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뒷자리에 손수건을 깔고 거기에 손녀를 태워 청와대 앞마당을 달리는 대통령, 아이들을 만나 인사할 때는 항상 앉아서 눈높이를 맞추던 대통령, 대통령의 청와대 산책 때면 직원들이 숨어야 하던 관행을 바꾼 대통령, 스스럼없이 옆 사람이 피우던 담배를 빌려 자신의 담배에 불을 붙이던 대통령...

3년 전 어느 봄날 홀연히 세상에 이별을 고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은 이렇게 잘 알려진 몇 장의 사진으로 우리 기억 속에 남아있다.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이며, 노무현 대통령 재직 당시 공식-비공식 사진을 기록했었던 사진가 장철영 씨와 작가 정철 씨가 노 대통령 3주기를 기념해 미공개 사진에세이 <노무현입니다>를 발간했다. 2003년 11월부터 노무현 대통령의 퇴임기간까지 4년여 동안 노 대통령의 일상을 사진에 담았던 장철영 사진가를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청와대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참여정부 초기에 인터넷기자협회와 주간지에 청와대 출입이 열렸다. 그때 한 여성주간지와 외신 사진기자로 일하면서 청와대 출입기자생활이 시작됐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인터뷰 등으로 처음 노무현 대통령을 만났었다. 부산 국회의원 선거 낙선 때의 모습, 대통령 당선됐을 때 민주당 앞에서의 모습 등이 인상  깊었고 ‘저 사람의 개인적인 사진을 찍고 싶다.’라고 그때부터 생각했었다. 그러던 중 지인들의 추천으로 청와대 비서실 전속 근무를 제안받았고 2003년 11월 1일 청와대로 첫 출근했다. 그때 처음 받은 월급은 110만원(세금공제후) 정도였고 7급 공무원 수준이었다. 권양숙 여사는 처음부터 내가 전속사진가인지 잘 알고 있었지만 노 대통령은 몇 달 동안 내가 전속사진가인지 출입기자인지 구분 못하셨을 거다. 비공개인 가족행사를 몇 달 동안 계속 찍는 것을 보고나서야 알게 되셨다. 

-청와대에서 촬영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은 무엇이었나 
노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을 찍고 싶었다. 대통령 노무현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 손녀의 할아버지, 부인의 남편, 자녀들의 아버지로서의 노무현을 사진에 담고 싶었다. 당신의 입모양, 눈빛, 손짓, 발짓 하나하나를 다 기록하고 싶었다.

사진을 찍은 내가 내 사진을 보는 것과, 독자가 그 사진을 보는 관점과 반응은 많이 다르다. 내가 찍은 사진에서 나의 모습이 피사체에 반영되고, 기록된 피사체의 모습을 보고 내가 닮아가고, 그런 과정이 좋아서 사진을 찍게 된다. 대통령의 많은 모습 중에 내가 좋아하는, 닮고 싶어 하는, 나를 반영하는 듯한 순간을 포착해서 기록하게 된 것 같다.
 

-대통령이 사진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계기는?
전속사진가가 되어 ‘이제 개인적인 모습을 찍을 수 있겠구나’ 했는데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대통령이 사진 찍히기를 싫어했었고, 사진을 찍어서 종종 보고를 했지만 대통령 고유 업무에 관심과 시간이 집중돼 있었기 때문에 사진에는 관심이 없으셨다.

그러던 중 2004년 봄, 손녀들이 청와대 잔디마당에 앉아서 노는 모습을 찍어 액자에 넣어드렸더니 좋아하시더라. 자신은 찍히기 싫어하시면서 손녀들은 찍어주라고 하시기도 했다. 퇴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2007년 가을, 청와대 잔디밭에서 손녀와 앉아 ‘자갈치’과자를 입에 넣어주다 말고 자신의 입에 쏙 넣는 연속 사진 3장은 노 대통령이 생전에 가장 좋아했던 사진으로 지금도 봉하 사저에 액자로 걸려 있다. 영락없는 순박한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2005년 쯤 대통령의 개인사적인 사진을 찍고 싶다는 제안서를 부속실에 올려 ‘장철영이 사진 찍는 것을 방해하지 말라’는 공식 지시를 받아냈다. 그때 정한 촬영방식은 ‘있는 듯 없는 듯 찍겠다. 촬영 중 일절 말하지 않겠다. 대통령께 방해되지 않고, 의식하지 못하게 찍겠다’는 거였다.

-대중적으로 가장 큰 반향이 있었던 사진은.
2007년 1월 31일 4주년 평가 심포지엄 휴식시간에 길게 누워 쪽잠을 주무시던 모습을 찍은 사진과 많이 알려진 청와대에서 자전거 뒤에 손녀 태우고 가시는 뒷모습을 담은 사진 두 장이다. ‘저런 소박한 사람이 우리 대통령이었구나...’ 라고 많은 국민들이 느꼈던 것 같다. 

-사진집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책을 준비하는데 1년이 걸렸다. 50만여 장의 사진중에서 골라내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 사진작업을 했는데 보다가 눈물 흘리고 멈추고의 연속이었다. 이미 운명을 달리하셨기 때문에 더 애틋했다. 작업하면서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잊었니-이승철> <너에게로 또 다시-변진섭> 등의 대중가요를 즐겨 듣게 됐다. 가사를 듣다 보면 당신과의 기억, 그 순간순간이 생각나서 눈물 짖곤 했다. 

