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5년차, 19대 총선을 코앞에 두고 MBC, KBS 등 공영방송을 비롯해 YTN, 연합뉴스, 서울신문 등 언론사 종사자들의 집단저항이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다. 이 언론사들은 모두 정부가 사장을 임명하거나 인사권이 정부의 영향권 안에 있는 곳이며, 모두 이명박 정부 취임 이후 ‘권력의 나팔수’, ‘친여 언론’, ‘앵무새 방송’ 등의 비판을 받아왔다. 이곳에 소속된 기자 PD 등은 파업선언에 앞서 도미노처럼 그동안 자신들의 보도행태를 반성하고 사과했다. ‘반성→대국민사과→파업’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언론인에게 자신의 기사·뉴스·프로그램이 권력에 편향됐다고 반성하는 일은 용기있는 결단이지만, 이들에 대한 시청자·누리꾼들의 반응은 그리 뜨겁지 않다. 언론인들이 저항에 나선 시기가 정권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이 얼마나 흔들리지 않고, 권력으로부터 독립과 언론자유를 지키는 싸움을 해나가는지에 따라 그 진정성이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MBC·KBS·YTN·연합뉴스 등 왜 들고 일어섰나=지난달 30일부터 파업에 돌입한 MBC, 6일부터 시작한 KBS, 8일부터 계획중인 YTN, 파업찬반투표(7~13일)가 예정된 연합뉴스의 사장은 사실상 정부에서 임명한다. 지난 2008년 정연주 전 KBS 사장 해임을 시작으로 현 정부들어 이들 방송·언론의 사장은 정부 입맛에 맞는 이른바 ‘낙하산’ 사장으로 줄줄이 교체됐다. 이후 내부 측근·코드인사를 통한 조직장악과 이에 반발하는 구성원 축출을 통한 순치의 과정을 거쳐 ‘손쉽게’ 방송장악이 이뤄졌다. 이들 방송에서 뉴스와 프로그램에서 권력비판 기능은 사라졌다. 낙하산 사장 임명 직전까지만 해도 스스로를 “간단치 않은 조직”이라던 KBS와 MBC 역시 순치된 언론의 하나로 전락했다. 언론사들의 파업도미노 현상은 정권의 언론탄압에 대한 저항이자 ‘권력에 대한 비판·감시·견제’라는 언론의 숙명을 저버렸다는 스스로의 자괴감에 따른 것이라고 구성원들은 말한다.

남철우 KBS 새노조 홍보국장은 5일 “투쟁에 나서는 매체들은 정부 입김하에 있는 곳으로 사장선임권의 태생적 한계 때문에 음과 양으로 충성을 강요받았다”며 “이번 싸움은 MB정권의 총체적 언론탄압에 떨쳐 일어선 것”이라고 평가했다. 노종면 전 YTN 노조위원장도 “이번 싸움의 원인은 정권이었고, 과정은 언론장악이었다”며 “4년간 진행된 언론장악의 결과가 참고 참았던 언론인들을 저항하게 만든 것”이라고 밝혔다. 이강택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도 “정권의 언론장악이 임계점에 달해 곳곳에서 봇물터지듯 터져나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왜 정권말·총선직전인가, 진정성 안느껴져”=MBC와 KBS, YTN 등 방송사들의 총파업 일정은 모두 이명박정부 5년차이자 총선 직전이다. 여기엔 MB정권 4년이 지나버렸다는 뜻이 함께 담겨있다. 이 때문에 적잖은 시민과 누리꾼의 반응에는 이들의 저항을 지지한다는 것과 함께 ‘지금까지는 뭐하다 정권말에 그러느냐’는 냉소가 늘 뒤따른다. 트위터엔 지금도 “분노의 표출인가, 정권말 레임덕에 의한 줄서기인가”(Action_Gomdol) “왜 미리 좀 못했나요... 정권말 분위기 편승한 감이 없진 않겠죠”(goodchani) “솔직히 아직은 진정성이”(Chutstep) 등의 글이 넘쳐난다.

