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본질은 사랑”, 피그말리온의 신화

키프로스의 왕 피그말리온은 여성의 결점을 너무 많이 알게 되자 여성 혐오증에 빠져 평생 독신으로 살 것을 결심한다. ‘지상의 헤파이스토스’라 불릴 정도로 조각 솜씨가 뛰어났던 그는 아무 결점 없는 아름다운 여인을 조각하여 함께 지낸다. 그는 조각상에게 ‘갈라테이아’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옷을 입히고 목걸이를 걸어주고 어루만지며 온갖 정성을 다해 사랑했다. 하지만 그는 외로웠고, 실제 인간이 그리웠다. 피그말리온은 신들에게 자신의 조각상과 똑같은 여인을 아내로 맞게 해 달라고 기도했고, 아프로디테 여신은 그의 지극한 사랑에 감동하여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다.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는 누군가에 대한 믿음이나 기대가 그 대상에게 변화를 일으켜 그대로 실현되는 긍정적 효과를 말한다. 사랑과 진정성이 있을 때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기적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자기가 만든 인형을 지극히 사랑한 나머지, 언젠가 사람으로 살아나리라 믿었던 한 노인이 있었다. 레오 들리브가 작곡한 코믹 발레 <코펠리아> 이야기다.

발레 <코펠리아>의 줄거리

인형을 만드는 괴퍅한 노인 코펠리우스 박사. 그는 자기가 만든 밀랍인형 코펠리아가 언젠가 생명을 지닌 인간으로 태어날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예쁜 인형 코펠리아는 언제나 발코니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다. 이웃 처녀 스와닐다는 자기를 아는 체도 안 하고 책만 보는 코펠리아의 정체가 궁금하다. 어느날, 약혼자 프란츠가 코펠리아에게 구애하는 광경을 본 스와닐다는 마음이 상한다. 

코펠리우스 박사는 저녁마다 문을 잠그고 한잔 하러 나간다. 열쇠를 손에 넣은 스와닐다와 마을 처녀들은 코펠리아를 만나기 위해 용기를 내서 몰래 그의 집에 들어간다. 스와닐다는 코펠리아가 인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안도한다. 그런데 어느새 코펠리우스 박사가 돌아왔다. 꼼짝없이 들키게 된 스와닐다는 코펠리아의 옷을 입고 자기가 인형인 척 한다. 린 벤자민이 스와닐다 역을 맡은 로열 발레 공연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sR7m9UT3u-8&feature=relmfu

   
 
 
사람이 인형 흉내를 낸다. 그러나 내막을 모르는 사람은 인형이 사람으로 변하는 줄 착각한다. 인형이 사람인지, 사람이 인형인지, 그 경계를 넘나드는 이 장면이 발레 <코펠리아>에서 제일 재미있는 대목이다. 2막, 여주인공 스와닐다가 밀랍인형 코펠리아를 흉내내고, 코펠리우스 박사는 오래도록 기다렸던 ‘그 순간’이 드디어 왔다고 생각, 프란츠의 기(氣)를 열심히 ‘인형’에게 주입한다. 그 이후 줄거리는 생략. 물론 해피엔딩이다.

인형이 사람인지, 사람이 인형인지

호프만의 원작 단편소설 <모래인간>을 생 레옹이 안무하고 레옹 들리브가 작곡, 1870년 5월 25일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했다. 프로이센 · 프랑스 전쟁과 파리 코뮌이 이어지는 격동의 시기에 탄생한 셈이다. 초연 직후 어려운 정치 · 경제 상황 때문에 성공이 어려울 걸로 예상됐으나, 결국 프랑스의 오페라 가르니에 무대에 가장 자주 오르는 작품이 되었다. 19세기 발레 중 헝가리 차르다슈, 폴란드 마주르카, 슬라브 주제, 중국 춤곡 등 여러 나라의 춤을 선보인 건 이 작품이 처음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린이처럼 천진한 등장인물의 성격, 그리고 이를 잘 살려주는 레오 들리브(1836~1891)의 한없이 맑고 사랑스런 음악이다. 이 작품은 작곡자의 출세작이기도 하다. 서곡과 1막 도입 부분.
http://www.youtube.com/watch?v=IIGrhRHVPDs&feature=related

맨 처음, 은은한 호른의 화음이 들려오고, 현악의 신비스런 멜로디가 이어진다. 이건 코펠리우스 박사가 인형 코펠리아에게 생명을 불어넣는(다고 생각하는) 대목의 모티브다. 자기가 만든 조각상에 사랑으로 생명을 불어넣는 ‘피그말리온의 테마’라고 이름 붙일 만한 주제다. 앞의 링크에서 이미 들으신 바 있다. 이어지는 빠른 템포의 선율이 ‘마주르카’다. (링크 2분 30초) 발레 <코펠리아> 중 가장 유명한 선율이지 싶다. 막이 오른 뒤 5분 35초 지점, 스와닐다의 솔로가 펼쳐진다. 앞의 ‘마주르카’와 함께 이 발레에서 가장 친숙한 곡일 것이다. 꽤 오래 전, KBS 1FM의 시그널로 사용된 적이 있다. 맑디맑은 음색과 각 파트의 섬세한 아름다움에 매료되시길….

