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진보 권력에 눈멀어 정의 걷어찼다”

조선일보 3월 23일자 사설 제목이다. 서울 관악을 사태와 관련해 보수언론의 공격 목표는 이정희 통합진보당만이 아니다. 이정희 대표 쪽에 ‘융단 폭격’에 가까운 비판을 쏟아내지만, 이에 못지않게 민주통합당 비판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이정희 대표와 통합진보당이 궁지에 몰린 상황을 민주통합당 공격 용도로 활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조선일보 3월 23일자 1면 머리기사 제목은 <민주당 결국…‘이정희 사태’ 덮고 가기로>로 뽑혔다.

조선일보 사설 제목과 1면 기사 제목은 맥이 닿아 있다. ‘야권연대’의 역동성을 잠재우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얘기다. 보수언론이 '관악을 사태'를 즐기는(?)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동아일보는 1면에 <금 간 야권연대>라는 기사를 실었다.

보수언론 입장에서 ‘관악을 사태’는 선거 프레임 경쟁의 주도권을 쥘 수 있는 맛 좋은 카드다. 거꾸로 야권 입장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곤혹스러운 사건이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관악을 사태’ 해법을 놓고 냉랭한 기류가 형성돼 있고, 야권이 자랑하던 트위터 민심 역시 야당 지지층이 서로를 향해 ‘칼날’을 휘두르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새누리당 입장에서 ‘이명박 정부 심판론’이라는 가장 피하고 싶은 선거 구도를 약화시키려면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과 확실히 다른 정치적 색깔을 지녔다는 것을 보여주거나 어떻게 해서든 야권연대를 깨뜨려야 했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밀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차별화 전략은 한계에 부딪혔다. 남은 한 장의 카드는 야권연대 깨기, 바로 그것이었다. 관악을 사태는 보수언론 입장에서 호재다. 야권 스스로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언론은 이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이다. 단순히 이정희 선거캠프 차원의 문제를 넘어서 통합진보당, 아니 민주통합당까지 정치적 부담을 안기는 방향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조선일보가 사설 제목으로 뽑은 “권력에 눈멀어 정의 걷어찼다”는 주장은 국민의 정치혐오를 자극하기 충분한 내용이다. “깨끗한 줄 알았는데 다들 똑같네”라는 정서를 유도하고 있다는 얘기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두 당은 야권 연대의 금 간 부분을 다시 메꾸는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초기의 탄력을 되살려내긴 어려워 보인다”면서 “그동안 두 당이 서로 보여준 건 피차 권력의 몫을 더 많이 차지하고자 물불을 안 가린 민얼굴”이라고 주장했다.

야당이 다시 힘을 모아 ‘야권연대’의 역동성을 되살려내는 상황이 오지 않도록 제동을 거는 모습이다. 또 하나 주목할 대목은 동아일보의 사설 내용이다. 동아일보는 <'부정 선수'로 얼룩진 4.11 총선 대진표>라는 사설에서 “(총선) 대진표에는 당선되더라도 무효가 되거나 국회의원직을 상실할 개연성이 높은 '부정 선수'가 즐비하다”고 주장했다.

보수언론이 노골적으로 정치혐오를 자극하는 이유는 투표율 저하의 유용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현재 언론이 발표하는 여론조사를 지역구 판세의 절대적인 잣대로 보기 어려운 까닭은 투표율에 따라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구의 후보별 지지율보다 더 중요한 게 투표율일 수 있다는 얘기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의 승리, 한나라당 패배로 끝난 17대 총선 투표율은 60.6%였다. 반면 한나라당 승리로 끝난 18대 총선 투표율은 46.1%로 뚝 떨어졌다.

국민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을수록, 특히 20~30대 젊은이들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을수록 특정 정당에는 유리한 구도가 형성된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특정 정당이나 언론이 대놓고 투표에 참여하지 말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때 활용하는 방법이 바로 정치 혐오 자극이다. “정치인은 다 똑같다” “여당이건 야당이건 뽑아봐야 소용없다” “나 하나 투표에 참여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등 정치 냉소가 힘을 얻을수록 투표율은 뚝 떨어진다는 얘기다.

정치 혐오가 심화될수록 총선에서 이명박 정권을 심판하겠다는 ‘MB심판론’의 동력도 약화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새누리당의 총선 승리 가능성이 커지고, 이명박 정부는 정권 재창출의 발판을 마련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여권 핵심부에서 왜 '정권심판론'을 경계하는지, 그것을 깨뜨리고자 노력하는지 그 이유에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다.

‘MB아바타’로 불리는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지난 3월 13일 이러한 내용이 담긴 '보도자료'를 언론에 전한 바 있다.

“지금 야당이 제기하는 정권심판론만 해도 자유당 시절 ‘못 살겠다, 갈아보자.’, ‘갈아봐야 소용없다. 구관이 명관이다.’ 라는 낡은 선거 프레임의 반복일 뿐이다.…앞으로 11개월 이상 남은 이명박 정부의 성공적인 국정 마무리와 정권재창출을 위해서 어느 곳에서든 제가 할 수 있는 혼신의 노력을 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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