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유가족 “해군 최초 좌초 언급한 것은 사실”
천안함 유가족 “해군 최초 좌초 언급한 것은 사실”
[천안함 공판] “‘어뢰맞은 것같다’ 발언 믿기 힘들어”…구조함 왜 아무도없는 함수에 몰렸나

천안함 침몰 직후 유가족과 면담에서 해군측이 '천안함 최초 좌초'에 대한 언급을 실제로 했었다는 유가족의 증언이 천안함 재판에서 나왔다. 또한 천안함 작전상황도에 등장하는 수많은 구조함들이 당시 왜 실종자들이 몰린 함미가 아닌 함수로 추정되는 배에 몰려있었는지 의문을 낳았다.

천안함장으로부터 어뢰에 한 방 맞은 것 같다는 말을 직접 전화통화로 들었던 천안함 소속 전대장이 그런 말을 듣고도 아무 조치도 않고, 아무런 추가확인도 하지 않았다고 밝혀 ‘어뢰 피격’ 통화의 신뢰성 여부가 집중 추궁되기도 했다.

박형준 전 천안함유가족대표는 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재판장 박순관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신상철 전 민군합조단 민간위원(현 서프라이즈 대표)의 천안함 의혹 관련 명예훼손 공판기일에서 지난 2010년 5월 KBS <추적 60분>과 인터뷰 중 자신이 ‘해군이 천안함이 최초좌초됐다고 설명했다’고 답변한 것에 대해 “그렇게 말한 것은 맞다”고 밝혔다.

박 전 대표는 “당시엔 영결식이 끝났다고 판단했고, (해군이 가족 설명회를 하는 과정에서) ‘좌초’라는 단어를 언급한 것 아니냐고 물은 것으로 받아들여 대답한 것”이라며 “생존장병이 3월 27일 기자회견 뒤 별도로 가족들과 면담에서 내가 ‘문규석 원사는 어디에 있느냐’고 물어보기도 했는데, 그 때 생존장병이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설명했다. 누가 그 발언을 했는지에 대해 박 전 대표는 “생존장병 첫만남에서 무전기를 최초로 들고 올라왔다는 장병이 좌초라고 구조요청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박 전 대표는 지난 2010년 5월 KBS 추적60분과 인터뷰에서 천안함 작전상황도에 적혀있는 ‘최초 좌초’라는 표현과 관련해 해군이 직접 좌초라고 설명했다고 밝혔었다. <추적60분> 제작진은 당시 방송에서 자막을 통해 “취재진은 일부 유가족들을 만나 이 사진(‘최초좌초’라 쓰인 해도 사진)에 대한 사실 확인을 부탁했다”며 “이에 유가족들은 사건 발생 초기 해군 관계자가 논란이 되고 있는 지도를 통해 사고에 대해 설명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이어 제작진은 “또한 ‘최초 좌초’와 관련한 해군 측의 발언도 있었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이를 두고 박 전 대표는 이날 공판에서 “TV 다시보기에 나와있는 자막의 내 발언은 맞다. 자막대로라면 맞다”고 답변했다.

당시 사고 직후 군의 사고원인 설명에 대해 박 전 대표는 “우리가 ‘좌초가 아니냐’, ‘배에 구멍나 정비도 안된 것은 피로파괴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는데, 정확한 답은 하지 않았다”며 “당시 가족 중 군 전문가(부사관·해군 출신)와 배 전문가가 있었는데, 그 분이 질문하고 의혹을 제기했다”고 설명했다.

박 전 대표는 “그가 천안함에 대해 잘 알고 있었는데, 해군에서 근무할 당시 평상시 자주 나갔던 곳이고, 경도와 위도, 조류간만의 차까지 다 알고 있었다”며 “그는 ‘백령도에는 초계함 같은 (큰) 배가 (훈련하러) 가지 않는데 왜 기동하게 됐느냐, 내가 근무할 당시엔 백령도에 근접하게 간 적이 없었다’고 지적했다”고 밝혔다. 이원보 대령이 천안함 경계구역에 포함되기 때문에 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천안함이 소속된 22전대장을 맡았던 이원보 해군 대령은 이에 대해 이날 증인으로 출석해 천안함 사고해역(백령도 서방 2.5km)이 경계구역인지에 대해 “대청해전 이후 백령도 부근에서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작전구역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2.5km 이내도 포함되는지’에 대해서는 “그냥 백령도 서측 해역으로 한다. 통상 해안가 30마일 정도로 정하면 함장이 자유롭게 한다. (2.5km가 경비구역에 포함되는가는) 정확히 확인해봐야 한다”며 “(경비구역에 대해) 보통 좌표로 사각형의 박스형태로 줄 때도 있고, 선상으로 줄 때도 있다. (작전구역은 상부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작전구역 밖으로 이탈 못한다. 단 긴급상황시엔 제외된다”고 답했다.

