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알고, 말하고, 주장할 자유를, 다른 어떤 자유보다도 그러한 자유를 나에게 달라.” ‘실낙원’을 펴낸 존 밀턴이 언론자유의 경전, ‘아레오 파기티카’에서 역설한 절규다.

이 절규가 21세기 한국 방송인들의 입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현 정권의 입맛에 맞는 방송만 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방송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MBC, KBS에 이어 YTN이 파업에 돌입했다. 파업 방송인들이 내건 핵심적인 요구사항은 ‘공정방송 복원, 낙하산 사장 퇴진, 해고자 복직’이다. 공정방송 문제가 초점인 것이다.

한국의 공영방송사들이 일제히 파업을 벌인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그 자체가 한국 방송의 위기이며, 국민의 ‘알 권리’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음을 뜻한다.

이런 사태가 왜 벌어진 것일까. 1차적으로는 파업 방송사 사장들의 책임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방송을 정권의 홍보 도구, 수단으로 여기고 정부의 입맛에 맞추는 방송으로 통제하는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 정책 때문이다.


과거 독일의 나치스 히틀러의 선전상 요제프 괴벨스는 이렇게 말했다. “언론은 정부가 연주하는 피아노가 되어야 한다.”  정부가 작성한 악보대로 언론사는 연주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대 전두환 정권 시절, ‘보도지침’이라는 정부의 ‘악보’가 있었다. 이 악보에 따라 방송은 매일 밤 9시 ‘땡’하면 “전두환…”으로 시작되는 ‘땡전뉴스’를 내보냈다.

기가 막힐 일은 이런 ‘보도지침’이 이명박 정부 들어 다른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은 청와대 행정관이 이메일 ‘연쇄살인범 홍보지침’을 경찰청 홍보담당관에게 보낸 것이 밝혀지면서 드러났다.

홍보지침은 “용산 참사로 빚어진 경찰의 부정적 프레임을 연쇄살인 사건이라는 긍정적 프레임으로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언론이 경찰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니 계속 기사거리를 제공해 촛불을 차단하는 데 만전을 기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청와대는 이 사건이 사실로 확인되자 행정관 개인의 잘못이라며 꼬리 자르기로 일관했다. 이 사건이 단순하게 개인의 잘못인가.

공영방송의 위기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부터 시작됐다. 이명박 정부는 ‘눈엣가시’인 정연주 KBS 사장을 몰아내고 자신의 측근을 KBS 사장에 앉혀 KBS를 장악했다.

최근 정연주 KBS 사장의 강제해임은 무효라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왔다. 이명박 정부의 무리한 방송장악 의도가 명백하게 드러난 셈이다.

이명박 정부의 MBC 장악은 어떻게 진행됐는가. 김재철 ‘낙하산 사장’은 ‘좌파대청소’를 비롯해 정부의 MBC 장악에 앞장섰다.

김 사장의 ‘눈부신 활약’은 그야말로 기록적이다. 그가 벌인 MBC 사상 최초의 일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공정방송 보장 장치를 없애기 위한 단체협약 해지, 재임 중 두 차례 퇴진 요구 파업 직면, 재임 중 해마다 파업 찬반 투표, 보직 간부 집단 사퇴 및 파업 참여, 파업기간 중 해고 등 중징계, 보통 1명 해고로 그쳤는데 이미 4명 해고···. 한국판 기네스북에 오를 일이다.

특히 보도국 기자 166명의 대규모 집단 사직 결의는 방송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취재기자가 현장에서 쫓겨나고 야유를 받는 일도 1980년대 전두환 정권 이후 처음 나타난 현상이다.

정권의 입맛과 비위에 맞추기 위한 편파보도가 얼마나 심했으면 이런 일들이 벌어지겠는가. 김재철 사장이 공정방송을 해야 할 공영방송 사장이라면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자책을 하고도 모자랄 일이다.

방문진 야당 쪽 이사들이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라고 해도 김 사장은 막무가내다. 오히려 이 판에 ‘싹쓸이’할 것처럼 오만하고 강경한 태세다. 오로지 해고, 중징계 따위로 계속 탄압할 기세다.

조선 숙종 때 정승인 허목은 상소문에서 “백성을 죽일 수는 있어도 이길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 사장이 기자들을 해고할 수는 있어도 기자의 정신과 혼을 이길 수는 없다.

방송 언론은 국가와 사회의 문제점과 병폐를 알리는 사회의 목탁 아닌가. 방송이 목탁 노릇을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언론이 막히면 임금은 교만해지고 국사가 부패되어 나라가 망한다.” 조선 연산군 때 대사간 박처륜이 상소문에서 경고한 말이다.

언론의 위기는 곧 사회, 국가의 위기다. 언론의 흥망성쇠는 사회, 국가의 흥망성쇠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공정방송의 위기에 책임을 지고 낙하산 사장들이 스스로 물러나는 게 국민에 대한 마지막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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