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 1년을 맞아 일본에 다시 가보기로 한 건, 나의 결정이었다. 안전을 이유로 결정을 망설이는 팀장을 설득해서 한 번 해보자고 했던 건, 1년 전 지진 발생 직후 <추적 60분>이 두 번이나 지진과 방사능에 대해 방송했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 그 현장은 지금 어떻게 변해있을까. 그 때 만났던 그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직접 가서 확인해보고 싶었다. 후쿠시마 원전 반경 60Km 이내로는 접근하지 않는 조건으로 취재 허락을 받았다.

쓰나미 피해가 심한 지역은 모두 해안가에 자리하고 있다. 가는 곳마다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우릴 괴롭혔다. 그 칼바람 속에, 쓰나미에 휩쓸려간 마을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맨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1년 전 마을을 온통 뒤덮고 있던 건물 잔해들과 자동차 더미들은 말끔히 치워졌지만, 대신 해안가에 그 잔해들이 모여 거대한 쓰레기 산을 이루고 있었고 텅 빈 집 터들은 마치 오래된 역사유적지처럼 을씨년스러웠다. 복구는커녕, 쓰레기를 다 치워내는데만도 삼 년이 더 걸린다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은 어떨까. 1년이 흘렀지만 이재민들은 대부분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참사 당시에는 목숨을 건졌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고통과 절망이 커져가고 있다고 했다. 가설 주택에서의 삶은 기약이 없고, 실업 상태가 길어지면서 경제적인 어려움도 커져가고 있었다. 적지 않은 이재민들이 우울증을 겪고 있었고, 알콜 중독과 자살 등 심각한 상황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부분의 피해지역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사회 문제였다. 취재하며 만난 이재민들 중 많은 이들이 인터뷰 중 감정이 격해지면서 눈물을 보였다. 1년 전 참사 직후만 해도 볼 수 없던 모습이었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한 일본인들이라지만, 미래를 가늠할 수 없다는 불안에 특유의 단정함과 냉철함마저 흔들리고 있는 듯 했다.

쓰나미 피해 지역이 아니어도 불안은 일본 사회 곳곳에 숨어있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역시 방사능에 대한 공포. 원전에서 가까운 지역들이야 워낙에 방사능 수치가 높을 수 밖에 없다지만, 원전에서 80km, 100km 떨어진 곳, 심지어 200km가 넘는 도쿄 도 외곽지역에서조차도 안전 기준치를 훨씬 뛰어넘는 이른바 핫-스팟이 발견되고 있음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는 여전히 방사성 물질이 새어나오고 있고, 바람 방향에 따라 어느 곳으로 움직일지 모르는 상황이니, 오늘 기준치 이하였다 해도 내일은 또 수치가 다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후쿠시마 현에서는 물론 도쿄에서도 50만~60만원 씩 하는 선량계를 가지고 다니는 시민들을 어렵잖게 만날 수 있었다. 대부분이 어린 아이들이 있는 부모들이었다. 일본 어디라면 안전할까. 후쿠시마 현에서 방사능을 피해 도쿄로 이사왔다는 어느 젊은 엄마는 취재진의 질문에 ‘알면 좀 가르쳐달라’고 되물었다.

먹거리에 대한 불안도 심각했다. 일본 정부는 식품에 대한 방사능 안전 기준치를 정해놓고 검사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만난 이바라키 현의 생활협동조합 관계자는, 기준치 이하의 미량이라고 해도 세슘 등의 방사성 물질이 검출될 경우 이 수치를 공개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방사성 물질에 노출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해도, 내가 얼마만큼을 먹고 있는 지는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얘기였다. 실제 이 생협에선 회원들에게 보내는 상품 안내문에 자체 검사한 세슘 검출량 결과를 표시하고 있었다. 바닷물 오염이 심각해지면서 수산물에 대한 우려가 특히 컸다. 이바라키 현 앞바다에서 잡았다는 잔멸치에서도 6.69베크럴의 세슘이 검출됐다고 했다(일본 정부의 식품 안전기준치는 500베크럴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렇게 일본 내에서조차 많은 우려를 사고 있는 수산물들이 우리나라로 수출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일본에서도, 그리고 국내에서도 안전검사를 거친다고 하지만 모든 수산물에 대해 일일이 다 검사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앞서 말했듯 안전기준치 이하라고 해서 방사성 물질이 전혀 없다는 뜻도 아니기에 취재를 하면 할수록 대체 왜 우리나라가 일본산 수산물을 계속 수입하고 있는 지 의문스러워졌다.

앞서 말했듯 이번 일본 취재는 회사의 지시가 아니라 온전히 나의 생각이었고 결정이었다. 직접 가보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이 제일 큰 이유였다. 어차피 언론인은 늘 어느 정도의 위험에 노출돼 있고 그것을 감수해야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내게도 방사능은 차원이 다른 공포였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그 영향을 예측할 수도 없는 위험. 회사는 누적 선량계를 지급하여 취재 기간 중에 노출된 공기 중 방사선량을 측정토록 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한 지 의문이었다. 음식물로 인한 내부 피폭의 우려 때문이었다.

일본 대지진의 여파는 1, 2년 사이에 수습될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일본과 가까운 우리나라에게도 그 영향은 여러 형태로 미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일본 대지진 후유증을 남의 나라 뉴스로만 취급할 수 없는 이유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 문제를 지켜보고 취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취재진의 안전 문제는 여전히 고민거리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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