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개혁 논의가 지나치게 협소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비판도 많다. 재벌의 소유구조를 바꾸는 게 ‘만능해법’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또 여타 중요한 쟁점들이 배제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대표적인 쟁점이다. 은행 등 금융자본은 그 첫 번째 대상으로 꼽힌다. 김성구 한신대(국제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위기의 주범이고 앞으로의 위기를 관리하는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게 은행”이라며 “은행을 어떻게 통제하느냐가 재벌개혁보다 더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강상구 진보신당 부대표는 “재벌의 소유구조를 바꾸는 건 중요하지만 그게 근본적인 건 아니”라며 “유럽이나 미국의 경제위기가 재벌 때문에 터진 거냐”고 되물었다. 투기의 장으로 기능하는 약탈적 금융을 민주적으로 통제하고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대체하는 다른 전망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재벌이 손보사나 증권사 등을 소유하고 직접 금융지배의 주체로 나서는 ‘한국적 특성’을 고려하면 재벌개혁과도 떼어놓을 수 없는 과제라는 지적이다.

모피아에 대한 견제도 중요한 과제로 지적된다. “우리는 민주노동당이 집권해도 적응할 수 있다”고 떵떵거리는 경제 부처의 ‘정통 관료’를 그대로 둔다면 재벌개혁도 쉽지 않을 거란 전망 때문이다.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은 한 신문 인터뷰에서 ‘재벌-(경제부처)고급관료-보수 언론’으로 이어지는 ‘3각 동맹’을 “정권이 바뀌어도 늠름히 버티는 불변의 지배 체제”라고 표현한 바 있다. 계열분리청구제 등 파격적인 재벌개혁 공약을 제시했던 노무현 정부나 ‘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 등의 개념을 채택했던 김대중 정부 모두 경제 관료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평가다. 이번에는 과연 다를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대목이다.

재벌개혁 논의에 노동이 소외되어 있다는 점은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민주통합당이 정리해고제도 개선과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원칙’ 등을, 통합진보당이 산별교섭을 제도화 하고 비정규직 비율을 25%까지 낮추겠다는 등의 노동정책을 내놓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재벌개혁 논의가 ‘주주자본주의’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한 ‘반쪽’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한지원 연구실장은 “20세기 초 미국에서 노동자들이 반독점법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오너’를 몰아냈지만 그 자리는 구조조정과 배당 전문가들(주주·CEO)이 차지했다”며 “재벌의 소유구조 개혁 이후 기업을 통제할 주체가 누구냐는 게 핵심”이라고 꼬집었다.

가계부채와 부동산 경기 연착륙 대책은 거의 배제되고 있는 쟁점이다. 900조 규모의 가계부채와 그 중 400조에 이르는 주택담보대출이 한국 경제를 뒤흔들 ‘뇌관’이라는 경고가 나오지만, 정치권은 전월세 상한제 도입 등 ‘변죽’만 울리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집값을 마냥 올리겠다고 할 수도 없고, 떨어뜨리겠다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일 것”이라며 “눈에 보이는 적(재벌)만 때려 잡는 형국”이라고 평가했다. 갈수록 가계부채의 ‘질’이 나빠지고 있고, 올해 들어 주택담보대출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는 심각하지만, 새누리당은 오히려 총부채상환비율(DTI)규제를 폐지해 대출을 늘려야 한다는 ‘대책 아닌 대책’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더 나아가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한 중견 경제부 기자는 “대기업을 억제한다고 새로운 성장 동력(산업)이 자동으로 생기는 건 아니”라며 “현재의 체제를 넘어서는 구상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계 경제의 잠재적 위험에 대한 대비책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금민 전 사회당 대표는 “우리 경제가 유로존 위기 등 세계 경제 침체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상황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예전에 그랬듯, 경기가 안좋다는 ‘위기론’이 퍼지면 언제든지 다시 재벌중심 경제로 돌아갈 위험이 높다는 우려도 나온다.

재벌개혁과 함께, 그리고 이를 뛰어넘어 논의해야 할 게 여전히 많다는 이야기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