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쿠데타 직후 강압에 의해 부산일보와 MBC·부산MBC 주식을 넘겼다며 고 김지태 씨 유족들이 정수장학회를 상대로 낸 민사소송에서 패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7부(부장판사 염원섭)는 24일 오전 김씨의 유족 김영구씨(97) 등 5명이 낸 주식반환 청구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이날 법정에 나타난 김영구씨의 동생인 김영우(69)씨는 재판이 열리기 전 기자들을 만나 “정수장학회를 진정한 공익재단으로 만들고자 한다”며 “우리가 소송에 이기더라도 개인재산화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 형제들이 다 합의를 했다”고 밝혔다.

김영우씨는 이날 현재 정수장학회를 이끌고 있는 최필립 이사장 등 비롯한 이사진이 물러나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씨는 “우리나라에서 명망 있는 인사들을 이사들로 모셔서 진정한 아버님의 뜻이 영원히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저희들이 원하는 일이다”고 했다.

김씨는 또 “지금 현재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보지 않지만 곁에 있는 분들이 과잉충성해서 문제를 만들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바꾸는 계기가 충분히 된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지난 23일 정수장학회가 공식적으로 사퇴불가 입장을 밝힌 것을 비판했다. 그는 “연세 많은 분(최필립 이사장)이 고집이 있는 거 아닌가”며 “그러나 모든 국민들이 ‘저건 아니다’고 한다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비난했다.

김씨는 이어 “박근혜씨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하는데도 연세가 많으신 분이 생활비가 없어서 꼭 하겠다고 한다면 저희들이 드릴 수 있다. 회사 고문으로라도 해서라도...”라고 꼬집었다.

정수장학회는 부산 유력기업인이었던 김지태씨의 재산을 강제로 헌납 받아 만든 ‘5·16 장학회’의 후신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 육영수 여사의 ‘수’자를 따서 이름을 지었다. 박근혜 위원장이 이사장을 맡고 있었다가 지난 2004년 정치적 논란이 일자 그 이듬해 물러났다.

김씨는 이후 내려질 재판 결과에 대해 개의치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는 “이 결과가 (마지막) 결과가 아니고 대법원으로 가기 위한 과정으로 본다”며 “이 재판이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희망적으로 봤다.

김씨는 “오늘의 승패보다는 여러분들(기자들)이 관심을 가져주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고맙다”며 “오늘 (재판에) 안 나오려고 했다. 여러 기자들이 꼭 나오라고 했고 죄도 지은 것 없어서 (나왔다)”고 웃었다. 
 
오전 10시 20분 쯤 염원섭 부장판사가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는 짤막하게 판결을 읽었다. 판결이 내려지기 전 가져온 책을 읽으며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던 김 씨는 이 말을 듣고는 바로 법정을 나왔다.

김영우씨의 얼굴은 담담한 듯 하면서도 살짝 굳어있었다. 김씨는 “현재 하급심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이번 소송은 대법원을 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했다.

김영우씨는 “지난 2007년 과거사위에서 발표한 결과를 읽어보면 아버님이 억울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2005년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와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두 차례 조사에서 부일장학회와 언론사 지분을 박정희 정권이 강제헌납 받았다고 지적한 바가 있다.

김씨는 “그래도 참여정부에서 ‘국가가 사과하고 배상하라’는 결정을 내려서 분한 마음을 반은 풀었다”며 “이걸 가지고 소송해서 아버님의 이름이 장학회에 들어가고 ‘이 분의 도움으로 공부를 했구나’ 하는 것이 알려졌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김씨는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사과를 바라느냐’는 질문에 대해 “사과할 필요가 없다. (정수장학회에서 많은 이들을) 공부시켰는데 좋은 일이지 않나”고 답했다. 김씨는 다만 “피해자를 낸 것은 잘못됐다. (장학생들이) 누구의 돈으로 공부하는지는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사과는 국가가 해야 하는데 이미 사과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박근혜 위원장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나는 그런 일이 있었지만 박근혜 위원장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며 “하지만 정수장학회가 그분(박근혜)의 치마폭에 싸여 있어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김씨는 이번 소송의 목표가 고인이 된 김지태 씨의 명예회복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명예회복이 우선”이라며 “어떤 분인지 조명되고 사회가 인정해주는 상황이면 된다”고 밝혔다.

김씨는 정수장학회를 사회환원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미 사회환원된 장학회였다”고 지적했다. 고 김지태씨가 만든 부일장학회는 공익재단으로 출발했는데 이후 정수장학회로 이름이 바뀌고 박근혜 위원장을 비롯한 측근들이 운영하면서 사익화된 측면을 비판한 것이다.

김씨는 또 부산일보 사태에 대해서도 “아버님은 ‘나라면 (운영을) 이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 라고 했을 것”이라고 에둘러 비판했다.

부산일보 편집국은 노조가 작년 11월17일 부산일보의 주식 100%를 소유하고 있는 정수장학회의 사회환원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자, 관련 기사를 게재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김종렬 전 사장은 관련 기사의 누락·수정·연기 등을 요구했으나 이정호 편집국장은 거부했고 예정대로 18일자 1면에 기사 <부산일보 노조, 정수재단 사회환원 촉구>를 게재했다.

부산일보는 이 기사에서 “집권여당의 유력 대선주장인 박근혜 의원은 말로만 정수재단을 사회에 환원했다면서 자신을 보좌하던 비서관을 이사장으로 앉히고 소유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재단과의 관계 재설정을 요구하는 노조에 부산일보 사장이 징계 등 초강수를 들고 나오는 것은 대선을 앞둔 사전정지 작업” 등의 내용을 전했다.

한편 이날 김씨는 바로 항소할 것이라고 밝혀 정수장학회를 둘러싼 유족들의 법정 싸움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김씨의 장남 영구(73)씨 등은 지난해 “정수장학회는 강제 헌납 받은 주식을 반환하고, 반환이 곤란하면 국가가 10억원을 배상하라”는 취지로 정수장학회와 국가를 상대로 주식양도 소송을 제기했다.

김씨 등은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공권력의 강박에 의해 주식을 기부했으므로 증여는 무효”라며 “2007년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 이후 기부를 취소할 수 있다는 것을 명확히 알았기 때문에 청구 시효도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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