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콘텐츠를 어떤 태도로 말하는가가 중요하다. 플랫폼은 수단일 뿐이다. 요즘 등장하고 있는 일종의 ‘해적’ 콘텐츠들은 정확히 말하면 ‘내몰린’ 것이고, 내몰렸다는 사실이 그 콘텐츠를 발화하는 이들에게 일종의 태도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 태도까지가 콘텐츠이다. 요즘 언론인들에게 가해지는 파업과 해직이라는 사실이 그들이 말하고 있는 콘텐츠를 결정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MBC가 파업중이다. 덕분에 많은 시청자들이 10분짜리 뉴스데스크를 봐야하고, <무한도전> ‘하하VS홍철’의 최종 결과를 2주째 궁금해만 하고 있다. 그 와중에 MBC노조가 만든 ‘제대로 뉴스데스크’(9일 공개)가 조회수 36만(13일 현재)을 돌파했다. 그리고 해직기자 출신인 노종면 전 YTN 기자, 이근행 전 MBC PD 등이 만드는 ‘뉴스타파’도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들을 만한 뉴스가 그들이 있던 조직을 벗어나서야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언론인들의 수난이 연속되고 있는 현실은 단지 우리나라의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훼손되었다는 사실만 노출하는 것은 아니다. 올드미디어의 위기는 산업과 기술의 발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활용하고 있는 자본과 사람에서 오는 것이다. 얼마전 트위터가 특정국가 정부의 요청이 있을 경우 해당 국가 내에서 트윗을 차단(Block)하겠다 해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뉴미디어도 대중들의 요구에 어긋날 경우 언제든 올드미디어처럼 외면 받을수 있다.

‘뉴스타파’와 ‘제대로 뉴스데스크’가 노출하는 사실은 어떤 뉴스인가가 중요할 뿐, 그것을 담아내는 플랫폼은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되새기게 한다. 플랫폼은 수단일 뿐이다. 물론 애플의 팟캐스트나 구글의 유튜브라는 새로운 미디어 공간이 ‘검열’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누구나 방송을 만들고 만들어진 방송을 볼 수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들이 알고 있는, 혹은 몸담고 있는 플랫폼을 고집했다면 지금과 같은 환호 혹은 파업에 대한 지지를 얻어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결국은 태도라는 얘기다. 현재 MBC의 파업과 KBS의 뒤늦은 자정노력이 메이저 언론사 기자와 PD라는 기득권 내에서만 움직였다면 과연 가능했을까. ‘뉴스타파’가 타파하고 있는 것은 ‘월급쟁이’ 기자, PD라는 안일함이고, ‘제대로 뉴스데스크’가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저널리즘이다.

방송‘장악’을 생각한 정부 인사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마치 모래가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듯 모든 언로를 통제할 수는 없으며, 프레임의 외연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훨씬 더 많은 대중의 지지를 얻는다. 뉴스를 통제하고 기자들을 해직시키면 입맛에 맞는 뉴스들만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면 대중들을 우습게 봤거나, 미디어를 활용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대한 이해도가 저열한 수준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현재의 해적방송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은 파업중인 노조원이고, 해직된 (구)주류언론 기자들이지만, 그들에게 그런 태도를 심어주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사람들은 낙하산 사장을 임명하고, 툭하면 ‘행방불명’되는 사장을 임명한 이들이다. 하지만 정말 이런 이슈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사람들은 이런 파업과 해적방송에 전전긍긍하고 있을 사람들이 아니라, 현재 주류 언론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 자신이 몸담고 있는 플랫폼은 언제든 다른 플랫폼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점, 결국 태도까지를 포함한 어떤 콘텐츠를 말할 수 있는가가 생존을 포함한 정체성을 규정할 것이라는 점이다.

현재의 풍경은 역설적이다. 방송이라는 올드미디어에 힘을 몰아준 정부의 행동이 그 올드미디어 자체를 몰락시키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발생한 ‘해적방송’들은 뉴미디어의 가능성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비대해진 공룡들은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헐떡거리고 있다. 진정 그들이 ‘공룡’이 되어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질까. 성급한 판단이지만 ‘해적’들의 재기발랄한 웃음과 종편을 비롯한 ‘공룡’들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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