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보에서 5개월 사이에 같은 편집국장을 두 번이나 대기발령 징계를 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져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편집국장 징계사유가 대주주인 정수재단 비판 기사를 삭제하라는 경영진의 지시를 거부했다는 것과 여당에 비판적인 지면에 따른 독자 불만으로 인한 절독이라는 점에서 언론장악 논란이 수도권에서 대표적인 총선 격전지로 꼽혔던 부산지역으로 번질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편집국 장악 논란은 부산일보가 지난 18일 이정호 편집국장을 징계위에 회부해 대기발령 징계를 내리면서 촉발됐다. 부산일보 경영진은 지난해 11월에도 대주주인 정수재단 비판 기사 삭제 지시를 거부한 이 국장에게 대기발령 징계를 내려 강제로 끌어 내리려 했지만 법원이 이 국장이 제기한 '근로자 지위보전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부산일보 경영진이 교체되면서 관계 개선 기대도 있었으나 새로 바뀐 경영진 또한 총선이 끝나자마자 이 국장에 대한 징계를 강행하면서 부산일보 안팎에서는 편집국을 흔들려는 보이지 않는 정치적 외풍이 작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징계가 부산일보 신임 경영진이 최필립 정수재단 이사장을 만나고 온 뒤에 일사천리로 진행되면서 이번 징계가 경영진의 독단이 아닌 정수재단의 의중이 담긴 징계라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후임으로 정수재단 이사장 자리를 이어 받은 최 이사장은 박 위원장과는 오랫동안 친분을 맺어온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최 이사장은 지난 11월 정수재단 사회환원 문제가 불거졌을 당시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부산일보 편집권은 재단으로부터 독립돼 있다고 강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권이 마음만 먹었으면 부산일보를 벌써 장악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이중적 속내를 드러내 논란을 일으켰었다.

이 때문에 부산일보 안팎에서는 부산일보 지분 100%를 쥐고 경영진을 마음대로 선임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는 정수재단이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 되기 전 부산일보 편집국을 정리하는 사전 정지작업을 밟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걸림돌이 될 만한 인사를 미리 제거하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이 20일 성명에서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겨냥하고 나선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언론노조는 성명에서 "총선 이후 드디어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자신의 대선 가도를 위해 언론장악 기도를 노골화하고 있다"며 부산일보의 편집국장 징계를 강하게 비판했다.

시민단체인 민주언론시민연합도 19일 성명에서 "눈엣가시 같은 이 국장을 쫓아내고 편집권을 장악하겠다는 의도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며 징계 철회를 요구했다.

민언련은 "더 나아가 편집권을 장악하려는 의도가 오는 12월 대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과 무관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정수장학회가 부산일보에 대한 경영간섭도 모자라 대선을 앞두고 편집권까지 장악하려는 의도를 노골화한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산일보는 정치적 오해를 피하기 위해 총선이 끝날 때까지 징계를 유보해 왔던 것이라며 재단과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이정호 편집국장은 이번 회사의 대기발령 징계 역시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절차와 징계사유에 하자가 있는 부당 징계라는 입장이다. 이 국장은 "지면이 편파적이었다는 사측의 주장을 인정할 수 없다"며 법적 대응에 나설 뜻을 밝히고 있다.

이호진 부산일보 노조위원장도 "경영진이 최 이사장을 만나고 온 뒤 편집국장 징계에 나선 것은 정치적 배경이 있다고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노조를 배제한 채 사측 위원으로만 이뤄진 징계위를 여는 등 절차상 문제가 있기 때문에 회사의 편집국장 징계를 수용할 수 없다는 게 노조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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