“국민들이 소극적 지지표명에 그치는 이유는 정권이 시퍼렇게 살아있을 때는 까라면 까던 인간들이 정권말미에 시위하는거 진정성이 별로 안느껴져서 일 것…아마 다음 정권 때도 똑같이 하지 않겠어”(nihiler), “그동안 국민을 배신하고 그들의 나팔수에 충실한 자들이 아니었던가? 정말 새삼스럽다. 아마도 이들의 속내는 정권말도 되었으니 이제 새로운 기생처를 찾겠다는 꼼수가 아닌가 싶다”(comjino777)라는 지적은 여론의 정서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특히 KBS의 파업에 대해서는 저항 그 자체보다 요구사항이 무게감있게 제시됐다. ‘na9433’는 트위터에 “수신료 인상을 외치며 국회에서 ‘☓☓☓짓’을 한 지도 얼마 전”이라며 “도청사건부터 노조는 자체조사하고 국민 앞에 사죄하라. 뭔가 변하고 싶음을 느낄수 있게 행동으로 보여달라. 정권 말에 갈아타기로 보여진다”고 일침을 놓았다. ‘Barunsori6’도 “정권말이나 돼서야 지난 4년간 기자의 양심을 저버리고 권력에 고개숙인 것을 사죄한다구요”라며 “파업동참은 지지하지만, 용서는 안되네요. 뭍혀버린 아픈 진실을 생각하면”이라고 비판했다.

▷“욕먹어도 싸다…시민 냉소와 비판은 언론을 시험하는 것”=이런 극심한 냉소와 책망에 대해 노종면 전 YTN 노조위원장은 “그런 목소리를 탓할 수 없고, 욕해도, 욕먹어도 싸다”라며 “이러한 냉소와 비판은 그동안의 언론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것이자, 지금의 언론인들을 시험하는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이강택 언론노조 위원장도 “일견 타당하며, 수용하고 자성해야 할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남철우 KBS 새노조 홍보국장도 “(그래서 방송인들이) 정권 초 자기희생이 없다가 뒤늦게 일어선 데 대한 사죄를 하고 있는 것”이라며 “나름 내부에서 투쟁했지만 낙하산과 방송몰락을 못막은 원죄가 있다”고 시인했다.
하지만 이들은 욕만 먹고 끝내는 것과 욕먹더라도 싸우는 것은 다르기에 파업에 나섰다. 노종면 전 위원장은 “시민들의 냉소가 있는 줄 알면서도 싸울 수밖에 없다”며 “안싸우면 더 욕먹는다. 이 시험대를 통과하지 못하면 언론은 정말 끝”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이번 싸움의 의미에 대해 노 전 위원장은 “권력과 언론의 양보할수 없는 싸움이므로 지는 쪽은 여파가  오래 갈 것”이라며 “언론이 이 싸움에서 이긴다면 어떤 권력도 언론통제를 못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지만, 대충 싸우다 판을 접으면 언론이 권력의 노리개가 되더라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강택 위원장은 “정권 말 둑이 무너질 조짐이 보이는 이런 때조차 굴종하며 자기이해에 급급하다면 언론인은 영원히 죄인이 될 것이고, 언론은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 밝혔다.

▷“진정성 없으면 금새 티나…과오 반드시 따져야”=파업에 나서는 언론인들이 이런 냉소와 천대를 뚫고 공정방송·언론으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양심에 반해 뉴스·보도·프로그램 제작을 했던’ 자신들의 과오를 낱낱이 고백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단지 생존과 밥그릇의 이해관계를 위한 시늉에 그치는 것이라면 진정성 있는 투쟁의 동력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노종면 전 위원장은 “지난 3년 여 동안의 공과를 따지지 않으면 안된다”며 “불공정 보도사례부터 KBS의 도청의혹, 연합뉴스의 보도채널 수혜 과정 모두 밝혀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저 밥그릇 챙기기 위해 보여주기 식 투쟁이라면 티가 나게 돼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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