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개혁요구에 대해 딴 사람 이야기 하듯 한다.…일부에서 유체이탈 화법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여권이 패한 직후인 10월 31일 당시 한나라당 원희룡 최고위원은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원희룡 최고위원이 당시 지적한 ‘유체이탈 화법’은 내 책임을 남의 탓으로 돌리거나 자신과는 무관한 사안인양 얘기하는 태도를 비판하는 표현이다. 2012년 4월 청와대는 대통령 하야 움직임이라는 최대 위기에 봉착하자 다시 ‘유체이탈화법’을 꺼내들었다.

'리셋 KBS'가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이라 불리는 ‘영일·포항 출신’ 인사들이 주도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불법 민간인 사찰 실태를 폭로하자 청와대는 궁지에 몰렸다. 야당 쪽에서는 ‘대통령 하야’ 요구가 공식적으로 나왔고, 언론 역시 대통령 책임론에 무게를 실었다.

한겨레는 3월31일자 1면에 <‘BH 하명’…해명해보시죠>라는 머리기사를 실었고, 조선일보는 1면 머리기사로 <여 “민간사찰 의혹, 대통령이 말하라”>라는 머리기사를 내보냈다.

언론이 청와대 해명을 요구하자 최금락 홍보수석은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CD에는 문서 파일이 2619건이 들어있으며, 이 가운데 80% 가 넘는 2200여건은 이 정부가 아니라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총리로 재직하던 노무현 정부에서 이뤄진 사찰 문건”이라고 밝혔다.

‘영포라인’이 자행한 불법 민간인 사찰 파문이 확산되자 엉뚱하게 전임 정부 탓을 하고 나선 셈이다. 청와대가 해명해야 할 내용은 ‘언론장악’ 실태가 드러난 불법 민간인 사찰의 ‘몸통’을 둘러싼 의혹이다.

야당이나 언론 쪽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번에 드러난 불법 민간인사찰 폭로 내용이 만약 사실이 아니라면 그것을 설명하면 되는데 엉뚱하게 노무현 전 대통령을 끌고 들어간 청와대의 노림수는 무엇일까.

불법 민간인 사찰과 정당한 공직 사찰을 헷갈리게 해서 이명박 대통령으로 향하는 비판의 시선을 노무현 전 대통령 쪽으로 분산시키려는 노림수가 깔려 있다. 문제는 그런 시도가 ‘뻔한 꼼수’라는 비판을 자초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위영 통합진보당 대변인은 “자신들의 책임회피를 위해 돌아가신 분까지 걸고 드는 것은 국민적 분노를 능멸하는 것이며 정치적 도의마저 상실한 행위로 민심의 역풍을 자초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참여정부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트위터를 통해 “참여정부때 총리실에 조사심의관실이 있었습니다. 공직기강을 위한 감찰기구였죠. mb정부 초에 작은 정부한다며 없앴다가 촛불집회에 공직자까지 참여하는걸 보고서 공직윤리지원관실로 확대되었다네요. 그때 마음에 들지않는 민간인사찰 등 무소불위 불법사찰기구가 된거죠”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이사장은 “그런 연유로 파일에 조사심의관실 시기의 기록이 남아있다면 당연히 참여정부때 기록일 것입니다. 물론 공직기강 목적의 적법한 감찰기록이죠. 그걸 두고 참여정부 때 한 게 80%라는 등 하며 불법사찰을 물타기 하다니 mb청와대 참 나쁩니다. 비열합니다”라고 비판했다.

불법사찰 물타기를 위한 비열한 행동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청와대의 ‘유체이탈화법’은 패러디 열풍을 일으키는 등 역풍을 불러왔다.

유시민 통합진보당 대표는 트위터를 통해 “이러다 bbk도 사실은 노무현 거라고 기와집에서 성명 내는 사태 나오겠어요”라고 지적했다.

주목할 대목은 ‘언론장악’ 등 민간인 불법 사찰 실태가 기록된 내용이 폭로된 이후 청와대가 ‘노무현 정부’ 책임론에 무게를 싣는 가운데,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도 ‘물타기’ 흐름에 동조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3월 31일 수도권 일대 지원유세를 이어가며 “어제 민간인 사찰 문건이 공개되어서 파문이 일고 있다. 저 역시 지난 정권, 현 정권 모두 저를 사찰했다는 언론에 여러 차례 보도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지난 정권 책임론을 내건 청와대의 ‘스탠스’에 보조를 맞춘 셈이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이러한 태도는 불법 민간인 사찰이 19대 총선을 앞두고 여권에 초대형 악재로 부각되는 상황을 고려한 행동으로 보인다.

전임 정권 책임론을 거론하면서 일단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판단이 깔려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이러한 행동은 이명박-박근혜 공동 책임론이 담긴 ‘이명박근혜’ 논란을 부추기는 선택일 수도 있다.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는 3월 31일 경기도 안산 지원 유세에서 “2년 전 민간 사찰이 터졌을 때 박근혜 위원장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지금까지 침묵했다. 사찰 은폐를 방조한 것이다. 침묵으로 방조한 박근혜 위원장, 그 자신이 이 더러운 사찰정치와 한통속 아니었는가”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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