또한 작전상황도 상 표기된 붉은 점에 대해 해군은 ‘함수침몰추정위치’라고 설명했으나 당시 왜 실종자들이 모두 탑승한 함미가 아닌 함수에 구조함들이 몰려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을 하지 못했다.

당시 실종자 가족에 이를 설명했던 이원보 대령은 해도상 붉은 점에 대해 “(실종자가족에게) 함수 위치만 설명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변호인들은 ‘실종 승조원들 대부분이 함미에 있는데 왜 구조함들이 함미에는 없었느냐’, ‘함장이 함수에 있는 승조원 다 나왔다고 하고 떠났다고 해 이미 함수엔 사람이 없고, 함미에 다 있는데, 군함이 오히려 그쪽에 가있어야 하지 않았느냐’고 집중 추궁했다. 이 대령은 “물 속에서는 함미가 어떻게 됐는지 몰랐다”며 “제 소관 사항이 아니다”라고 분명한 답을 하지 않았다.

이와 함께 최원일 함장이 22전대장 이원보 대령과 사건 당일 밤 10시 25분경 휴대폰 통화에서 ‘뭐에 맞은 것 같다’, ‘어뢰 같은데요, 함미가 아예 안보입니다’라고 말한 내용에 대한 검증도 이뤄졌다.

이원보 대령은 법정에서 “통화내용을 2함대 사령관에게 보고했다”며 “(최원일) 함장이 ‘어뢰에 맞은 것 같다’고 말했다는 것만 보고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뢰에 맞은것 같다는 말을 듣고도 누가 쐈는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된 것인지 추가적으로 왜 더 묻지 않았느냐’는 지적에 이 대령은 “당시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사고가 난 상황에서 부하를 살리는 게 우선이라고 봤다”고 말했다.

또한 이 대령은 사고 직후 음탐하사가 정위치에서 근무했는지, 사고 원인과 관련해 특이상황은 없었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물어본 적 없다”며 “음탐하사 생존여부도 확실치 않았고, 현재 상황에선 구조가 우선이라고 판단했다”고만 답변했다.

이 발언내용은 사고 직후 전혀 공개되지 않았으나 두달이 지난 2010년 5월 25일자 조선일보가 “천안함 함장 최원일 중령도 오후 10시 32분쯤 직속상관인 22전대장 이원보 대령에게 ‘어뢰 피격 구조 요청’을 했고, 오후 11시 50분쯤 작전사령관 박정화 중장에게도 같은 내용을 보고했으며 김성찬 해군참모총장도 이날 오후 11시 59분쯤 함장에게서 ‘어뢰에 피격’이라는 보고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하면서 알려지게 됐다.

이를 두고 천안함 재판 대변 변호인인 김형태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24일 “어뢰에 맞았다는 얘기는 매우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는데, 적의 도발에 대해 직후에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더 물어보지도 않고 아무런 통제와 조치를 안했다는 것”이라며 “매우 신뢰하기 어려운 발언으로, 실제 이런 통화내용이 있었는지조차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대령은 자신이 그 다음날 유족 설명회를 할 때도 이와 관련한 아무런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또한 김 변호사는 작전상황도상에 해군이 함수라 주장하는 지점에 배가 몰려있는 것에 대해 “한 사람도 남아있지 않았다는 함수에 구조함들이 이렇게 모여있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한목소리로 ‘구조가 우선’이라고 했던 사람들이 왜 함미는 찾지 않고 왜 엉뚱한 곳에 몰려있느냐”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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