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병원 출입문은 닫혀 있었다. 간접고용돼 십 수 년 동안 병원에서 음식을 만들고 나른 노동자 10여 명이 점거 농성 중인 곳이다. 점거 일주일째, 아직 병원의 공식적인 방안은 나오지 않았다. 앞서 13일 밤 노동자들과 병원은 실무진을 구성해 문제를 해결하자고 합의했다. 노동자들은 한일병원이 직접 자신들을 고용하고 노동조합을 인정하라고 요구했다.
 
계약해지에 반대하는 시위가 100일을 넘기면서 위탁업체 CJ프레시웨이는 5명부터 단계적으로 고용승계를 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노조는 수용할 수 없었다. 쌍용차와 기륭전자의 경우처럼 이런 약속은 지연되거나 지켜지지 않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선별적 복직으로 노조가 분열되는 모습을 봐왔기 때문이다.
 
농성 6일차인 지난 15일 오후 서울 도봉구 쌍문동에 있는 한일병원을 찾았다. 병원 정문에는 이들이 1월 설치한 것보다 두 배나 큰 천막이 세워져 있었다. 닷새 전인 지난 10일 밤 농성 중에 병원 직원들로부터 ‘물리적’으로 쫓겨난 민주노총 활동가들은 병원 바깥에 전경버스 주변에 자리를 잡았다.
 
이중 출입문 너머로 보이는 사람은 노동자만이 아니었다. 이들이 한 손에 목줄을 쥐고 있는 농성장 좌우로 경찰 두 명과 병원 직원 세 명이 있었다. 점거 농성 중인 노동자들은 현재 아홉명으로, 몸이 좋지 않은 노동자 한 명, 안과 밖을 연결하는 한 명이 빠졌다. 최초 계약해지된 19명 중에 8명은 100일 동안 다른 곳에 취업하거나 농성에서 빠졌다.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인재근 도봉갑 당선자, 노회찬 노원병 당선자(통합진보당 대변인), 정동영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등 정치인들도 꽤 많이 들렀다. 이들은 노동자들을 부둥켜안고 중재에 힘썼지만 병원이 적극적으로 해결에 나서지 않고 있다.

송영옥 분회장은 “병원이 오늘밤 우리를 밖으로 내쫓고 ‘나 몰라’ 해도 이상하지 않다”며 “노조를 만들면서 밉보인 게 크다”고 걱정했다. 노조를 만들지 않았다면 아마도 매년 그랬듯 계속 일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에서의 우려였다. 실업급여가 끊긴 사람들이 생기고 있고, 1~2년 계속 싸울 수는 없다. 노조 만든 걸 후회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송 분회장은 “후회하지 않는다”며 “왜 쌍용차 노동자들이 점거를 했는지, ‘해고는 살인이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알겠다”고 밝혔다. 요즘 그는 잠도 끼니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고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면 원청은 하청을 바꾸고, 새로운 하청은 노동자들과 계약하지 않는 경우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한일병원 노동자들과 한 날 한 시에 계약해지된 인천공한 세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가 그랬고, 셀 수 없는 청소용역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하청 하나 따내려고 줄을 선 자동차·조선업체는 말할 것도 없다. 원청은 ‘갑’이고, 노동자는 병이나 정이 된다. 한일병원과 노동자들 사이에는 업체가 두 곳이나 끼어 있다. 조리노동자의 경우, 중간에 파견업체가 더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들의 요구는 애시당초 ‘직접고용’이 아니라 고용승계였다. 병원 내 급식은 의료행위의 일부기도 해 병원이 직접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된 논리이다. 반면 병원은 대책이라고 할 만한 것을 내놓지 않고 있다. 총무처에 몇 차례 연락하고 전화번호도 남겼지만 취재가 여의치 않았다.

병원 경영진의 의견을 유추해 볼 수 있는 통로는 병원 정규직들이었다. 농성장 한편에 앉아 있는 한 병원 직원이 “당사자들이 가장 마음이 아프겠지만 노노갈등이 되는 것 같아 우리도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병원 직원들은 한전의료재단이 직접 병원을 운영하던 시절에 입사해 ‘구조조정’을 겪은 당사자들이기도 하다. 이들은 “매점과 영안실도 예전에는 병원에서 직접 운영하고 모두 병원 직원이었지만, 지금은 외주를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병원이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 점거농성을 선택했다는 노조의 의견에 절반 정도 동의했다. 병원이 나설 부분도 있지만 점거는 ‘불법’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민주노총이 개입하면서 해결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해법에는 △정규직이든 계약직이든 병원이 ‘하청의 하청’을 중단하고 직접 운영하는 방안 △CJ프레시웨이 이후 들어올 업체와 계약을 맺을 때 원청이 ‘고용승계’를 공식적으로 조건으로 내거는 방안 등이 있다. 현재 CJ측은 점거 농성 이후 운영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병원에 전달했다.
 
농성장을 찾은 병원 정규직들도 언젠가 자신도 같은 처지에 놓일 것이라는 불안감을 갖고 있다. 한 직원은 “미래의 내 모습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병원 경영진의 대응은 현재까지 출입문을 닫은 것뿐이다. 병원 측은 16일 ‘용역업체 계약 시 채용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답변했다. 노동조합을 인정해달라는 요구에 병원은 ‘노조법 상 사용자가 아니다’라는 입장이며 복직까지 생계비 지급 요구도 ‘수용 불가’라고 밝혔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노동조합법 상 사용자가 아니라는 한일병원에 대해 진짜 사장이라고 주장하면서 농성을 계속 할 계획이다. 병원의 답변서를 본 송영옥 분회장은 16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병원 측과 자꾸 만나다 보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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