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김홍종 감독 연출의 TV드라마 시사회를 초청받아 그저께 봤다. 한국 TV드라마 방송사에서 연출자 김홍종 감독(현 서울예대 교수)의 작업은 연출의 특유성으로 크게 주목받았다. 1997년 국제적으로 권위있는 상인 `프리 이탈리아상'을 받은 작품 ‘길위의 날들’ 이후 김홍종 감독은 15년 만에 KBS 창사기념특집 TV문학관 ‘강산무진’을 통해 시청자들과 만난다.

김홍종 감독은 1971년에 KBS에 입사해 ‘토지’ ‘삼포가는 길’ ‘단독강화’ ‘밤주막’ 등, 과거 그가 보여준 TV 드라마들은 한국 드라마의 작가주의 TV드라마, TV영화의 1세대 선두주자로 독특한 자기 연출세계로 응축된 작품들로 기억되고 있다. 

오늘날 드라마의 기본인 단막극이 배제되고 상업성 유행성의 트랜디를 ㅤㅉㅗㅈ고 있는 한국 드라마 제작현실에서, 심지어는 ‘막장성드라마’가 난무하는 현실에서, 드라마 ‘강산무진’은 과거 김홍종 드라마연출의 특징에서 알 수 있듯이 TV드라마의 진수(眞髓)와 면모를 새롭게 마주할 수 있는 더할 수 없는 기회로 드라마는 새롭게 작동한다.  

KBS의 TV문학관은 드라마의 본령을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기획되고 있으며, 특히 이번 드라마 기획은 KBS와 김홍종 감독 간의 만남을 통해 TV드라마의 예술성과 TV드라마의 새로운 지평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탐색하여 시청자들의 다양한 드라마 시청기회를 넓히는 것에 이바지하고자 의도한 기획으로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TV문학관 김홍종 감독의 KBS드라마제작은 한국드라마 제작현실에서 의미 있는 실천으로 다가왔다.  

김홍종 감독과 만남

김홍종 감독과 나는 인연이 제법 됐다. 김대중 정권 때 ‘2000년 새로운 예술의 해’ 추진위원이자 문학분과위원장이었던 당시 나는, ‘새로운 예술의 해’ 총괄행사 ‘월인천강지곡’의 기획 연출자로 김홍종필름 페스티발을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한바 있다. 영화감독이 아닌 텔레비전드라마 연출자의 필리모그래피(filmography)를 위한 필름페스티발은 한국에선 생소했다. 당시 모두 10편의 드라마필름을 직접 엄선한 나는 텔레비전드라마 연출가의 연출성과 작품성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바람에서 그 행사를 기획했다.

더 거슬러 1985년에는 KBS 6.25특집드라마 ‘광장’의 대본각색에 참여했다. 이후 김홍종 감독을 만날 때마다 김 감독은 인간을 위한 진정성이 있는 드라마와 영화를 꿈꾸고 있었다. 그와의 대화는 항상 열정에 찼고 그는 지니고 다니는 그의 수첩을 꺼내 대화를 적기도 했다. 노감독의 드라마작업에 대한 집념은 끝없다. 한 씬 한 커트로 세상을 포착하겠다는 의지는 자기작업에 임하는 태도에서 준열하게까지 느껴져 왔다. 이런 연출자의 태도를 나는 존경한다. 그래서 종종 만났다.             

김훈 소설집 ‘강산무진(江山無盡)’ 중에서

김훈의 소설쓰기는 치열하다. 그의 소설을 읽자면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에서 조탁(彫琢)하고 조각(彫刻)하는 심정과 곧바로 만난다. 이는 김홍종 감독이 한 장면 한 장면으로 세상을 드러내는 집중에 필적한다. 이런 두 사람이 텔레비전드라마의 원작자로 또 한 사람은 연출자로 만났다. 김훈의 소설 ‘강산무진’, ‘고향의 그림자’, ‘머나먼 속세’ 이 3편의 소설에서 이야기와 인물의 단서를 가져와 이야기는 김홍종에 의해 해체되고 재구성되며 인물 또한 김홍종 나름의 삶에 대한 통찰로 재구축되었다.

김 감독의 연출은 “개개인의 상황에 놓인 인간의 모습을 드라마틱한 구성을 배제한 채 있는 그대로 다루고 싶었다”고 시사회에서 말했다.

그렇다. 오늘날 한국의 수없이 많은 텔레비전드라마는 인간과 사회를 제대로 그리지 못하고 있다. 인물과 이야기는 대부분 상투적이고 전형적이고 천편일률적이다. 그리고 ‘드라마틱’한 표현을 기대하면서 만들지만 그저 ‘드라마틱’할 뿐, ‘리얼리티’는 찾아보기 어렵다. 드라마형식 또한 드라마 문법의 구조에서보자면 어떤 완결성도 찾아보기 어렵다. 막 찍어댄다. 함수(函數)는 오직 시청률이다.

