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 교육감 항소심 선고 때문에 마음이 무겁다. 하지만 그 무거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코미디 하나 소개한다. 최근 조선일보가 저지른 황당한 사건 중 베스트 3에 들어갈 만한 일이 일어났다. 어느 학급 급훈이 김정일 어록에 나오는 말이라는 것이다. (조선일보 기사 링크) 그러면서 요즘 맛붙인 종북 논란으로 몰고가고 있다. 나는 국민이 굶고 있는데 군대 먼저 키운다는 황당한 북한 정권을 매우 싫어하며, 그런 북한의 실정에 대해 엉뚱한 해석을 붙이는 종북주의자들도 혐오한다. 하지만 엉뚱한 일에 닥치는대로 종북 딱지를 붙이는 냉전에 눈 먼 사람들을 가장 싫어한다. 바로 이 기사가 그렇다.

우선 이 기사에는 불법의 소지가 있다는 점을 밝혀둔다. 이 기사의 소재인 이른바 김정일 어록 인용 급훈은 국가보안법 위반 수사 과정에서 압수한 물품에 적혀있는 글귀이며, 또한 그 물품도 급훈이 아니라 학교 안내판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조선일보는 피의사실 공표죄에다가 허위사실 공표라는 두개의 죄를 범한 셈이다. 그리고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이미 이 두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하지만 이 보다 더 우스운 것은 그 김정일 어록에 나온다고 하는 말이 무려 "오늘을 위한 오늘을 살지 말고, 내일을 위한 오늘을 살자" 라는 것이다. 즉 아무나 할수 있는 매우 평범한 말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말, 초등학교때 누군가에게 한번쯤 들었을 법한 말 아닌가?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큰 꿈을 가지자."라는 말의 다양한 변주중 하나 아닌가? 

아마 이 교사가  "최선을 다해 그날의 임무를 다하자"라는 말을 급훈으로 걸어 놓았다면, 이 역시 틀림없이 조선일보의 안테나에 걸렸을 것이다. 김정일은 전국의 농장이나 공장을 돌아다니면서 이런 말을 틀림없이 한번은 했을 것이며, 김정일이 지껄이는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 한마디 반드시 어록에 기록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왕 시작한 거 조금 더 놀아 보자. "조국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자" 이런 말도 아마 김정일 어록을 뒤지다 보면 틀림없이 한 두번 있을 것이다. 또 김일성을 어버이라고 불렀던 북한의 관행을 보면 "어버이를 공경하자"란 말도 아마 한 두번 쯤 나올지 모르겠다.

평양 시내에 거대한 단군릉 만든 것을 보아하니 "우리 조상은 단군왕검이다."라는 말도 김일성이든 김정일이든 어록에 적혀 있을 지 모르는 일이다. "조국 통일을 위해 노력하자.",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을 잊지 말자", "세종대왕은 훌륭한 임금이었다." 이런 것들도 어록에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은 후보군이다.

만약 그 급훈이라는 글이  "오늘을 위한 오늘을 살지말고, 내일을 위한 오늘을 살자 -(김정일)" 이렇게 표시되었다면 얘기가 좀 달라질 수 있다. 듣기에 그럴듯한 말을 먼저 소개하고 그 다음 그 말이 김정일의 말임을 밝힘으로써 일종의 간접적인 고무찬양이 된 셈이니. 하지만 그저 착하게 들릴 뿐인 말을 누가 한 말인지 안 밝히고 걸어 놓는다면, 그걸 통해서 김정일을 떠올리고, 북한에 대한 고무 찬양을 느낄 정도로 시공간을 초월한 상상력을 가진 사람이 과연 지구상에 몇명이나 될까? 오히려 그런 말을 보고 김정일이 떠오르는 기자가 더 수상하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김정일 어록을 평소에 얼마나 많이 보고 있었으면 저 사소하고 평범한 말이 김정일 어록에 있는 말인지 알아냈단 말인가? 난 김정일 어록을 한번도 본적이 없어서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니 조선일보는 엉뚱한 일에 종북 딱지 붙이지 말자. 그런 식이면 김정일도 쉬고, 김정은도 쉬는 숨을 쉰다는 이유만으로도 종북이 된다. 정 조선일보가 반북의 기치를 높이 들고자 한다면 우선 사호부터 바꾸고(북한의 국호와 같다), 북한의 부정적인 면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그걸 실질적으로 따라하고 찬양하는 집단이 있는지 살펴본 뒤, 그  집단을 종북으로 규정하여 비한해야 한다.

북한 정권이 비난받는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3대세습과 자유압살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3대세습과 자유압살의 산 증인이 있다. 이미 알만한 사람은 벌써 답이 떠오를 곳이다. 정당한 주주의 재산을 교묘하게 3대에 걸쳐 세습하고, 민주주의 국가의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사원들의 말과 행동을 철저히 통제하는 곳이 두 군데 있으니 바로 삼성과 조선일보다. 이들이야 말로 북한 정권의 가장 나쁜점을 실질적으로 공유하고 있으니 우연히 김정일과 말 몇마디 겹친 경우보다 훨씬 실질적인 종북이 아닐까?

그러니 반공, 반북정신에 투철한 조선일보 기자님들은 삼성과 조선일보의 종북성에 대해 필봉을 휘두르기 바란다. 자기가 속한 회사의 오너라 하더라도 종북이라면 성역없는 비판의 펜을 휘두르는 것,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반북의 전사가 갖추어야 할 미덕 아닌가?

어버이연합도 1년동안 북한, 통일에 대해 거의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곽노현 교육감한테 시비걸지 말라. 소위 진보진영 인사중 통일, 북한 문제에 이토록 무관심한 분도 사실 처음 볼 지경이다. 겨우 한 마디 언급한 것이 남북 탁구 단일팀일 정도니. 그러니 어버이연합이 애국해야 할 곳은 바로 삼성, 조선일보다. 이 대명천지에 3대세습이 웬말이란 말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마디. 나는 "오늘을 위한 오늘을 살지 말고 내일을 위한 오늘을 살자."란 말에 반대한다. 그 까닭은 내가 존 듀이·셀레스탱 프레네 등의 교육학으로 무장한 진보교육자임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단번에 알아차릴 것이다. 교육혁신이란 바로 "내일"을 담보로 "오늘"을 저당잡히는 어리석음으로부터 학생들을 해방시켜서 그들이 오늘의 행복을 오늘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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