긴 설명 없이 계속 발레를 편안히 감상하시면 될 듯. 아래 링크 3분 12초 지점에서 폴란드 민속음악 ‘마주르카’가 흥겹게 펼쳐진다. 마을 처녀 총각들의 군무다. 끝나는 지점의 팀파니 소리가 재미있다. http://www.youtube.com/watch?v=K5VgnfdokOs

젊은이들의 춤판이 이어진다. 아래 링크 48초부터는 스와닐다와 프란츠의 우아한 2인무다. 이어서 3분 지점부터 ‘슬라브 주제와 변주’다. 이 발레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악이다. 특히 4분 30초, 첼로가 부드럽게 노래할 때 바이올린이 빠른 패시지를 연주하는 대목, 얼마나 아름다운가! http://www.youtube.com/watch?v=PQw0SUvIcx0&feature=relmfu

가장 맑고 아름다운 대목,
‘슬라브 주제와 변주곡’

이 발레는 1985년 신입 PD 시절, <차인태의 출발 새아침>이란 프로그램에서 취재한 적이 있다. 갓 귀국한 문훈숙이 주연을 맡은 유니버설 발레단의 공연이었다. 생전 처음 실제 무대에서 발레를 본 셈인데, 위 슬라브 주제가 홀 안 가득 울려 퍼지는 순간은 얼마나 매혹적이었는지! 당시 리포터였던 한정실 아나운서의 표정이 떠오른다. 그는 놀란 얼굴로 나를 돌아보며 “정말 좋지요?” 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득한 옛날이구나…. 그 뒤 여러 발레를 알고 좋아하게 됐지만, 이 대목만큼 맑고 아름다운 음악을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다시 <코펠리아>로 돌아가자. 헝가리 농민들이 추수 축제 때 즐겨 춘다는 ‘차르다슈’. 
http://www.youtube.com/watch?v=CWMayOHsOOY

2막 첫 부분. 동네 처녀들이 코펠리우스 박사의 집에 들어가서 인형의 비밀을 발견하는 대목. 순진한 처녀들의 연기가 귀여워서 저절로 미소 짓게 된다. 7분 17초부터 ‘중국 인형의 춤’과 ‘인형들의 군무’ 가 이어진다. 어린이들이 보면 제일 좋아할 대목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kIUJaoeE4GE&feature=relmfu

다음은 아주 최근인 2011년, 러시아 국립 볼쇼이 아카데미 공연. 무대가 아주 예쁘고 화질도 뛰어나다. 공연 현장 갔다고 치고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보면 좋지 않을까?
1막 http://www.youtube.com/watch?v=KmP7wcVAJsw&feature=related
2막 http://www.youtube.com/watch?v=eTgmywigsZc&feature=related
3막 http://www.youtube.com/watch?v=uCj9V8Sua2w&feature=related

‘아바타’여, 인간으로 돌아오라!

봄이 오긴 왔나보다. 뜻밖의 편지가 MBC 전 사원 앞으로 날아왔다. 편지를 기다려 본 사람들은 안다, 그게 얼마나 설레는 일인지. 그의 ‘진의’와 ‘허심탄회한 소회’를 기대하며 편지를 읽는다. 늘 일방적 통고만 하던 이가 갑자기 보낸 다정한 편지.

“공정방송 함께 하자. 제도가 있고 의지가 있으니 얼마든지 가능하다. 공격적 경영을 위해 주말도 휴일도 없이 뛰다 보니 법인카드를 많이 쓰게 됐다. 노조가 이를 폭로한 것은 나의 도덕적 가치에 손상을 주려 한 행동이다. 할 일이 태산이고 선거방송이 코앞이다. 내부의 갈등을 풀어 소통과 대화합을 이루자….” 아무리 봐도 이 정도로 요약되는 내용, 도무지 ‘우리 모두의 봄’은 올 것 같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혹시나’ 했던 새로운 소식, ‘역시나’ 없다. 자진 사퇴 얘기는 물론, 해고 · 가압류 철회에 대한 언급조차 없다. 아내를 흠씬 두드려 패서 빈손으로 쫓아 낸 뒤 “사랑하니까 때렸다”고 태연하게 말하는 폭력 남편이 떠오른다. 상대방을 두 번 짓밟는 짓이다. 그러니 대다수 사원들이 냉소할 뿐이다.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으니 역시 ‘아바타’가 맞는 것 같다. “정당한 절차로 임명된 내가 낙하산이고 정권의 나팔수라면 MBC의 역대 사장은 모두 정권의 나팔수였고 낙하산이었다”는 편지 구절, 일단 역대 사장에 대한 심각한 결례가 아닌가 싶다. 게다가 이 말이 진심이라면 이 ‘아바타’의 두뇌 회로가 심각하게 손상되어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원래 자신이 ‘아바타’였고, 이른바 ‘합법적 선임절차’는 이러한 실상을 은폐하기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했다는 점을 몰라서 하는 얘기인가.

4월이지만 찬바람이 거세다. ‘아바타’ 하나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다. 진정성이 없으니 ‘아바타’가 사람으로 바뀔 가능성은 희박하다. 안타까움만 더해가는 나날이다. ‘아바타’는 스스로 물러날 때 비로소 인간으로 환생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적을 기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반짝이는 좋은 아이디어를 제안해 주신다면 흔쾌히 받아들이겠다”는 편지 구절, MBC 곳곳에 반짝이는 아이디어. “OUT! 반짝반짝!”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