실이고 당시에도 (이 관계를) 숨기지 않았다”면서 “김현철과 (제가) <추적 60분>을 맡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KBS 노조가 저를 낙하산 인사라고 해서 MC를 그만두라고 했다”며 “그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결과적으로 KBS한테 부담을 주는 것 같아서 소모적인 논쟁이 없었으면 해서 (그만뒀다)”고 말했다. 편집자 주)

그리고 두문불출하는가 했던 그는, 이듬해 1998년 서울지검 공안1부에 의해 15대 대선에 출마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당선을 위한 ‘비선 참모 조직’의 일원으로 사실상 지목된다. 공교롭게도 그 조직은 이른바 ‘총풍’ 사건, 즉 판문점에서의 고의로 유발한 총격 사건을 통해 이회창 후보에게 유리한 국면을 만들도록 획책했다는 의혹을 산 그룹이었다. (물론 그와 이 사건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두고 고성국 박사는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이회창 후보쪽의) 비선 참모 조직의 일원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제 후배들이 이회창 팀에도 있고 김대중 팀에도 갔는데 일하다 저한테 가끔 물으러 왔다”며 “자기들이 어려움에 처한 것에 조언을 해주는 것은 했다. 그것과 대선 사조직의 팀원으로 일한 것은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고 박사는 또 “당시 언론에서 저를 잡으려고 총풍 사건의 책임자라고 방송한 적은 있다”면서도 “그 사건과 관련해 검찰에서 수사를 받은 적이 없다. 사건은 무혐의 판결 났다”고 말했다. 편집자 주)

그런데 그로부터 10여 년간 매스컴 상에서 그의 이름이 박힌 흔적을 이것 말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어렵게 찾은 그 하나는, 2001학년도 대입 수능시험을 앞두고 한 인터넷 사교육업체에서 논술부문 시사토픽 특강과 실전 교과문제 적용 강의를 한다는 내용의 언론 보도다. 그러다가 본격 정치평론 재개를 2007년 대선부터 한다. 곧이어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한동안 이에 비우호적인 스탠스이었다. 정권과 거리를 뒀던 CBS라디오, 한겨레, 프레시안에서 각각 진행자, 패널, 기획위원으로 활동했던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그러나 2011년 ‘박근혜 대망론’을 펼치면서 ‘진영’과 이격됐고, 급기야 4.11총선 국면에 이르러는 새누리당 지지 연사로 ‘커밍아웃’했다는 논란에 휘말렸다.

일각에서는 ‘그럴만한 이유’ 두 가지를 댄다. 우선 동생이 지난 총선 국면에서 정치기획사를 운영했으며, ‘고객’의 상당수가 새누리당 국회의원 후보들이었다는 점이다. 정치권에서 후보자 1인당 소요 비용이 1억5000만 원을 호가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동생 주요 고객인) 새누리당에 대한 우호적 접근은 이상할 게 없다. (여담이다만, 동생 기획사는 공교롭게도 형이 ‘박근혜 대망론’을 펼치던 2011년 설립됐다.) 또 하나는 그 자신이 새누리당 총선 후보로 거론됐었다는 점이다.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서는 ‘새누리, 고성국 서울 모 지역 공천설’이 파다했던 형편이다. 이러다보니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다지만 그가 객관적 평론이 가능한 처지인지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힘을 얻게 됐다.

(고성국 박사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2011년에 설립된 정치기획사에 대해 “제 동생과 다른 사람이 합자해서 만든 주식회사다. 저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며 “실제로 계약된 사람들은 여당도 있고 야당 후보도 있는 걸로 안다. (비용이 얼마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총선 공천설’에 대해 “몇 분 기자들로부터 ‘그런 사실이 있습니까’라고 확인 전화를 받았다. 그런 소문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공천을)제안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당에 공천 요청을 했는지’ 묻자 “그런 적 없다”며 “정치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편집자 주) 

글을 갈음하기 전, 시간을 1995년으로 돌려보자. 당시 그는 조선일보, 중앙일보가 이승만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하자 "분단과 독재를 정당화하고 박정희 시대와 그 이후까지 미화하려는 시도의 시작"이라 비판했다. 그리고 이듬해부터 보수진영 및 기득권세력 정권 연장 시도에 일정부분 역할을 했다. 그래도 ‘한 때 민주화 주역 YS’ 편이었으니 그 ‘훼절’은 ‘변신’으로 일부분 두둔 될 수 있었다. 10여 년의 침묵 후에 진보에서 또다시 보수로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하는 행태를 나타내고 있는 것 아니냐는 논란은 좀처럼 사그라 들지 않고 있다. YS의 무능으로 촉발된 ‘박정희 향수’, 그 향수의 직접적 수혜자이며 박정희의 정치적 유산자인 박근혜에 힘과 기대를 싣는 태도 때문이다.

이를 ‘객관적 평론’에 대한 비논리적 인상비평이라고 반박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그에게 전원책은 MBC <100분토론>에서 ‘버럭’ 화를 내며 균형 잡힌 시각을 요구했다. 지나치게 박근혜를 감싸고 도는 걸 타박하며 말이다. (프로그램 상 두 사람은 ‘보수’쪽 한 편이었다.) 그는 며칠 뒤  KBS 1라디오에서 대결 관계인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진과 한 편이 된다. 본인은 부정해도 세상은 그를 ‘친박 보수 진영 평론가’로 분류하는 양상이다. 물론 비평가가 특정 지향점을 갖는 행위는 용인될 수 있다. 그러나 대선 국면을 앞두고 방송이 무분별하게 그에게 과중한 무게감이 실리는 것이 또 다른 불공정과 불균형의 단면은 아닐까 하는 지적이 제기된다. 2012년 고성국은 1997년 고성국의 미래일 수 있다는 지적, 그를 지나치게 모욕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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