-청와대 전속사진가 시절 가장 보람있었던 때는.
남북정상회담 때다. 출발하면서부터 대통령은 계속 나를 찾았다.

“우리 사진사 어디갔나?”
“예, 여기 있습니다.”
“이제 남는 거는 사진밖에 없다. 사진 잘 찍어라.”

이런 말 하시는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비서실도 난리가 났다. 나를 대통령 옆에서 못 벗어나게 했다. 마지막 날은 하루 종일 한 끼도 못 먹고 사진만 찍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측 수행원들과 쭉 악수를 하던 때였다. 북측 경호원들이 굵은 밧줄을 들고 포토라인을 만들어서 두 VIP와 나 사이에 거리를 두게 했다. 밧줄이 내 배에 계속 걸려도 내가 뒤로 물러나지 않고 촬영을 계속하자 북측 경호원이 밧줄을 홱 위로 채 올렸고 카메라가 밧줄에 걸려 위로 치켜 날아갈 뻔했다. 내가 “야이 XX 아프쟎아! 아프다고!”라며 크게 소리치자, 북측 경호원이 '뭐 이런 X이 다 있나?' 싶었는지 밧줄을 내리더라. 그렇게 하고 나서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수행원들의 악수 사진을 방해받지 않고 다 찍을 수 있었다.

-‘꼿꼿장수’라는 말이 있다.
‘꼿꼿장수’란 말이 그때 나왔다. 사실은 그때 김장수 국방장관도 고개 숙여 인사했었다. 군인들 인사방법은 처음에 목례하고 그 다음에 똑바로 서서 악수하며 관등성명을 댄다. 그때 내 디지털카메라의 메모리칩은 용량이 가득 차가고 있었고 교환할 시간이 없었다. 김 장관 순서가 됐을 때 메모리를 아끼기 위해 목례할 때는 찍지 않고 기다리다가 악수할 때 찍었다. 그것을 남쪽에 보냈는데 나중에 언론에서는 김 장관이 고개숙인 사진은 없고, 남북정상회담을 대통령 지근에서 준비한 김만복 국정원장은 고개숙여 인사한 사진이 있다고 대조해서 ‘꼿꼿장수 국방장관, 고개숙인 국정원장(김만복)’ 이렇게 제목 달아 내보내더라. 엄청 웃었지만, 사진 갖고 언론이 장난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또 한 번 느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안다. 꼿꼿장수는 사실이 아니고, 김장수 장관은 군인식 인사를 했고, 김만복 국정원장은 군인출신이 아닌 일반인이기 때문에 일반인의 인사를 한 것 뿐이다.

-청와대 사진기자는 한 마디로 어떤 자리인가?
사진가로서 명예로운 자리다. 최고위직 공무원들과 함께 국민을 섬기는 곳이기에 겸손해야 하는 곳이지 권력을 누리려고 가는 곳은 아니다. 이력서에 좋은 이력 한 줄을 넣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인생의 전부를 차지하지는 않는다. 사회에서 아무 능력도 인정받지 못하던 사람이 어쩌다 청와대 들어가게 되면 권력 갖고 사고 치게 된다. 사회에서 자신만의 상당한 실력과 경험을 쌓고 주변의 인정을 받는 사진가가 청와대 전속사진가로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자칫 자만할 수 있는 젊은 나이보다는 연륜이 어느 정도 쌓였을 때가 청와대에서 일하기에 좋은 것 같다. 공식행사는 기본이었고 자처해서 비공개 사진까지 항상 챙겼기 때문에 4년 동안 휴일이 없었다. 그 시절에는 집에 아이들이 어떻게 크는지도 모르는 아빠였다. 청와대 근무 시절에는 사람들이 나와 친하게 지내려고 다가왔지만, 나와서는 청와대 시절의 나를 잊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내게 청와대 전속사진가 시절은 행운이었고 그 때 쌓았던 경험들을 가지고 후배사진가들에게 힘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앞으로도 한 장의 사진이 얼마나 소중하고 큰 힘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다.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올해는 노무현 대통령 3년상을 탈상하는 상징적 의미와 함께 대선도 있는 해여서 이 책을 출간하기에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대통령의 사적인 사진집으로는 국내에서 처음 발간되는 책인 만큼 역사적, 기록적인 의미도 있지만 완성도 면에서는 스스로에게 50점 밖에 줄 수 없다. 아쉬움이 많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이 말과 행동으로 보여줬던 ‘대통령은 명예직이고 국민을 섬기는 자리이지, 절대권력자로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독자들이 느꼈으면 좋겠다.

퇴임 전 권양숙 여사께 “청와대시절 찍었던 좋은 사진들 모아서 책을 꼭 내겠습니다.”라고 약속했었는데 이제야 지키게 됐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보실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봉하 사저에는 지난 주말에 책을 보냈다. 이번 주 중에 봉하 묘역에 책을 들고 가서 대통령께 보여드릴 거다. 살아계셨다면 웃으면서 책을 뒤적이며 “고놈 참~!”하셨을 거다.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볼 수 있도록 책 크기는 작고 값은 싸게 하려고 노력했다. 인터넷에서는 10% 할인해서 판매를 시작했으니 노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많은 사람이 봤으면 좋겠다. (책에 실린 미공개 사진을 포함한 <노무현 대통령 3주기 추모전시회>가 28일부터 5월 14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제1전시실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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