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선기 시기가 다가오면 인터넷 언론사들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독자와 소통 공간인 댓글 공간을 차단해야할지 아니면 선거관리위원회의 실명인증조치를 따라야 할지를 놓고서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어김없이 4. 11 총선 공식선거운동기간인 3월 29일부터 4월 10일까지 인터넷 언론사들에 실명인증조치를 하라고 통보했다. 그런데 한 가지 강력한 무기를 들고 나왔다. 현재까지 실명인증 조치의 근거가 됐던 공직선거법 제82조의6을 유권해석해 SNS 계정을 로그인해 댓글을 달 수 있는 소셜연동댓글까지 금지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인터넷언론사들은 인터넷실명제 적용을 피하기 위해 실명인증 절차가 필요 없는 소셜연동댓글을 활용해왔는데 선관위는 이마저도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인터넷 실명제를 적용하고 이를 피하려는 선관위와 인터넷언론사들의 쫓고 쫓기는 역사는 지난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4년 공직선거법상 인터넷언론사의 선거게시판에 주민등록번호를 토대로 한 의무적 인터넷실명제가 처음 도입된 후 인터넷 언론사들은 독자와의 소통을 막고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며 반발해왔다.

특히 지난 2007년 정보통신망법상 일일방문자 10만명 이상의 포털, 언론, UCC 사이트들은 상시적으로 실명확인이 된 이용자에 한해 글쓰기를 허용해야하고 기술적 조치를 취하지 않을 때는 3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어야 했다. 인터넷언론사들은 울며겨자 먹기식으로 회원가입 방식을 통해 댓글 기능에 실명인증을 거치도록 한 조치를 취해왔다.

하지만 선관위의 일방적인 조치에 인터넷언론사들이 당하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난 2010년 <블로터닷넷>은 10만명 이상 방문자를 기록, 실명인증 절차 의무도입 대상자로 지정되자 아예 댓글 공간을 닫아버리는 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의사 소통을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 툴로 쓰겠다"면서 도입한 것이 소셜댓글이다.

<블로터닷넷>이 최초로 소셜댓글을 도입한 이후 차츰 인터넷언론사들뿐 아니라 기업, 시민단체들도 소셜댓글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도입 근거는 간단하다. 실명인증을 거친 인터넷실명제가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사실상 유명무실화됐고, 소셜댓글이 악성댓글은 줄이면서도 독자와의 소통을 활발히 할 수 있는 도구로 적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관위는 소셜댓글은 "SNS계정은 실명인증절차 없이 개설된 것이므로 공직선거법상 실명인증을 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면서 이번 선거에서 실명인증절차를 취하지 않을 때는 과태료를 물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이다.

인터넷언론사들은 이같은 선관위 방침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선관위는 이번 방침이 선거기간 동안 정당이나 후보자에 대한 비방이나 허위사실 유포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소셜댓글은 자신과 사적 관계를 맺은 트윗이나 페이스북으로 연동돼 댓글과 기사 URL이 나타나기 때문에 댓글을 달 때 신중할 수밖에 없다.

인터넷언론사들은 또다시 울며겨자 먹기로 선관위의 조치를 따르고 있다. 수익이 영세한 인터넷언론사 입장에서는 수천만원의 과태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선관위 조치에 따라 현재 언론사 사이트에서 트윗이나 페이스북 등 SNS 아이콘을 클릭하면 소셜댓글 업체가 제공한 기술적 조치에 따라 이름과 주민번호를 입력해야 댓글을 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평소 인터넷실명제를 반대해왔던 한 인터넷언론사 관계자는 "과태료 부분을 감당하려고 했지만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라며 "소셜댓글이 이전 댓글 기능보다 야한 사이트 광고라던가, 욕설 같은 내용을 정화해준 게 사실인데, 선관위의 이번 방침을 따라야 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대부분 인터넷언론사들이 선관위의 방침에 따르고 있지만 소수 인터넷언론사들을 중심으로 '저항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뉴스토마토>와 <딴지일보>는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감수하고 선관위 조치를 따르지 않기로 결정했다. 권순욱 <뉴스토마토> 이슈팀장은 "선관위의 조치는 기술 진보의 상황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적용한 조치"라며 "선관위가 트위터와 페이스북 본사에 보내야 할 공문을 수신처를 잘못 표기해 보낸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접수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뉴스토마토>는 우선 과태료부과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추이를 지켜보면서 법적 대응에 나설 계획이다.

<블로터닷넷>는 선관위가 지난 2010년처럼 댓글 공간을 폐쇄시키는 결단을 내렸다. <블로터닷넷>는 공지사항을 통해 "트위터나 페이스북이 실명제 대상이 아님으로, 또 SNS를 통한 선거운동을 이미 허용되는 마당이니 소셜댓글이 실명제 대상은 분명 아니다"며 소셜연동댓글 폐쇄 조치를 내렸다.

<미디어오늘> 역시 지난 28일 소셜댓글 폐쇄조치를 내렸다. <미디어오늘>은 공지사항을 통해 “선관위는 실명인증 없이 특정 후보를 지지 또는 반대하는 댓글을 삭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언론사들에게 댓글을 검열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댓글 공간을 닫았다.

인터넷매체 <비마이너>, <미디어충청>, <울산노동뉴스>, <참세상>, <참소리> 역시 선관위의 조치에 대한 불복종운동에 돌입한다며 댓글 공간을 닫았다. 이들은 대신 시민사회단체 진보네트워크에서 제공한 링크 화면으로 전환해 비실명 댓글을 달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뒀다.

