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철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후보자가 납품 비리를 저지른 회사에서 수년 간 고문을 맡아 도덕성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그동안 그는 ‘시대의 청백리’라고 불릴 정도로 청렴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이번 일은 의혹만으로도 충격적인 일이다. 그동안 이계철 후보자는 이명박 대통령의 고려대 동문으로서 이전 인사들보다 도덕성 논란에서 자유로울 것으로 예상됐지만, 현재 혹독한 도덕성 논란에 휘말리는 형국이다.

논란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로, 이계철 후보자는 통신장비 납품업체의 실소유자가 뇌물 혐의로 처벌을 받은 곳에서 수년간 재직한 점이다. 인사청문 요청안에 따르면, 이 후보자는 2006년부터 2009년까지 4년간 ‘글로발테크’ 고문으로 일하며 3억여 원을 받았다. 매년 7000만 원 이상을 받은 셈이다.

이 회사의 실소유주는 통신기기 납품업체인 BCNe글로발의 전용곤 회장이었다. 전 회장은 지난 2008년 KTF에 중계기를 납품하기 위해 당시 조영주 KTF 사장에게 차명계좌를 통해 7억3800만 원을 건넨 배임 수재 혐의와 62억 원 횡령 혐의로 징역 3년형을 받은 인물이다.

주목되는 점은 BCNe글로발이 지난 2008년 뇌물 문제로 시끄러워지자 글로발테크로 회사명을 바꾼 점이다. 두 회사는 이름만 다를 뿐 같은 회사인 셈이다. 결국 이계철 후보자는 2006년부터 BCNe글로발의 고문을 맡은 것이다. 이 후보자가 BCNe글로발의 고문을 맡자마자 회사 창업 1년 만에 수백억 원의 매출이 오른 과정도 석연치 않다. 전병헌 의원은 “BCNe글로발은 2006년 2월에 자본금 3억 원으로 창업됐지만 불과 4개월 만인 6월에 KTF와 84개 시의 WCDMA 아로마 허브 납품 계약을 체결한다”며 “창업하는 해에 약 355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는 비약적이고도 특혜적인 성장을 하게 된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2006~2008년까지 공급 계약의 대부분을 KTF와 맺었다.

이를 두고 이계철 후보자가 KT 사장 시절에 조영주 KTF 사장은 기획조정총괄팀장을 맡는 등 각별한 측근이었기 때문에, 이 후보자가 BCNe글로발이 KTF에 납품하는데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있다. 전병헌 의원은 “사실상의 로비스트 의혹”이라고 밝혀, 이 고문이 BCNe글로발과 KTF의 납품 비리 사건에 이 후보자도 연루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전 의원은 “신생회사에 불과한 글로발테크가 KTF 사장을 회사 인근 식당으로 불러 차명통장을 건네받은 일”도 있었다면서, 글로발테크와 조영주 사장을 엮어주는 ‘메신저’로 이 후보자를 겨냥한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후보자 인사청문준비전담팀은 21일 보도자료를 통해 “KTF 로비 사건에는 전혀 관여한 바가 없음”이라며 “당시 횡령 및 배임사건에 대해서도 추후 언론보도를 통해 알게 되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주목되는 점은 BCNe글로발이 KTF에 뇌물을 준 것은 2006~2007년이었고, 2008년에 이 사태가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이계철 후보자가 2009년까지 BCNe글로발이 이름을 바꾼 글로발테크의 고문으로 있으면서 약 7천만 원을 받은 점이다. 이 후보자가 뇌물 사건을 알면서도 이 회사의 고문으로 재직한 것으로, 인사청문회의 해명에도 여전히 도덕성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셈이다.

이계철 후보자 관련 두 번째 논란은 이 후보자가 BCNe글로발, 글로발테크에서 고문으로 일하면서 업무 관련성이 있는 정부 기관의 비상임 이사장을 겸직한 점이다. 이 후보자는 한국인터넷진흥원 이사장(선임 비상임이사. 2002~2008년),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이사장(선임 비상임이사, 2006~2010년)을 겸직했다.

전파진흥원은 전파 산업과 관한 전반적인 정책을 집행하는 곳으로, 중계기가 법령에 맞게 제대로 설치되지 않았을 경우 통신사에 제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BCNe글로발, 글로발테크는 중계기를 통신사에 납품하던 회사였다. 결국 이 후보자가 전파진흥원 이사장을 맡으면서 중계기를 맡은 회사의 고문까지 맡은 것은 부적절한 논란을 낳을 수 있다.

인사청문준비전담팀은 “정관상 비상임 이사에 대한 겸임을 금지하고 있지 않으며, 다른 비상임 이사들도 교수, 사업체 대표, 연구기관 재직 등 각자의 직업을 갖고 있었다”고 해명했지만, 법적 문제를 떠나 여전히 도덕성 논란이 있는 대목이다. 전병헌 의원은 “사실상 로비업체 출신인 방통위원장 후보의 임명은 철회돼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어, 향후 이계철 후보자가 도덕성 검증 시험대를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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