여기에 반해 김 감독의 드라마연출은 감독의 말처럼 가장(假裝)이나 “가공 없이 인물이 처해진 상황을 따라” 카메라가 건조하게 뒤따라가는 것으로 이어진다.

현실을 사는 4명의 인물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평범한 우리들 자신의 어느 일면이자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고 모두 현실 속의 인물들이다.

의류업체 수출담당 업무를 보던 임원인 김창수(서인석 분)는 얼마 전 간암  판정을 받았다. 이미 위장으로까지 전이되어 장기투병을 각오해야 하는 상태. 그는 서둘러 회사업무를 정리하고 이혼하게 된 아내에게 퇴직금으로 위자료를 챙겨주고, 미국이민을 간 아들과 시집간 딸 앞으로 남은 재산을 물려주고 이민간 아들의 권유로 재산을 정리해 미국으로 떠나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 시각이다. 그러나 그 시각에 그는 홀로 호텔에 있다. 호텔에서의 홀로의 마지막 정찬은 입에 대지도 못한다. 호텔 안에서 창밖을 통해 도시의 야경을 내려다본다. 불 밝힌 도시는 방부(防腐)처리된 듯 이미 무진(無盡)한 강산으로 변해있다.

그의 발걸음은 공항을 향하지 않고 가방을 끌고 도심으로 발길을 옮기는데, 공항에서 배웅을 위해 기다리던 딸은 전화로 애타게 ‘아버지’를 계속 찾는다. 핸디폰으로 들려오는 딸의 흐느끼는 울음소리에 그도 마른 울음을 겨우 운다.

외딴 섬의 주지로 말 수가 적은 난각(안치욱 분)이 있다. 스님은 법무(法武)를 통해 구도의 길을 간다. 주지는 뭍에서 버려진 어린아이를 거두어 성년이 되도록 키웠다. 무명(황세정 분)이다. 자신의 출생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어떤 배경도 무명은 주지 난각으로부터 듣지 못하고 자랐다. 절간 처마구석에 매단 샌드백을 두드리는 게 무명의 존재를 드러내는 유일한 행위이다. 어느 날 낚시꾼으로 변장한 한 수상쩍은 인물이 절로 숨어드는데, 주지는 ㅤㅉㅗㅈ기는 자를 받아들이고, 무명에겐 절간을 찾아든 인물이 퍽 낯설다.
뭍으로 잠시 나간 무명은 ㅤㅉㅗㅈ기는 자의 존재를 경찰에 신고하고, 절간을 찾아온 형사들은 낯선사내와 주지 난각까지 함께 연행해 갔다.

현재 권투선수인 무명은 링 위에서 사투를 벌이다가 자신의 경기를 보러온 주지 스님인 난각을 발견한다. 무명은 상대선수로부터 처절하게 맞아 링 위에 스러지고 사경을 헤맨다. 난각은 무명을 살리려고 안간힘을 쓴다.

열아홉 살의 택시강도 초범 조동수의 연행을 위해 그의 고향이기도 한 부산으로 향하는 한 형사 수철(안재모 분)은 고향 부산에서 조동수의 행적을 ㅤㅉㅗㅈ는다. 음식점 주방, 영화관 영사실. 범행 후 원양어선을 타고 식당보조로 바다로 나간 상태인 조동수는 택시강도짓으로 13만원 몇 천원을 강탈한 강도범이다.

조동수는 파랑주의보에 이어 내려진 파랑 경보로 어선단은 뿔뿔히 흩어지고 조동수가 탄 배는 예정시간보다 귀항이 늦어지고 있다. 같이 일하는 강력계 반장의 자살 소식을 막 들었다. 수소문해서 찾은 조동수의 어머닌 무당이었다. 오랜만에 고향에 온 수철은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도 만난다.

항구로 귀환한 조동수를 눈앞에서 보지만 왠지 수철은 조동수를 체포하지 않고 놓아준다. 택시강도를 ㅤㅉㅗㅈ는 형사인 수철이 수배중인 범인을 놓아주고 경찰직을 스스로 떠나 택시기사 된다.