이들은 "독자의 참여 비중이 높은 인터넷 언론에서 실명제는 독자와의 소통을 크게 저해한다"며 "국가가 언론기관에 실명 확인을 강요하고 이를 어길 경우 거액의 과태료에 처하는 것은, 언론기관의 의견수렴, 취재, 보도의 기능을 본질적으로 위축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겨레>, <경향신문>, <파이낸셜뉴스>도 자사의 회원가입을 통한 댓글 기능만 남겨둔 채 소셜연동댓글 공간을 닫았다. <경향신문>은 "선관위의 방침이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인터넷 실명제가 폐지되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는데 의견을 모으고 소셜댓글에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해 실명인증을 받는 방식은 수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선관위의 이번 조치를 두고 유명무실화된 인터넷 실명제를 단지 법에 규정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계적으로 적용하고 있다는 비판 뿐 아니라 SNS의 기능을 이해하지 못한 무지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많다.
 
박경신 교수(고려대 법학정문대학원)는 "(선거법상)유권자참여제한 규정들은 학연, 혈연, 지연이 동원돼 선거의 공정성을 해칠 것이라는 우려에 근거하고 있다"며 "하지만 SNS는 오히려 이러한 연줄을 끊어버리거나 이를 횡단하여 새로운 연을 만들어내는 기능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방통위도 폐지검토 중인 인터넷실명제 왜 고집하나

선거관리위원회의 소셜댓글 금지 방침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아무리 근거를 찾아봐도 실제 적용까지는 무리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12월 선거법 93조 1항을 대해 '인터넷 선거운동을 상시 허용한다'는 취지로 한정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인터넷 실명제는 이미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인터넷실명제 주무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조차도 SNS를 들어 인터넷 실명제가 유명무실화됐다고 판단해 정보통신망법상 인터넷 본인확인제 폐지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마당이다. 트윗이나 페이스북 등 미국 본사에 실명을 인증하도록 요구할 수 없어 SNS가 사실상 실명제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방송통신위원회의 입장이다.

또한 올해 8월부터는 정보통신망법이 개정돼 온라인상에서 주민번호의 수집과 이용이 전면적으로 제한될 예정이다. 인터넷실명제가 오히려 주민등록번호를 무분별하게 수집하는 효과를 낳으면서 개인정보 유출의 위험을 키우고 실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네이버, 다음 등 주요 포털들도 회원가입 시 주민등록번호를 받지 않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3월 소셜댓글 실명인증 조치에 대해 "인터넷 실명제가 재검토 수순을 밟고 있고 SNS를 이용한 선거운동 규제가 완화되는 추세에 역행하는 것으로 비판받을 수 있다"고 지적해 선관위의 조치를 정면 비판했다.

선거운동기간 소셜댓글을 금지하면서 실제 막대한 피해를 보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 미디어오늘로 전화를 걸어온 한 독자는 "저는 일본에 있는 재외국민"이라고 소개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토로했다. 외국에 있는 영주권자 중에 주민등록번호가 말소된 사람이 많은데, 이같은 국민들은 선관위의 조치 때문에 댓글을 달 수 없다는 하소연이다. 독자는 선관위 조치에 대해 "재외 국민들처럼 주민번호 없는 사람들은 입 다물고 투표하라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2010년 최초로 '라이브리'라는 소셜댓글을 개발한 시지온의 김범진 대표는 기존 인터넷 댓글에 대해 "사용자들이 어떤 뉴스에 댓글을 남겨도 다른 사람이 이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 쉽게 알 수 없다. 그래서 책임 없이 사이트에 댓글을 남겨도 죄책감을 느끼기 어려웠다"면서 "반면 소셜댓글은 내 계정이 나타나고 내 댓글을 SNS 친구들과 공유한다는 면에서 차이가 있다. 이렇게 사람들이 스스로 댓글을 잘 쓰고 책임감을 갖게 하는 것이다. 실제 서비스를 시행하면서 저희들의 예상이 적중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통계에서도 소셜댓글의 순기능은 드러난다. 지난 2010년 12월 드림위즈와 시지온이 공동 연구한 결과 기존 언론사 회원가입을 통한 실명인증 회원은 약 6.25%의 실명인증 회원이 전체 댓글의 49%에 해당하는 악성댓글을 작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SNS로 악성댓글을 다는 사람은 약 1%로 6분의 1로 줄어들었다.

소셜댓글은 또한 언론사 입장에서 뉴스를 공유하고 독자와 의견을 교환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돼왔다. 한 사람이 소셜연동댓글을 달면 친구들과 구독자들이 URL로 연동된 주소를 따라 뉴스를 재소비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김범진 대표는 "뉴스를 생성해내는 많은 사이트에서 사용자들의 참여를 통해 뉴스가 소비되기 때문에 탈중심화되고, 유기적인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셜연동댓글의 흐름을 피할 수 없는 이유는 이미 뉴스 소비의 구조가 SNS로 상당부분 옮겨갔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소셜미디어 확산과 미디어 이용행태 변화>라는 연구보고서의 통계에 따르면 33%가 휴대폰을 통해 뉴스를 접하고, 28%는 뉴스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홈페이지나 블로그에 남기고, 37%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뉴스를 링크하거나 언급해, 단순한 뉴스 소비를 넘어 뉴스의 확산과 여론형성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실효성도 없는 빈 껍데기에 불과한 소셜댓글 금지 조치를 고수하면서 국제적인 망신거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이 우리나라에만 오면 실명제 서비스로 둔갑되는 것을 보고 누가 이해할 수 있냐는 것이다.
 
블로터닷넷 이희옥 편집장은 "우리는 익명의 의사표현을 지지하지만 실명제의 취지를 꼭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며 "하지만 익명의 소통 방식을 선택하지 못하도록 선택권을 국가가 무조건 강제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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