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17일 새벽 일본 고베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일본언론, 그중에서도 공영방송 NHK의 활약은 대단했다. NHK에 지진소식이 접수된 것은 오전5시49분. 정규방송이 55분에야 시작되기 때문에 NHK는 우선 도쿄지방망을 작동하여 TV와 라디오 5개 채널을 통해 긴급속보를 내보냈다. 그리고 1분뒤 전국망을 열어 지진발생 사실을 신속하게 내보냈다.

NHK는 지진 진도 6 이상일때 위성방송을 포함한 7개 채널을 모두 재해보도에 집중한다. NHK의 재해보도 시스템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하나 있다. 지진이 발생한 순간 NHK 고베방송국 직원이 지진에 흔들려 당황하는 모습과 비품이 뒤집히는 순간을 영상으로 잡아 내보낸 것.

이는 새로 개발된 SBC(SKIP BACK RECORD)라는 기계때문에 가능했는데 이 기계는 지진발생과 동시에 전원이 작동, 지진발생 10초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녹화를 한다. 방송시간대와 전혀 상관 없이 지진이 발생하면 언제나 생생한 화면을 내보낼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춰 놓고 있음을 보여준다.

NHK가 보여준 또 하나의 재해보도 특징은 FM라디오를 통한 생사확인 방송. 일명 안부정보(安否情報)방송으로 지진 발생 이후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고베시 ○○구 ○○번지에 사는 ○○분의 안부를 ○○지역에 사시는 ○○씨가 묻고 있습니다”라는 식의 방송으로 지진으로 소식이 단절된 피해자와 그 친지들을 위해 NHK가 이례적으로 마련한 방송이다. 공공방송에서 개인을 위한 방송을 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지만 국민들의 불안을 고려해 정보매체를 개방한 것이다. LA흑인폭동때 한인 라디오방송이 했던 활약상과도 비교된다.

그런데 이번 지진사태때 NHK나 민방 등 영상매체외에도 활자매체의 대비 태세 또한 눈여겨 볼만했다. 고베시 중앙구에 위치한 8층 건물의 고베신문사는 지진으로 인해 각층 창문 전체가 깨지고 책장이 뒤집히는가 하면 지면제작에 필요한 컴퓨터도 작동 불능 상태에 빠져 윤전기가 있는 제작센터와 회선이 끊어졌다.

컴퓨터회사에서 달려왔지만 전기가 나갔고 여진도 계속되고 있어 컴퓨터실에 서서 들어갈 수도 없었다. 편집은 가능했지만 컴퓨터 작동불능으로 인쇄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이제 신문제작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그때 교토신문사와 체결해 놓은 재해협정이 유효하게 발휘되기 시작했다. 재해협정이란 지진 등 긴급재난이 발생할 경우 컴퓨터에 의한 지면제작에 늘 위험이 따르므로 미리 신문사 상호간에 인쇄 등 제반사항을 협조하기로 약속해 놓은 것. 고베신문사는 교토신문사와 1년전 협정을 맺어 놓았는데 이번에 효력을 보게 된 것이다.

고베신문사의 편집담당자가 제호와 원고를 들고 교토신문사로 가 제판필름을 만들고 이를 다시 고베신문사 제작센터로 가져와 무사히 석간신문을 찍어낼 수 있었다. 비록 평소 8~10페이지를 내는데서 4페이지로 줄어든 신문을 발행하긴 했어도 신문매체들도 TV매체와 마찬가지로 재해발생에 철저히 대비하고 있음을 생생히 입증해 준 사례다.

얼마전 대구에서 지하철가스 폭발사건이 일어났을 때 TV가 제대로 현장중계를 하지 않아 국민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는 사실을 이곳 일본에서 접하면서 부끄러운 생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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