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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조선> 11월호 보도에 대한 최장집 교수의 반박문 주요내용
<월간조선> 11월호 보도에 대한 최장집 교수의 반박문 주요내용
“월간조선 보도는 악의적 왜곡이자 모해”
‘6·25는 김일성의 역사적 결단’ 표현등 앞뒤 자른 자의적 해석에 날조까지


월간조선 11월호에 게재된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 최장집교수(고려대)의 충격적 6·25전쟁관 연구>에 대해 당사자인 최장집교수가 월간조선의 보도내용은 악의적인 왜곡이자 모해라며 그 사례를 조목조목 지적하는 반박문을 보내왔다. 사건 개요 및 왜곡·모해보도의 주요내용 및 반박 등으로 구성된 방대한 분량의 반박문 가운데 주요한 내용만 추려 싣는다.

▷월간조선 기사제목 표현 “6·25는 김일성의 역사적 결단”(206쪽)
이는 월간조선이 필자를 공격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근거로 주장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서 ‘역사적’이라는 표현을 월간조선이 주장하는 바대로 긍정적 의미로 사용한 것이 아니다. ‘역사적’이라는 표현은 그것이 이후 한국사회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라는 점을 의미하는 것일 뿐이다. 필자는 바로 그 뒷 문장에서 그같은 ‘역사적 결단’이 오판에 불과한 사실이라는 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그(김일성)의 우세에 대한 지나친 과신이 그를 전쟁을 통한 총체적 승리라는 유혹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하였고, 결국 그는 전면전이라는 역사적 결단을 내렸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김일성의 오판을 유도하였던 요소는….”(논문, p.76)

▷ “한국전쟁의 최대 희생자는 북한의 민중이라 해석”(207쪽)
한국전쟁 최대의 피해자가 북한민중이라는 지적은, 남한의 민중들의 희생이 더 적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 아니라, 김일성이 최대 수혜자였음을 대조하여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이 전쟁에서의 가장 최대의 희생자는 북한의 민중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북한에서도 가장 큰 수혜자는 김일성 그 자신이었다”(논문, p.77)

▷ “중공군의 개입을 변호했다.”(208쪽)
필자는 그 어디에서도 한국전쟁에 중공군의 개입을 변호한 적이 없음. 중공측의 입장에서는 이제 갓 1년 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자국의 혁명을 방어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 “한 마디로 한국전쟁의 책임을 북한의 김일성에게만 묻지 말라는 입장을 취했다.”(209쪽)
글 전체를 통해 필자는 북한의 남침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으며, 그 책임을 엄중히 묻고 있다.
“우리는 6월 25일 새벽 4시 반경 북한이 38도선으로부터 선제공격을 감행하면서 한국전쟁이 개시되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는 않는다”(논문, p. 127)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위의 표현이 일견 유보적으로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표현은, 북한의 남침사실에 대한 유보적 평가가 결코 아니라, 한국전쟁의 전모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6월 25일’에만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전쟁의 역사적 구조적 배경과 함께 전쟁이 전개되는 전체과정을 살피는 총체적 접근이 필요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기자는 이러한 전후맥락을 무시하고 마치 필자가 ‘김일성의 남침 사실 자체’를 의미없는 것처럼 평가절하하고 있다는 식으로 왜곡하고 있다.

▷ “그는 미국이 북한으로 하여금 남침하게끔 유도했다는 입장을 소개하고 있다.”(209쪽)
필자는 남침유도설을 주장하는 수정주의적 시각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분명히 부정하고 있다. 학술적 논문에 있어 자신의 논지를 펼치기 위해 자기와 다른 다양한 주장이 있음을 소개하는 것은 기본적인 상식에 속한다. 필자는 다른 글에서 수정주의의 대표적 학자인 커밍스의 한국전쟁 연구를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남과 북을 가릴 것 없이 우리 민족에 집단적 수난을 가져오고 이후 한국사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닌, 북한체제와 김일성이 소련 및 중국의 동의 아래 역사적 결정을 내리고 이를 감행한 전쟁 그 자체였던 사실”이 빠져있다는 것이 커밍스의 연구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의 의미와 평가”, p. 508)

▷“한반도에 대한 신탁통치안은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거의 유일한 사례라고 극찬했다.”(210쪽)
당시의 찬반탁 논쟁의 시비에 대해서는 아직도 학계에서 논쟁적인 문제중의 하나이다. 또한 모스크바 삼상결정안은 미소가 함께 합의한 임시정부 수립의 유력한 방안으로 거론되었고 지금도 학문적으로 그 정당성 여부가 논의되고 있는 문제이다. 필자는 이를 소개했을 뿐, 기자가 말한 것처럼 “극찬”한 바는 없음.

▷ “결론적으로 최위원장은 6·25전쟁을 평가함에 있어 대한민국에게 불리하게, 북한에 대해서는 유리하게 논리를 전개하고 있음을 확연히 드러냈다.”(212쪽)
<월간 조선>은 논문의 전체 논지를 완전히 거꾸로 해석하고 있다. 오히려 논문의 전체 논지는 한국전쟁 발발의 최종적 책임은 북한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단지 전쟁에 이르는 과정에서 북한은 물론 남한의 정치지도자들도 전쟁 발발에 이르게 된 갈등과정상의 일부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 “요약하면, 좌파와 우파간의 정치적 갈등 속에 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하면서 전쟁이 발발할 개연성은 매우 높았다는 해석이다. 한국전쟁이 왜곡된 관계를 왜곡 이전의 정상상태로 회복시키는 폭력적 시도라면 김일성은 결코 전범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된다.”
필자는 전쟁의 발발이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김일성에게 전쟁이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럼에도 객관적인 전쟁 개연성을 설명하는 귀절을 맥락과 관계없이 인용, 이를 “김일성이 전범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된다”라는 해석의 근거로 삼는 것은 극단적인 사실왜곡이다.

▷ “개전 초반은 민족해방전쟁이었다”(210쪽)
이는 필자의 논문을 잘못 독해한 것이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왜곡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저자가 민족해방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북한 자신이 남침을 ‘민족해방전쟁’으로 규정하였다는 의미이지, 필자의 견해가 그러하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 조선일보 10월 20일자(시내판), “월간조선 11월호에 6·25는 김일성의 위대한 결단이라는 기사로 실려있다.”
“6·25는 김일성의 ‘위대한’ 결단”이라는 표현은 필자의 논문에서 전혀 사용한 바도 없는 명백히 날조된 악의적 왜곡이다.

▷조선일보 10월 20일자, “최교수가 “6·25는 미국의 남침 유도에 의해 일어났다”는 주장을 폈다
이는 조선일보의 완전한 날조이다. 조선일보가 인용했다고 주장하는 월간조선에서도 “그는 미국이 북한으로 하여금 남침하게끔 유도했다는 입장을 소개하고 있다.”(<월간 조선> 11월호, 207쪽)고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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