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독도의 일본표기에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달라’고 말했다는 요미우리신문 보도를 뒷받침하는 외교문서가 발견된 데 이어 이번엔 한국 정부가 독도 문제를 “소홀히 취급”했고, 청와대 수석이 “독도문제로 일본을 압박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미국 국무관료에 말했다는 외교전문이 공개돼 충격을 주고 있다.

이 대통령을 비롯한 이명박 정부의 독도 외교는 사실상 저자세와 굴욕으로 일관했음이 미국 외교문서를 통해 드러났다는 점에서 정부가 조직적으로 대일 역사인식 망각에 앞장섰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지난 2008년 6월 12일 주일 미 대사관(토마스 쉬퍼 작성)이 본국에 보고한 2급 비밀 외교전문에 따르면, 그해 6월 5일 도쿄에서 개최된 한미 차관급 전략대화에서 권종락 외교부 차관과 야부나카 일본 외무성 차관은 독도 분쟁 해역에 대한 해양조사를 양국이 허용하도록 합의하는 방안을 협의했다.

특히 당시 5월 16일 일본언론에 보도된 일본 문부과학성의 독도 일본 영토 표기 방침에 대해 양국은 “교과서 논쟁에 대해 ‘소홀히 취급했다(play down)’”고 전문은 전했다.

특히 전문은 당시 회담 내용을 설명해준 나가오 사게토시 일본 외무성 아주국 부국장은 “한국 대표단이 그 보도에 대해 ‘약간의 우려’(some consern)를 전달했으나, 일본측은 아무 결론이 난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고 말했다고 전문은 전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첫 한일 전략대화인데다 일본의 독도 도발 방침이 알려진 이후 양국간 첫 공식회의였으나 우리 정부는 독도문제에 대해 ‘소홀히 취급’했을 뿐 아니라 ‘약간의 우려’를 전달하는데 그쳤다는 것이다. 더구나 독도 문제로 극심한 반발을 사고 있는 와중에 한일 양국이 독도 주변 해역 공동조사를 하기로 합의하는 방안을 논의했다는 것도 충격적이다.

우리 외교부는 전략대화 직후인 2008년 6월 5일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이런 내용을 단 한 줄도 밝히지 않았다. 당시 외교부는 “전략대화 결과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 △대학생 교류사업 △신시대 공동연구 프로젝트 △부품·소재 산업분야 등에서의 경제 협력 등 대통령 방일 후속 조치의 순조로운 추진을 위해 양국이 적극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만 밝혔다.

이 같은 사실을 위키리크스 공개 외교전문에서 처음 찾아낸 김용진 전 KBS 탐사보도팀장은 21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런 사실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내용”이라며 “우리 정부가 겉으로는 일본의 독도 교과서 도발에 대해 강력 대응하는 시늉을 내면서도 실제 양국의 고위급 공식 대화 석상에서는 일본 측에 독도 문제에 대한 우려를 간단하게 전달하는 선에서 이 문제를 비켜갔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한 이명박 정부는 일본의 독도 도발에 대한 국내의 거센 비판 여론을 뒤로한 채 일본 정부와 밀실에 앉아 태평스럽게 독도 주변 해역에 대한 공동조사 방안을 비밀리에 논의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이후 일본 문부과학성은 2008년 7월 9일 이명박 대통령과 후쿠다 총리의 정상회담이 개최되고 불과 닷새만인 7월 14일 공식적으로 중학교 사회교과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를 일본 영토라고 명기했다. 그래놓고 우리 정부 관료들은 일본에 대해 배신감을 느꼈다고 주장했다. 지난 2008년 7월 17일 자 미국 대사관이 작성한 비밀 외교전문에서 강영훈 서기관은 같은 달 16일 주일 미국 대사관 정치담당관을 만나 일본의 결정에 대해 “매우, 매우 심각하고”, “엄청나며”, “폭발적인 것”으로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외교전문은 “이명박 대통령이 7월 9일 후쿠다 총리와 회담에서 ‘hold back(기다려 달라 또는 중단해 달라, 저지해 달라 등)’이라고 말하며 직접 호소까지 한 뒤라서 한국의 관료들은 배신감을 느꼈다고 강 서기관은 말했다”고 전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기다려달라’고 말했다는 뜻으로 이 용어를 썼는지, ‘저지해달라’는 뜻으로 썼는지는 강 서기관과 미국 외교전문작성자의 대화의 맥락을 더 들여다봐야 하지만 한일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과 후쿠다 총리가 일본 교과서의 독도 영유권 명기 문제를 거론한 것은 분명하다는 사실은 확인된다. 특히 이 대통령이 강하게 항의하기는 커녕 미온적 입장이었던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이후의 미국 외교전문을 보면, 이명박 대통령을 포함한 이명박 정부의 외교부는 시종일관 독도 문제에 미온적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주한 미 대사관이 2008년 12월 31일 라이스 국무장관의 방한(2009. 1. 8)을 앞두고 본국에 보낸 정세보고서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은 일본과 계속 잘 지내고 싶어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이명박 대통령은 그의 전임자들에 비해 훨씬 더 일본과 함께 일하고 싶어한다”며 “비록 역사와 독도영유권 분쟁으로 현재 긴장이 고조돼 있긴 하지만, 이 대통령은 일본의 대화 파트너와 아주 우호적인 교류를 해왔고 후쿠다 전 총리와 좋은 관계를 맺었다”고 기술했다.

또한 주한 미 대사관은 2009년 1월 14일자로 작성된 전문에서 아소 다로 일본 신임 총리가 방한한 뒤 가진 이명박 대통령과 회담에서 뜨거운 이슈였던 독도 영유권 분쟁과 역사 문제를 서로 전혀 언급하지 않은 점을 두고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외교전문은 “회담에서 독도 영유권과 역사 문제에 대한 언급 없이 결론이 난 것은 또한 드문(이례적인) 일이었다”고 적었다.

무엇보다 우리 정부는 청와대 수석비서관까지 나서서 미국 관료에게 한국이 독도문제로 일본을 압박하길 원치 않는다는 뜻을 밝혔다는 외교전문까지 공개됐다. 제임스 스타인버그 미 국무부 부장관이 김성환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과 대화한 내용을 2009년 2월 18일자로 기록한 전문에는 이렇게 기재돼있다.

“김성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그의 노트를 검토한 뒤 마지막 이슈인 독도라 불리는 섬을 둘러싸고 일본과 벌이는 영토 분쟁 문제를 꺼내들었다. 김 수석은 양국이 현재 향상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한국은 이 문제로 일본을 세게 압박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김용진 전 KBS 탐사보도팀장은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이 미 고위관계자를 만나 한국의 이런 입장을 구태여 왜 전달하고, 이를 통해 미국에 어떤 신호를 보내려고 한 것인지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며 “미국 전문을 통해서도 이명박 정권이 일본의 역사 도발 문제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 계속 확인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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