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 좋아하는 표현은 아니지만 남다르게 고운 외모의 여성 연기자들에게 많이들 갖다 붙이는 찬사가 ‘여신’이다. 그 여신급 미모가 성형수술의 도움을 받지 않고 생긴 그대로일 때 ‘자연미인’이라고 한다. 그 자연미인과 극 중 배역에서든 실제 삶에서든 연분을 맺는 상대를 ‘전생에 나라를 구한 자’라고까지 하며 부러워들 한다.

미의 기준이 사람마다 제각각이라고 해도 ‘예쁘다’는 표현을 쓰는 데 아무도 어깃장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똑 떨어지게 예쁜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지금 최고의 시청률을 올리고 있는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주인공 한가인이다. 그런데 여태껏 연기자로서 이룬 성과가 어떻든 그토록 곱다, 예쁘다, 부럽다고 칭찬하던 사람들이 이 ‘여신급 미모 자연미인’에게 꽤나 모질고 야박하다.

드라마 초반에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아역 연기자에 견주어 연기력이 떨어진다는 게 한가인에게 퍼부어지는 비난의 첫 번째요, 남자 상대역인 김수현에 비해 ‘이모뻘’로 보인다며 나이 탓하는 게 그 두 번째다. 한가인이 연기 잘해서 톱스타가 된 게 아니라 과학의 힘을 빌지 않고도 ‘자체발광’하는 미모로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화장품부터 세탁기까지 남들 다 탐내는 알짜배기 CF 모델 노릇한 게 하루 이틀도 아닌데.

연기자가 연기 못해서 받는 비난은 감수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한가인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톺아보면 그저 연기가 차마 보기 민망해서라기에는 지나치다. 여태 그 배우가 해왔던 연기보다 좀 더 나아진 것도 분명하고, 물리적인 나이가 상대역보다 많기는 하지만 ‘누나’도 아닌 ‘이모’ 소리 들을 만큼 나이가 확 표 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참 입방아가 요란하기도 하지.

한가인은 <말죽거리 잔혹사>(2004년, 유하 감독)에서 당시 최고의 몸짱 청춘 스타 권상우의 첫사랑 역으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덜 여물어 어설픈데 기운만 뻗쳐 껄렁껄렁한 남자 고등학생에게 얼굴 예쁘장한데 행동거지는 참한 듯 헤퍼 기대만큼 대단치 않더라고 기억되는 그런 첫사랑. 그런데 이 첫사랑이라는 게 참 이상해서 되짚어보면 별것 아니다 싶어도 그걸 깨달은 다음의 나중이 아니라 처음에 마음에 들어와 박힌 인상만 또렷한가보다. 

<말죽거리 잔혹사>만 해도 현수(권상우)와 우식(이정진)의 사랑을 몰아 받은 은주(한가인)가 겉보기보다 행실은 발칙하고 정은 헤프지만 영화를 본 관객이든, 영화 속 주인공 현수든 끝까지 기억하는 건 새침하고 청순한 첫인상이다. 그 인상이 당연하게 여겨질 정도로 한가인의 외모는 그때도 예뻤고, 지금도 예쁘다. 그런데 <해를 품은 달>에 출연하고부터는 연기야 어떻든 예쁜 건 인정한다던 목소리가 영 들리지 않는다. 그새 미모가 상한 것도 아닌데.

세자 시절 아역 여진구에서 성인이 된 임금으로 이어지는 ‘훤’ 역의 김수현에 비해 연우 아가씨 시절 김유정에서 기억을 잃고 천대받는 신분의 무녀 ‘월’ 역의 한가인은 40%를 오가는 시청률을 올리는 드라마 주연 가운데 가장 높은 출연료를 받는 간판 연기자, 바로 ‘해를 품은 달’ 역을 맡은 타이틀 롤이면서도 시청자로부터는 그 출연료나 이름값만한 사랑을 받지는 못하고 있다.

