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이 제작하는 인터넷매체 ‘단비뉴스’가 지난 2년 동안 이뤄낸 성과가 눈부시다.

언론인을 지망하는 단비뉴스 학생기자 40여명은 우리사회 빈곤문제를 심층취재하기 위해 직접 일용직과 비정규직을 얻어 취업했다. 그리고 짧게는 2주에서 길게는 한 달 가까이 현장에서 직접 체험한 일들을 기사화하기 시작했다. 무려 1년 반에 걸친 장기 프로젝트였다.

기성언론들도 시도하기 어려운 단비뉴스 취재팀의 이 기획기사들은 다른 매체들이 전문을 받아 게재할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여러 출판사에서 책으로 내자는 제안도 받았다. 그 결과물은 최근 <벼랑에 선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결실을 맺었다.

기자들이 써낸 기사에는 가락시장에서 파 자루를 밤부터 새벽까지 12시간을 옮기고 나니 수전증 환자처럼 손을 떨며 밥을 먹었다는 이야기, 하루 6000원짜리 쪽방에서 벌레 몇 마리까지는 눌러 죽였는데 다리가 수백 개 달린 벌레가 기어가는 것을 보고는 잡는 걸 아예 포기해 버리고 눈을 붙였다는 이야기 등 직접 겪지 않으면 쓸 수 없는 생생한 문장들로 넘쳐난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은 단비뉴스 취재팀이 퍼 올린 기사에 대해 ‘언젠가부터 사회비평이라는 허울 아래 인텔리의 게으른 펜 돌리는 소리만 글발이 난무하고 있는 저널리즘 현실에서 이 책은 다시 저널리즘과 글쓰기라는 작업에 신뢰와 희망을 되찾아주고 있다’고 극찬했다.

직접 이번 취재를 학생들과 기획한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자신도 “놀라운 경험”이었다고 밝혔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분야였지만 막상 그 집단에 속해 실상을 들여다보니 몰랐던 사실들이 더 많더라는 것이다. 그는 경영학으로 학위를 딴 이 분야 전문가다.

경제 전문가인 제 교수가 놀랐던 것은 생각보다 우리사회를 구성하는 피라미드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빈곤층이 아주 두텁고 생계와 주거가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있다는 사실이었다. 생계와 주거가 불안정하니 보육과 의료혜택에서도 소외돼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학생들이 직접 취업해 그들의 삶을 직접 겪고 토론하면서 가장 많이 한 얘기는 개인이 노력하지 않아서 가난하다는 사회통념과 달리 일용직과 비정규직으로 열악한 근로환경에서 최저임금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들에게 있는 게 아니었다. 취재를 해보니 진짜 문제는 이들의 노동을 착취하는, 열심히 일해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우리사회의 불합리하고 기형적인 구조에 있었다는 것이다.

제 교수는 “책 제목처럼 ‘벼랑에 선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로 현실이 심각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자리와 주거, 의료 등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해줄 수 있는 사회안전망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 교수는 이번 장기 기획취재로 얻은 또 하나의 중요한 성과는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의 현실을 알렸다는 것 외에 현재 중산층이라고 하더라도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만난 사람들 중에는 한때 가구공장 사장 등 자영업자들도 적지 않았다. 한 번의 사업실패로 빈곤층으로 전락한 경우였다. 빈곤 문제가 남의 얘기가 아니라 언제든 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제 교수는 특히 취재에 참여한 학생들이 써낸 글에서 청년세대의 불안을 읽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일용직과 비정규직으로 취업한 학생기자들은 관찰자의 시점이 아니라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자신들을 동일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 예로 패밀리 레스토랑 심야 청소원으로 위장 취업한 한 기자는 자신이 청소도구를 들고 들어갈 때 창피해서 직원들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왜 그런가 물었더니 실제로 자신의 주변에 일용직과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친구들이 있어 자칫하면 나도 이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고통스러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직 사회에 첫발을 내딛지도 않은 청년세대들이 느끼는 불안의 크기가 상당하다는 얘기다.

제 교수는 “선진국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는 복지제도를 전부도 아니고 일부라도 확충하자고 하면 재벌과 부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언론들이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한다”며 “일자리와 주거, 양육, 의료, 금융 등 사람들이 불안을 느끼는 부문에서 복지를 확충하고 양극화를 해소해야 사회 전체에서 성장이 이뤄질 수 있다”고 역설했다. 

제 교수는 이어 “이번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다시 한 번 신문과 방송 등 기성언론의 중요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부유한 상류층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채널이 다양하기 때문에 기성 언론이 크게 중요하지 않지만 빈곤계층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창구가 신문이나 방송과 같은 대중매체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기성언론들은 반대로 이들을 외면하고 광고주의 입맛에 맞춘 정보를 쏟아내는데 혈안이 돼 있다.

제정임 교수는 단비뉴스의 성공을 바로 이 부분에서 찾았다. 기성언론이 외면하는 곳을 찾아가는 것, 기성언론이 말하지 못하는 것을 말하는 것, 언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단비 같은 존재가 되어주는 것, 그것이 단비뉴스의 존재가치라는 것이다.

그는 “기성언론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우리사회의 그늘을 지속적으로 조명하고, 소외돼 있는 지역 문제를 이슈화시켜 진정으로 언론이 필요한 사람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소중한 대안매체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제 교수는 “더 나아가 단비뉴스의 가치를 지지하는 비영리재단의 지원이 이뤄져, 선진국에서 이미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는 공익적 비영리 언론으로 단비뉴스를 성장시키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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