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민 사회당 고문에게 ‘박정근 구속사건’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지난해 9월 말, 경찰의 압수수색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별 일 없을 것’ 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덜컥 구속영장이 신청됐다. 박정근(24) 씨는 수원 남부경찰서에 수감됐다. 변호인은 구속적부심을 신청 했다. 설마 했는데, ‘도주 및 증거인멸의 이유가 있다’는 이유로 구속적부심 청구가 기각됐다. 이번 주말 쯤에는 병보석 허가 여부가 결정된다고 한다. 경찰의 압수수색 이후 ‘급성 스트레스 장애’로 약을 먹고 있던 그였다. 금 고문은 “이제 진짜 모르겠다”고 말했다.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 사회당 당사에서 만난 금민 고문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선전 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의 트위터 계정을 팔로우하고, 글을 리트윗(RT)한 박 씨에게는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죄’가 적용됐다. ‘리트윗 보안법’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금 전 대표는 “외신에서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냐’고 물어온다”고 귀띔했다. 하루 전에는 독일의 유력 주간지 슈피겔(Spiegel)이 자료를 요청해 왔다고 했다. 이미 워싱턴포스트나 뉴욕타임스 등 30여개 세계 주요 언론에서 이 사건을 보도한 바 있다. 돌연 누군가 지어낸 ‘국격’이라는 단어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그는 “국가보안법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찬양고무를 누가 판단할 수 있느냐”는 뜻이다. 박정근 씨는 우리민족끼리의 트윗을 리트윗하며 자신의 ‘풍자’를 곁들였다. 실제 그의 트윗에는 북한이 희화화된 모습으로 그려진다. 게다가 박 씨가 몸담고 있는 사회당은 북한의 ‘3대세습’에 대해 “비정상적인 권력 승계로 인류가 추구해야 할 보편적 가치와는 분명 상반되는 일”이라고 강하게 비판한 정당이다. “코미디가 따로 없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이유다.

“박정근 씨의 구속은 표현의 자유와도 관련된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금 고문은 “경찰은 (박 씨에게) 수사 도중 ‘앞으로도 트위터를 계속 할 거냐’고 물었다”며 “명백한 표현의 자유 침해이자 ‘검열을 하겠다’는 뜻을 내보인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수천 건에 달하는 박 씨의 트윗을 하나하나 끄집어 내 ‘무슨 목적이었냐’며 따져 물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부당하다고 느낀 박 씨는 수사를 받는 기간에도 꾸준히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일종의 ‘불복종 운동’이었다. 금 고문이 “(수사당국의) 괘심죄에 걸렸다고 밖에는 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인 이유다.

금 고문은 “국가보안법이 없어도 간첩죄나 내란·선동죄 등은 기존의 형법으로도 충분히 처벌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간첩과 북한 간첩을 따로 구분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국가보안법에서 (형법으로) 처벌할 수 없는 유일한 죄가 찬양·고무죄”라며 “개인의 주관적 생각과 표현을 검열하는 기제로 작용해왔던 대표적인 ‘악질 조항”이라고 덧붙였다. 국가보안법의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개폐 논란도 같은 이유에서다. 참여정부 시절 ’4대 개혁입법‘ 과제 중 하나였지만, 끝내 폐지가 좌절됐던 이유는 뭘까.

그는 “(당시 다수당이던)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의지가 없었다”고 풀이했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세상을 바꾸자’는 결연한 다짐들이 맴도는 지금은 어떨까. “당장 중요한 이슈로 떠오를 것 같지는 않다”는 게 금 고문의 판단이다. 순간 ‘정봉주법’을 제정하라며 목소리 높이던 야당 의원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정봉주 전 의원이야 워낙 인기인이니까…. (웃음) 표현의 자유 차원에선 같지만, 국가보안법은 훨씬 중요한 문제다.” 웃음 뒤에 새어 나온 그의 낮은 목소리가 무겁게 공기를 때렸다.

“박정근 씨가 나올 때까지 할 수 있는 건 다 할 생각”이라는 금 고문. 뜻을 모은 24개 단체는 지난 10일 ‘박정근 석방과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박정근 공대위)’를 결성했다. 사회당과 박 씨의 친구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후원회도 큰 힘이다. 웃음이 사라지고 헛웃음만 남은 시대,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농담같은 시대, 박정근 씨의 구속은 그래서 차라리 희극이다.

“농담의 자유를 보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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