한가인이 이 정도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은 이미 모든 것을 다 알면서도 서늘하게 감정을 안에 담아두던 정은궐 작가의 원작 소설과 달리 드라마에서는 자신이 맞닥뜨리는 상황마다 순간순간 새로운 반응을 보이며 자신이 누군가를 깨달아 가는 기억을 잃은 존재의 당황스러운 자각만큼이나 불편한 상황이다. 드라마를 보며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주인공의 처지에 동일시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과연 연기력이나 나이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해를 품은 달>은 ‘첫사랑’에 대한 회한의 드라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첫사랑은 이루지 못했기에 안타깝고, 안타깝기에 아름다움만 남겨지는 기억이다. 그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도록 한 것은 나이일 수도 있고, 재산일 수도 있고, 집안일 수도 있고, 변심일 수도 있고, 오해일 수도 있다. 늦되거나 정서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첫사랑은 어른되기 전에, 그래서 이것저것 재고 따지기 전에 겪는다. 한때 절절했을 그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한 까닭을 짚어보면 세상이 각자에게 씌운 굴레와 장벽이 보인다. 그 앞에서 좌절하고, 분노하고, 그러면서 어느새 길들여진 자신도 돌아보게 된다. 단지 이루지 못했기에 아쉬운 것이 아니라 이루지 못하도록 막아선 세상에 이미 동화되어 예전에 지녔을 ‘순수’를 잃게 된 스스로가 아쉽고 부끄럽다. 

<해를 품은 달>은 첫사랑을 가로 막는 것은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충분한 힘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사랑조차 가장 첨예한 권력다툼에서 비껴있을 수 없다. 심지어 사랑을 이루기 위해 권력을 포기하는 것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그것이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다. 첫사랑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이 사람을 다루기 만만한 어른으로 길들이는 세상의 덫이요, 함정이다. 

그런데 ‘훤’은 포기하지 않고 첫사랑을 되찾으려 한다. 그러기 위해 힘이 필요하다면 권력을 잡으려 하고, 기존의 규범을 깨야 한다면 가족도, 신분도, 제도도 넘어서려 한다. 그래서 기어코 순수한 자신으로 되돌아가려 한다. 첫사랑을 되찾기 위해서는 모든 굴레를 넘어서서 새로운 권력, 새로운 문화, 새로운 관계를 위해 존재를 걸고 싸워야 한다. 그런 노력이 헛되지 않으려면 첫사랑 연우는 어떤 권력에도 속하지 않는 상태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연우가 무녀가 된 까닭은, 심지어 원작 소설과 다르게 기억을 잃은 까닭은 그래서일 것이다. 

그런데 한가인은 훤 역의 김수현보다 더 선배고, 드라마 안보다 외적 상황에 영향력도 더  크고, 심지어 이미 연예계 유력한 집안과 연을 맺은 유부녀다. 세상 어디에고 속해있는 자리가 도드라지는 스타다. 스타를 앞세워야 드라마가 투자도 받고 편성도 되는 캐스팅 관행 때문에 타이틀 롤이 된 것이 오히려 드라마에 대한 몰입을 가로막는 장애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더구나 MBC가 현실 정치에서 권력과 야합해 노조와 맞서는 상황에서 시청자는 드라마에 현실을 투사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뉴스도 파행이요, 최고의 예능으로 꼽히는 <무한도전>도 결방인 마당에 김재철 사장이 노조를 비난하는 방패로 삼는 것이 언론 정신 문제가 아니라 <해를 품는 달>이다. 모처럼 장사 잘하고 있는데 재 뿌리냐고. 이런 지경에서 주인공 한가인이 극중에서 아무리 곱상한 얼굴로 연우/월의 가련한 처지를 연기한다해도 시청자 눈에는 극중 외척 세력이 권력을 유지하려 부당하게 앞세우는 중전 보경 캐릭터와 겹쳐지는 밉상일 수밖에. 

드라마가 종반을 향해 가면서 월이 연우로 되돌아가고, 연우가 훤과 사랑을 이루어, 부당한 집단으로부터 권력을 되찾아 어진 정치를 베풀기를 바라는 것만큼이나 시청자들은 MBC가 부디 바른 언론의 자세로 시대를 비추는 거울, 정의를 일깨우는 목소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가인이 아무리 예뻐도 연기력 문제로 타박받는 거야 연기자 한 개인의 문제지만, 방송사가 언론사로서 제 구실을 못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바라마지 않는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을 짓밟는 첨예한 정치와 권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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