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의 나치 포로수용소에서 초연된 음악
                
1941년 1월 15일, 영하 20도를 넘는 혹한의 실레지아 포로수용소. 2차 세계대전의 성난 숨결을 잠시나마 멎게 하는 피아노,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의 화음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치 독일군에 잡힌 프랑스, 벨기에, 폴란드 포로 3만 명이 수용되어 있던 이곳에서 올리비에 메시앙(1908~1992)의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곡>이 세계 초연되고 있었던 것. 포로였던 33살의 작곡가 메시앙이 직접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악기는 거의 폐품이었다. 파스키에가 연주한 첼로는 줄이 세 개밖에 없었고, 내가 친 피아노의 오른쪽 건반들은 쿡 누르면 다시 튀어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헐어빠진 군복 차림이었다….”

포로가 된 5천명의 병사들, 그리고 이들을 포로로 잡은 독일군들이 함께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메시앙의 회고에 따르면 “내 작품을 이토록 황홀하게, 주의 깊게, 잘 이해하며 듣는 청중은 없었다.”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곡> 중 1악장 ‘수정의 예배’

요한계시록 10장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이 사중주곡은, 메시앙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비참한 시대에 최후의 생명력을 다시 일으키는 것, 내가 언제나 희구해왔고 언제나 가장 사랑해온 것, 즉 크리스트의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다시 떠올리고자 한 작품”이다. 이 곡이 8개의 악장으로 되어 있는 것은 6일간의 창조, 7일째의 안식일, 그리고 마지막 제8요일, 즉 ‘평화의 날’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작곡된 과정을 짚어보면 이 곡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전쟁의 비참함 속에서 오로지 음악으로 삶과 희망을 지켜낸 인간 의지의 위대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음악의 힘으로 죽음의 어둠을 기꺼이 헤쳐 나가리!” 18세기 말, 모차르트가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열렬히 노래한 이 말이 20세기 중반,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조금도 변치 않는 진리였음을 깨닫게 해 주기 때문이다.

새벽, 희망의 새소리

메시앙은 1939년 11월, 독일이 침공하기 일주일 전 프랑스군에 입대하여 가구 운반병으로 배치된다. 이듬해 5월, 독일군은 ‘전격전’을 감행한다. 그 직후인 6월 20일 메시앙은 숲속에서 잡혀 포로가 되고, 베르덩의 임시 수용소에 갇힌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이 유명한 첼로 연주자 에티엔느 파스키에였다. 그는 첼로를 갖고 있지 않았다. 파스키에와 메시앙은 함께 불침번을 서며 새벽의 새소리에서 음악을 상상했다.

   
 새소리를 받아 적는 메시앙. 그는 세계 각처의 새소리를 채집하여 자신의 음악에 용해시켰다.
 

메시앙이 말한다. “봐요, 저기 희미한 빛이 반짝이죠? 새벽이에요. 주의 깊게 들어보세요. 햇빛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주의를 기울여 보세요.” 침묵이 흐른다. 갑자기 ‘피잎!’ 하는 작은 새소리가 들려온다. 지휘자처럼 기준음을 잡는 새소리다. 5초 후, 모든 새들이 오케스트라처럼 한꺼번에 노래하기 시작한다. 메시앙이 말을 잇는다. “들어보세요. 저 새들은 하루 동안의 임무를 분담하고 있어요. 밤에 다시 만나서 낮에 보고 들은 것을 함께 얘기하자고 약속하는 거에요.”

파스키에의 증언. “메시앙이 불침번을 설 때마다 나는 그와 함께 했습니다. 매일 비슷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트윗! 피잎!’ 몇 초가 흐르지요. 그러면 갑자기 새들의 오케스트라가 일제히 노래를 시작해요. 귀가 먹먹할 지경이죠. 잠시 후 노래가 멈추면 하루가 시작되죠. 저녁때 확인해 보면 새들은 진짜 메시앙 말대로 낮에 보고 들은 것을 함께 얘기하는 거였어요.”

메시앙, “연주할 수 있어요, 해 봐요.”
아코카, “나를 위해 뭔가 작곡해 주세요.”

포로들 중 클라리넷 연주자 앙리 아코카는 자기 악기를 갖고 있었다. 메시앙은 아코카를 만나자 그를 위해 무반주 클라리넷을 위한 ‘새의 심연’을 작곡해 주었다. 파스키에와 함께 들은 새소리가 이 곡에 영감을 준 것. 이 ‘새의 심연’은 나중에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곡>의 3악장이 된다. 여덟 개의 악장 중 제일 먼저 작곡한 게 이 3악장이었다. 

베르덩에서 낭시까지 70Km의 행군이 이어졌다. 나흘 동안 식사는커녕 물 한 방울 못 마신 채 포로들은 걷고 또 걸었다. 메시앙보다 4살, 파스키에보다 7살 아래였던 아코카는 지친 선배 음악가들의 힘이 되어 주었다. 파스키에의 증언.

