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치사상 처음으로 ‘독재’라는 꼬리표를 달지 않은 정권이 들어선 지 2년이 지났다. 그러나 주변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우리 현실이나 미래의 전망에 대해 비관적인 논평을 하는 것을 발견한다.

이는 문민정부 출범때 천명한 그 요란한 개혁의지가 슬쩍 사라져 버린 것에 못지 않게 실질적인 민주주의의 실현이 여전히 요원하다는 데서 오는 절망감때문일 것이다. 바로 이런 절망감을 퍼뜨리는데에 크게 한 몫을 거드는 것이 언론매체들이다.

한 사회의 민주주의의 실질적인 실현을 재는 척도는 언론이다. 우리의 경우 지난 2년여 사이에 과거 독재정치를 받쳐오던 권력기구들은 많이 축소되거나 약화됐다. 그러나 해방후 50여년동안 독재정치에 길들여져 온 언론의 힘은 더 커지고, 더 광포해졌다.

그래서 한 사회에서 진정한 민주주의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경찰, 정보기관 등이 저지르는 인권침해에 저항하는 것에 못지 않게 일상생활에 스며있는 언론의 구조적 폭력도 우리는 문제삼아야 한다. 내가 만난 일본의 한 유력 일간지 기자는, 일본언론인들은 늘 유럽언론과 자신들을 비교하면 열등감을 갖게 된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언론에 대해서는 경악을 금치못한다는 표현을 서슴지 않고 사용했다.

신문사간의 무분별한 증면경쟁이나 치열한 경쟁에서 오는 선정주의보다도 더 심각한 것은 언론보도의 부정확성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이런 언론보도의 편파성을 접하면, 나는 동서분단의 상황에서도 3개의 텔레비젼 방송사가 사회민주당계열의 제1방송, 기독민주당계열의 제2방송, 그리고 보다 더 진보적인 입장을 표방하는 교육방송으로 나뉘어져 있던 서독의 경우를 떠올리곤 한다.

민주화된 사회는 국민에게 각기 다른 입장과 해석을 접할 기회를 제공, ‘공정한 게임’을 해야 한다는 모범을 보인 것이고, 바로 이런 측면이 분단된 서독을 보다 공고하고 건강한 사회로 만들고, 그래서 동독과의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노하우가 아닐까 한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까지 ‘거대한 공룡’인 언론사의 횡포앞에서 무장해제당한 채 살아가야 하는가? 과거의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정직한 교훈은 ‘풀뿌리 민주주의는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조직된 힘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작업의 구체화로 우리는 우선 바른언론을 지키기 위한 시민운동을 광범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전개할 필요가 있다. 둘째로는 개인이나 집단의 차원에서 언론중재위원회나 정정보도청구소송을 통해 왜곡보도에 대한 정정을 받아내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시민운동 단체들의 지원이 절대 필요하다. 세째로 거대언론사의 횡포에 대적하는 방법으로 ‘대안적인 언론’을 모색하는 매체들을 지원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이런 노력들이 축적될 때 비로소 우리 사회에서는 건강한 언론과 더불어 일상생활속에서 민주주의가 정착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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