비가역성(非可逆性)의 인물들

삶을 산다는 것은 과거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상태이다. 시간의 경과에서도 그렇지만 삶의 조건이란 바로 닥쳐진 이 때 이 사태 그 자체이다. ‘강산무진’의 등장인물들 특징에서 이 비가역성은 현실의 삶에 꼼짝없이 매어있다는 점에 있다. 이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닥친 현실과 상황에 매몰된 존재로의 인물과 세상과의 괴리를 목격한다. ‘현실에 낑겨있는’ 처지의 인물들이지만 이 지긋지긋한 현실로부터 일탈이나 벗어나고 싶지만 전혀 용이하지 않다. 그래서 다시 말하지만 ‘평범한 우리들 자신의 어느 일면이자 우리들 삶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렇듯 드라마는 우리 주위에서 살고 있는 현장의 인물들임을 그대로 보여주고 그려나가고 있다. 하나같이 이들의 삶을 에워싸는 정서는 허망함인지도 모른다. 존재와 세상과의 괴리의 틈은 넓고 깊다. 이 허망함은 너무도 건조하여 세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만, 정작 인물들은 그 세상의 틈에 갇혀 어디 방향 어디 쪽으로든 한 걸음도 앞으로 내디디고 나아가지 못하는 것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들 인물들에서 우리는 답답하고 지루하고 때때로 숨이 막히기도 한다. 이같이 ‘강산무진’의 인물들은 ‘시간’에 갇혀 지배당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삶은 곧 죽음이고 소명이지만 

더욱이 시간의 끝은 죽음이고 소멸이다. 그런데 현실의 삶은 늘 아귀다툼이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은 그들 삶을 방기(放棄)하거나 끝내 절망하고 주저앉지는 않는다. 절망적으로 비쳐 보이지만 끈덕지게 세상을 살아나가고 있다.  드라마는 극중 네 중심인물의 상황을 보여주되 줄거리에 빠지지 않고 여운을 남기며 서로 교차되면서 시청자 각자의 시각에서 드라마를 받아들일 것을 주문하는 방식으로 처리되고 있다. 

‘강산무진’ 드라마연출의 특징과 주제  

일정한 줄거리 위주의 연속으로 진행되고 있는 TV드라마 시청방식에 익숙해져 있는 일반시청자들에게 이번 김홍종 연출의 TV문학관 ‘강산무진(江山無盡)’의 영상은 낯설게 보일 수도 있다.

이는 상투적이고 관습적인 이야기 위주의 드라마 전개방식과는 확연하게 다른 드라마세계를 김홍종 특유의 드라마연출 방식으로 전개하기 때문이다. ‘강산무진’의 영상에서 우리는 거의 ‘드라마 틱’하지 않는 이야기와 등장인물들과 마주한다. 차라리 우리의 일상 속에 쏟아져 들어오는 ‘평범한 사건’과 정황들이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일 수도 있다. 연출에 있어서 영상이미지와 사유(思惟)가 서로 스며서 삼투하듯이 하여 새로 태어나는 새로운 영상언어를 시도하고 도모하기도 한다. 영상의 호흡과 리듬은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정황과 상황은 내면적인 영상언어에 실려 전혀 새로운 풍경을 빚고 그리기도 한다. 삶의 일상성과 구체성은 때때로 조밀하게 드러나기도 하지만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편하게 다가오지는 않을 수도 있다. 이는 바로 자신들이 살고 있는 현실과 냉정하게 마주할 것을, 현실적인 삶의 현장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서부터, 그리고 그것의 정황들로부터 한걸음 더 나아가 새삼 삶이 깨어날 것을 주문하는 식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김홍종의 작품은 가장 현실적인 것으로의 현장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대한 응시(凝視)이다. 폭력, 이혼, 실직, 죽음 등의 피하고 싶은 현실 상황을 시청자들이 마주한다함은 그대로 불편함과 직면하는 현실이 된다.

그러나 삶은 그 정황과 내용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고통이지만, 현실의 삶을 살아가야만 하기에 불편함과 또한 대결할 수도 있어야 한다.

김홍종의 드라마 ‘강산무진’에는 그래서 무슨 특별한 사건들이 새롭게 나타나거나 하는 식이 아니라, 현실과 연결되어 살고 있는 자의 삶 자체의 연속성에서 삶을 끈덕지게 돌아볼 것을 주문하는 메시지가 영상의 장면들에서 전해지는 것이 주 내용이 된다.

드라마 ‘강산무진’에서 보이는 도시와 인간군상들, 산과 들, 지하철과 택시, 곡선의 철로를 휘어져 가는 KTX의 빠른 질주, 되풀이 되어 나타나는 턴넬 속을 빨려 들어가는 듯한 영상, 그리고 하늘과 바다가 하나같이 이어지듯 연결되고, 인물은 사라지지만 다시 등장하는 낯선 인물들처럼 나타나지만, 이들 영상의 배경과 인물들 또한 하나하나 같은 세상 속에서 스스로도 잘 모르는 세상 인연의 끈에 묶여 지속적으로 서로의 생각과 삶에 영향을 주고 있는 현실을 카메라는 냉정하고 끈질기게 집조(集照)한다.

