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말, 언론사 파업이 그야말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MBC가 지난 1월25일 파업에 돌입한 데 이어 KBS가 6일부터 파업을 시작했고 YTN은 8일부터 시작할 계획이다. 연합뉴스는 13일까지 파업 찬반투표가 진행 중이다. 모두 지난 4년 동안 공정성 시비와 언론 장악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언론사들이다. 늦게나마 언론의 가치를 지키겠다며 떨쳐 일어선 언론인들에게 국민들은 뜨거운 지지와 성원을 보내고 있다.

MBC는 방송문화진흥회가 70%, 정수장학회가 30%의 지분을 갖고 있다. 방문진에서 MBC 사장을 선임하는 셈인데 방문진 이사는 모두 방송통신위원회가 선임한다. 방통위 상임위원회는 대통령이 추천하는 2명과 여당이 추천하는 1명, 야당이 추천하는 2명의 상임위원으로 구성된다. 대통령과 여당이 방통위와 방문진을 통해 MBC 사장 선임에 개입하는 구조라 태생적으로 낙하산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100% 정부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KBS는 이사 11명을 모두 방통위가 추천하는데 여기에서 사장이 선출된다. YTN은 한국전력의 자회사인 한전KDN이 21.4%, KT&G가 20.0%, 한국마사회가 9.5%, 우리은행이 7.7% 등 공기업 및 정부 관계회사 지분이 58.5%에 이른다. 연합뉴스는 뉴스통신진흥회가 30.8%, KBS가 27.8%, MBC가 22.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YTN과 연합뉴스 역시 사실상 대통령이 사장을 임명하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캠프 출신인 김인규 KBS 사장은 전형적인 낙하산이라고 할 수 있지만 김재철 MBC 사장이나 배석규 YTN 사장, 박정찬 연합뉴스 사장 등은 모두 내부에서 선임된 경우다. 굳이 비교하자면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정연주 전 KBS 사장이 오히려 낙하산 사장에 가깝다. 이른바 코드 인사는 노 전 대통령 때도 있었다. 정연주와 김인규의 차이는 뭘까. 최문순 전 MBC 사장과 김재철의 차이는 또 뭘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청와대가 공영방송 사장을 임명하는 구조에서는 공정성 논란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정연주 전 사장 역시 낙하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결국 정권이 바뀐 뒤 온갖 압박 끝에 강제로 해임됐다. 배임 혐의를 받았지만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를 선고 받았고 해임 무효 소송도 1심과 2심 모두 승소하고 3심을 남겨두고 있는 상태다. 정권이 바뀐다면 김인규·김재철 사장도 같은 운명을 밟게 될까.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공영방송 사장이 정치적 영향을 받는 게 안타까웠다"면서 방송법을 개정, KBS 사장 '임면권'을 '임명권'으로 축소해 임기를 보장받도록 했다. 정권이 공영방송에 영향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겠지만 사장을 마음대로 갈아치우지 못하도록 하는 것 못지 않게 애초에 사장 선임 절차부터 독립성을 보장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대통령의 선의에 기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정연주가 노무현의 낙하산이었다면 김인규는 이명박의 낙하산이다. 최문순이 노무현의 코드 인사였다면 김재철은 이명박의 코드 인사다. 착한 낙하산과 나쁜 낙하산의 차이일 뿐이다. 김인규의 KBS와 김재철의 MBC가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김인규나 김재철이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실제로 이병순의 KBS와 김인규의 KBS는 크게 다르지 않았고 엄기영의 MBC나 김재철의 MBC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을 뿐 정권의 눈치를 보는 건 마찬가지였다.

분명한 것은 설령 방문진이 김재철 사장을 내보내더라도 이명박 대통령이 또 다른 김재철을 임명할 것이고 그 김재철 역시 툭하면 청와대에 불려가서 '쪼인트'를 까일 거라는 사실이다. 최시중이 물러난 자리에 이계철이 들어오는 것을 보라. 최시중이나 이계철이나 얼굴만 다른 이명박의 아바타일 뿐이다. 공영방송의 진정한 독립을 원한다면 김인규와 김재철을 비난하는 것 못지 않게 지배구조 개선을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

당장은 시민사회의 분노와 기자들의 뼈아픈 자기반성이 변화의 동력이다. "사장 한 명 바뀐다고 이렇게 무너질 줄은 몰랐다"는 후회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사장 한 명에 좌우되지 않는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다. 정권 말 언론사 파업은 만시지탄이지만 권력이 언론을 흔들 수는 있을지언정 장악할 수는 없다는 역사적 교훈을 만들어낼 중요한 기회다.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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