“아코카는 내게 충실하고 친절했다. 비교적 젊고 건장했던 아코카는 나를 부축해 주었다. 그는 어떤 의미에선 내 생명의 은인이었다. 낭시로 가는 동안 우리는 먹지도 못한 채 끝없이 걸어야만 했다. 허기져서 쓰러질 것 같았다. 내가 기운을 되찾을 때까지 아코카는 나를 지탱해 주었다. 그는 한 번도 나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었고 음악도 아주 잘 했다.”

낭시에 도착하자 처음으로 물을 나눠 주었다. 수천 명의 병사들은 조금이라도 빨리, 한 방울이라도 더 마시려고 서로 싸우고 난리였다. 그러나 메시앙은 수용소 뜰 한편에 앉아 주머니에서 악보 한 장을 조용히 꺼냈다. ‘새의 심연’이었다. 낭시의 수용소에서 아코카는 이 곡을 처음 연주해 볼 수 있었다. 아코카는 연주했고, 메시앙은 들었고, 악기가 없는 파스키에는 보면대 역할을 했다.

아코카는 “너무 어려워서 연주 못 하겠다”며 난감해 했다. 메시앙은 그를 격려했다. “아니, 할 수 있어요, 해 봐요.” 메시앙이 작곡할 의욕을 잃은 채 넋을 놓고 있으면 아코카가 격려했다. “나를 위해 뭔가 또 작곡해 줘요. 우리는 포로에요. 시간이 많잖아요? 음악을 좀 쓰세요.”

음악의 힘으로 살아남은 ‘프랑스의 모차르트’

낭시에서 3주 동안 머문 뒤 세 사람은 실레지아로 이송됐다. 그곳에 도착하자, 자동 소총을 든 독일군 장교 한명이 메시앙의 몸을 수색했고, 가방을 압수하려고 했다. 메시앙은 그가 지을 수 있는 가장 무서운 표정으로 저항했다.

“나는 다른 포로들과 마찬가지로 옷을 다 벗어야 했다. 벌거벗었지만 나는 나의 모든 보물이 들어 있는 손가방을 단호한 표정으로 지켜냈다. 그 가방에는 굶주림과 추위로 고통 받을 때 위안이 될 관현악곡 포켓판 악보들이 들어 있었다.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부터 베르크의 ‘서정조곡’까지, 나에게는 복음서와 같은 음악들이었다.”

   
  젊은 시절의 올리비에 메시앙 (1908~1992)
 

메시앙의 ‘무서운’ 표정에 기가 꺾인 독일군 장교는 결국 가방을 압수하지 않았다. 식량이 모자라 하루에 수프 한 그릇, 고래 비계 한 덩어리, 검은 빵 하나, 감자, 양배추로 때우는 나날이 계속됐다. 뼈만 남은 포로들 중에는 이빨과 머리카락이 숭숭 빠지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추위가 오면 동료들의 체온으로 얼어 죽는 걸 면해야 했다. 메시앙은 하루에 두 차례 사역을 나가야 했다. 그러나 음악이 있었기에 메시앙은 기꺼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메시앙이 뛰어난 작곡가라는 사실이 캠프 안에 알려지자 독일군 장교 하우프트만 칼-알버트 브륄이 나서서 작곡할 수 있게 배려해 주었고, 수용소 안에서 음악을 연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는 메시앙의 막사 앞에 보초까지 세워 그가 방해받지 않도록 해 주었다. 독일인들이 음악을 이해하고 음악가를 존중한 것은 메시앙에게 크나큰 행운이었다. 당시 프랑스에 비시 괴뢰 정권이 수립된 직후라 그랬는지, 나치는 프랑스 포로들에게 비교적 ‘인간적’인 대우를 베풀었다. 메시앙의 음악을 위해서는 다행스런 일이었다.

포로였던 샤를르 주르단의 증언. “우리가 ‘프랑스의 모차르트’라는 애칭으로 불렀던 그 사람이 사역을 하지 않도록 동료 포로들이 모두 배려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부인 이본느 로리오 여사의 증언을 들어보면 메시앙의 수용소 생활이 호사스러운 것은 결코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용한 곳’이라고 독일군이 제공한 장소가 수용소의 화장실이었던 것. “생각해 보세요, 정말 감동적이지요! 불쌍한 메시앙, 3,000명의 포로들이 사용하는 화장실에 앉아서 작곡을 했다니…. 그리 깨끗한 장소가 아니었어요. 아무도 그를 방해하지 않도록 화장실에 가둔 채 이 사중주곡을 쓰게 한 거에요.”