삶의 내면을 끈덕지게 응시하는 카메라

인물의 성격이 전면(前面)에 드러나면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방식이 아닌, 우리들이 매일같이 접하는 삶의 일상들을 통해서 우리들 삶의 내면을 끈덕지게 응시하는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 우리자신들 삶을 통찰해 보기를 영상작가 김홍종은 말한다. 무엇을 위해서 오늘 나의 삶이 존재하는가? 어디에서 내 삶의 가치를 찾을 것인가? 김홍종은 살아가는 저마다 삶에 대한 연민을 이 드라마를 통해서 드러낸다. 가슴 깊숙이 삶을 느끼고 저마다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통해 진지함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 볼 것을 이 드라마는 주제로 전달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근원적 소외를 다룬 이 드라마의 형식은 또 얘기하지만 이야기 위주의 시청방식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겐 생소할 수도 있다. 김홍종 특유의 드라마 연출방식이 드라마에서 삶에 대한 의미를 던져놓고, 그것을 완성시키는 것은 시청자의 몫으로 남겨 시청자의 능동적인 참여를 이끄는 방식이 이 드라마의 주제에 해당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기실 이런 방식은 ‘친절한 방식’은 아니다. 때때로 영상은 느리고 굼뜨며 이야기는 끊어지고 분절되며 의식의 흐름으로 영상은 대체되는 식이다.

여기서 유의해서 볼 점은 등장인물들은 같은 시간에 같은 세상을 살지만, 서로 ‘혼자’라는 사실이다. 이 단독자들의 개별성은 그러나 깊숙이 들여다보자면 또 한편으론 서로 연결되어 있는 정황들로 느껴져 온다. 이 개별자의 삶들, 단독자들의 생들이 김홍종의 영상주제에서는 삶의 보편적인 흐름과 관련되어 삶이 소중한 가치로 재인식될 수 있음을 본다. 이것이 김홍종이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장치이자 주제이기도 하다.
 
일부러 극적인 삶을 강조해서 보여주지도 않지만 드라마에서 모든 것을 해석하고 마감하고 정리해주는 그런 식의 기대는 애초에 김홍종 드라마 전개방식과는 아무 상관없다.

작가로서 김홍종의 연출 주제는 사람이 삶을 살아가고 있음과 살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면서, 이야기의 마무리를 쉽게 드러내지는 않고 심지어 답을 미루기까지 한다. 그 이야기 속에 보여주는 작가의 인식은 철저하게 삶의 현장 그 자체를 짙게 응시하는 힘에서 우리들 삶을 반추(反芻)하게끔 한다. 

이렇듯 독창적인 영상주제를 통해 삶의 근원을 향한 탐색을 집요하게 펼치고 있는 김홍종의 작품에서 주제를 이끄는 ‘영상의 힘’을 우리는 감지하게 된다. 

배우 서인석의 새삼스런 발견

‘강산무진’의 주인공 서인석의 연기는 단정했다. 연기표현에서 절제가 있고 인물의 내면으로 시청자를 이끈다. 인물의 심리적인 상태와 육체적인 상태 사이에 끊을 수 없는 인과관계를 서인석은 연기로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었다.

배우의 간단한 연기에서도 시청자가 스스로 상상력을 확대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연기의 요소가 배우자신으로부터 적절하게 계산되어 있음을 뜻한다. 배우가 연기를 잘한다함은 배우와 등장인물이 일치되는 단계로의 실체적 행동을 연기하기 때문이다. 진실한 연기는 신체적 행동으로의 연기가 사실을 함유하고 있을 때 드러난다. 행동을 연기로 표출하는 것은 배우에게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다.

서인석이 ‘강산무진’에서 연기를 할 때는 감정을 억지로 만들어 표현하지 않았다. 심지어 ‘연기하기’를 버렸다. 이는 곧 배우의 연기요소에서 자연스러움을 ‘연기’하는 능력이다. 신체적 행동의 연기 영역에서 배우가 자신의 연기를 통제하니까 이는 가능하다. 여기서 서인석의 연기력은 등장인물의 삶의 영역 안으로 깊숙이 접근하고 있다. 등장인물의 행동의 논리와 감정의 논리가 이성적으로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강산무진’ 그의 연기에서 상투적인 표현이나 군더더기는 없다. 연기의 심리적 내적 정당성과 신체표현의 정합성이 균형을 갖추기 때문에 기실 서인석에게 연기의 몰입이란 곧 ‘연기하기’를 스스로 중단시키거나 ‘꾸미어 연기하기’를 내다버린 ‘연기’로의 몰입 행위(acting)이다. 

여기서 나는 연기자 서인석이 더 나은 연기를 이끌어내기 위하여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단련시키는 것을 스스로 요구하고 있음을 본다. 이런 연기자의 새삼스런 발견이란 반갑다. TV문학관 ‘강산무진’은 KBS1에서 오늘 3월 2일 오후 11시 30분에 방송된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