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년전까지만해도 한국언론의 틀은 “전국지 몇 개, 통신은 한 개,지방지도 각 도에 한 개씩” 등으로 정해졌었다. 그런 수적인 제한이야말로 5공, 6공 언론 통제의 가장 기본적인 수법이었으되 그런 ‘무경쟁’의 통제속에서 오히려 살을 찌웠던 것이 우리 언론의 모습이었다.

김영삼정권의 등장과 함께 이러한 수적인 제한이 풀리자 언론계의 태평성대도 끝이 났다. 강제로 문을 닫았던 많은 신문들이 복간되고 새 신문들이 잇따라 창간되면서 언론계에는 유례없는 ‘무한경쟁’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경쟁은 당연히 상품의 질과 수요자에 대한 서비스의 향상여부로 그 승패가 가려
지고 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언론의 질은 보도의 정확성, 신속성, 공정성여부로 판단된다. 멀지않은 옛날 위세를 떨쳤던 사이비기자들의 재창궐을 크게 걱정하면서도 대다수 국민들이 ‘수적인 언론통제의 해제’를 거리낌없이 받아들인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경쟁이 언론의 질을 높이는데 직결되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 벌어지고 있는 신문사간의 경쟁은 반드시 그렇게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고 오히려 이전투구의 추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증면이나 지면의 컬러화등이 반드시 질적향상의 척도인가에 대한 물음은 당분간 뒤로 미루기로 하자.

그러나 “1만원짜리 저희 물건을 사시면 2만원짜리 사은품을 드리겠습니다” 는 식의 희한하고도 무분별한 판촉경쟁은 얼마전 중앙과 동아,한국일보 사이에 벌어졌던 원색적인 비방사태 못지않게 언론계의 최소한의 양식마저도 의심케하는 작태들이 아닐수 없다.

끝간데 모르게 펼쳐지는 이러한 비윤리적인 경쟁상황은 언론계의 과도한 점유율추구욕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 같다. 독자의 수가 곧 그 매체가 갖고 있는 영향력의 척도이며 더 나아가 질까지도 결정한다는 앞뒤가 뒤바뀐 논리에서 출발하는 한국언론의 이러한 과당경쟁은 중앙이 조간으로 전환하고 ABC공사제도의 실시가 임박함에 따라 더욱 치열한 양상을 띠게 될 조짐이다.

부도덕한 행위가 자율로 정화되지 못할 경우 타율을 부를수 밖에 없는데 언론계의 이러한 부당경쟁행위에 대해서도 지난 8일 공정거래위원회가 일제조사에 나섰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해 말, 몇몇 언론사에 대한 당국의 세무조사가 덤불만 두드리다 만 꼴이 되었듯 공정거래위원회의 칼이 과연 신문사간의 ‘너 죽고 나 살기’식의 싸움을 말릴 수 있을 만큼 날카롭게 벼려져 있는지는 의문이다.

결국은 해당사들의 자성과 자숙이 필요한 것이다. 정치인들의 매표행위를 비난하고 백화점의 사기세일을 나무라고 심지어 과자회사들이 과자 몇개를 더 넣어 주는 것이 불공정 거래행위라고 호통치던 당당한 모습들이 남부끄럽지도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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