제8일, 평화의 날을 위하여

이곳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장 르불레르가 합류했다. 음악을 사랑하는 독일군 장교 하우프트만 칼-알버트 브륄이 이들에게 악기를 지급했다. 르불레르는 바이올린을, 파스키에는 첼로를 갖게 됐다. 그러나 파스키에의 첼로는 줄이 하나 모자라는 것이었다. 메시앙은 이 세 사람을 위해 바이올린과 클라리넷과 첼로를 위한 삼중주곡 하나를 써 주었다. 이 곡이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곡>의 4악장 ‘간주곡’이다. 이 ‘간주곡’은 리듬과 화성이 단순하고 가장 가볍다. 다른 악장에서 발전되는 주제의 단편들이 이 악장에 들어 있다. 따라서 이 단순한 악장을 주춧돌로 삼아 점점 더 크고 복잡한 음악적 건축을 쌓아 올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클라리넷 독주를 위한 ‘새의 심연’이 3악장이 되고, 클라리넷과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간주곡’이 4악장이 됐다. 메시앙은 바이올린과 첼로에게도 독주 악장을 하나씩 주었다. 5악장,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예수의 영원성을 찬양함’은 옹드 마르트노를 위한 <아름다운 물의 축제>(1937)의 한 부분에서 따 왔다. 8악장,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예수의 불멸성을 찬양함’은 오르간 작품인 <딥티크>(1930)를 다시 손질했다. 이 두 악장은 E장조로, 영원성을 명상하는 노래라는 점에서 대칭을 이룬다. 바이올리니스트와 첼리스트를 위한 솔로 악장은 피아노 없이도 혼자 연습할 수 있게 했다.

수용소에는 고물 피아노가 하나 있었다. 메시앙은 그 피아노를 자기가 맡으면 네 명의 포로가 사중주곡을 연주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피아노를 포함한 네 악기가 모두 등장하는 악장은 1, 2, 6, 7악장, 도합 네 악장이다. 따라서 모두 8악장으로 된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곡>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1악장 ‘수정의 예배’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http://www.youtube.com/watch?v=Zr9QMnXi9LQ
2악장 ‘시간의 종말을 알리는 천사를 위한 보칼리제’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http://www.youtube.com/watch?v=yB-42xgoD4g
3악장 ‘새의 심연’ (클라리넷)
http://www.youtube.com/watch?v=tCKP17Lv3oc
4악장 ‘간주곡’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
http://www.youtube.com/watch?v=k0wqoWSD6bg
5악장 ‘예수의 영원성을 찬양함’ (첼로, 피아노)
http://www.youtube.com/watch?v=w0GDpstZMTg
6악장 ‘7개의 트럼펫을 위한 분노의 춤’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http://www.youtube.com/watch?v=pk6eJO3fAV8
7악장 ‘시간의 종말을 알리는 천사를 위한 무지개의 혼란'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http://www.youtube.com/watch?v=i5bo_Ekhg1k
8악장 ‘예수의 불멸성을 찬양함’ (바이올린, 피아노)
http://www.youtube.com/watch?v=4neZdQ14wik

정경화가 연주한 8악장 http://kr.youtube.com/watch?v=MQiH0csUPP0&feature=related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를 위한 사중주곡…. 이러한 악기 편성은 음악사상 선례가 없다. 작곡이 진행된 과정은 소설만큼 흥미롭다. 음악 동료가 나타나고 악기가 나타나면 메시앙은 그 상황에 맞게 작곡을 했고, 그 결과 이렇게 특이한 편성의 음악이 탄생한 것이다.

역사에 우뚝 선 네 명의 ‘음악 영웅들’

악기가 있으면 연주할 수 있다. 음악이 없는 척박한 땅이라면 돌이나 쇠를 악기 삼아 연주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2차 대전의 참화 속에서 피어난 음악의 기적은 첼로의 에띠엔느 파스키에, 클라리넷의 앙리 아코카, 바이올린의 장 르불레르, 그리고 음악을 삶과 동일시하는 올리비에 메시앙이 있었기에 이뤄질 수 있었다. 메시앙의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곡>은 음악으로 기적을 만들어 내는 인간의 위대한 능력, 오르페우스에서 모차르트를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음악의 크나큰 힘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실레지아의 포로수용소에서 이 곡을 초연한 네 명의 음악가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만들어 낸 ‘음악의 영웅들’로 기억될 것이다.

부도덕한 정권의 방송 장악이 완고하다. 이에 저항하는 방송인들의 투쟁이 더 길어질 전망이다. 날이 갈수록 상처는 깊어가는데, 해결을 위해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게 됐다. 이 끔찍한 불통과 기만의 시간, 그 종말은 언제일까? 방송의 신뢰와 독립성을 되찾고자 하는 우리들의 희망과 의지, 그 악기로 연주하는 우리들의 음악은 ‘시간’에 대해 승리할 수 있을까.

<시간의 종말을 위하여 - 메시앙 사중주곡 이야기>를 쓴 레베카 리신은 이렇게 책을 끝맺는다. “1941년 1월 15일, 실레지아의 독일군 포로수용소에서 음악은 시간에 대해 승리했다. 네 명의 프랑스 포로와 청중들은 리듬의 사슬을 끊고 시대의 공포로부터 해방됐다.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곡>은 서양 음악의 역사와 규범 속에서 자기 위치를 찾았다. 아니, 더 중요한 것은 이 곡이 우리 가슴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았다는 점이다. 놀랍도록 숭고한 이 음악적 아름다움은 청중과 연주자를 함께 고양시킨다. 이 음악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는 가장 끔찍한 시대마저 초월할 수 있는 인간 의지와 음악의 힘을 증거하고 있다.” , by Rebecca Rischin, 2003, Cornell University Press,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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