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당명을 바꾸고 연일 쇄신 쇼를 벌려서 이제는 달라졌겠구나하고 새누리당 원내대표단을 통해서 여러 차례 간곡하게 호소도 하고 우리 의원님들이 개별적으로 새누리당 의원들께 당부 드려서 설마 했는데 당명만 바뀌었지 새누리당의 본질은 시대착오적인 냉전, 수구꼴통보수 세력들이라는 본성은 변함이 없다는 것이 오늘 투표 결과로 여실하게 드러났다.”

민주통합당 김진표 원내대표는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에서 조용환 헌법재판관 인준안 표결이 부결되자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한나라당(새누리당)에 강한 유감을 나타냈다. 야당 추천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여당이 국회의석의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부결시킨 사태, 특히 케케묵은 ‘색깔론’의 덫에 빠진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선택은 분명 짚고 넘어갈 대목이다.

한국일보는 <헌재 재판관 부결시킨 속 좁은 새누리당>이라는 사설에서 “무엇보다 새누리당의 협량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법 위반이나 도덕적 하자 등 중대 사유가 없는 한 야당의 결정을 존중해 선출에 협조하는 것이 관례요, 정치적 신의에도 맞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이름은 바꾸었지만, 능력과 자질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던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 인준 부결을 선택한 것은 이름만 바꿨지 여전히 ‘색깔론’의 마약에 푹 빠진 정당의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조용환 사태’와 관련해 언론의 제1 책임론은 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모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향신문은 <새누리당 실체 드러낸 조용환 재판관 부결>이라는 사설을 실었고, 한겨레는 <여전한 색깔론, 새누리당 뭐하러 당명 바꿨나>라는 사설을 내보냈다.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자충수 정치는 분명히 짚고 넘어갈 문제이지만, 그렇다고 민주통합당의 ‘부끄러운 현주소’를 가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012년 2월 9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 표결 과정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민주통합당이 앉아서 당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그 흔한 여야 충돌도 없었고 고함과 삿대질도 없었다. 부드럽게(?) 무기명 비밀투표가 진행됐고, 민주통합당 의원들은 투표를 마친 뒤 본회의장 의석에 앉아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 인준 부결’ 결과가 담긴 본회의장 전광판을 바라봐야 했다.

결과가 나온 뒤 탄성의 소리도 터져 나왔고, 미디어렙법 찬반 토론 과정에서 한나라당(새누리당) 행태를 성토하는 민주통합당 쪽 의원의 항의가 나오기도 했지만, 버스 떠난 뒤에 손을 흔드는 격이다.

민주통합당은 이번 ‘조용환 사태’와 관련해 너무나 무기력했다는 지적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모든 게 민주통합당 책임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국회의석 수의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2월 10일 현재 국회의석 현황을 보면 한나라당(새누리당) 174명, 민주통합당 89명이다.

민주통합당은 국회 전체 의원(297명) 과반 의석인 149석에 턱없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의 거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이론적으로는 한나라당은 하고 싶은 일은 다 할 수 있는 국회 본회의 의석 분포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민주통합당이 앉아서 당한 사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일까. 안정적 과반의석을 확보한 다수당이라고 해도 모든 것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야당의 협조를 구해야 할 문제가 있고 여론의 눈치도 봐야 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새누리당)이 여야 정치 소통보다는 ‘힘의 논리’를 앞세워 미디어법, 한미FTA 비준안 등 주요 현안을 강행처리한 정당이라고는 하지만, 민주통합당이 정말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 인준안을 처리하는 방법이 전혀 없었는지는 되물어볼 일이다.

야당의 발언권이 가장 세지는 시점은 새해 예산안 처리를 하는 연말 국회이다. 여당은 야당과 합의해 속에 예산안을 처리했다는 ‘모양’에 신경을 쓰기 마련이다. 여당 단독 강행처리는 예산안을 둘러싼 문제가 발생할 경우 책임도 모두 뒤집어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형님예산’ 논란 등이 바로 이런 경우이다.

김진표 원내지도부가 새해 예산안 처리 국면에서 얼마나 정치력을 발휘해 민주통합당 쪽의 바람을 반영했는지는 되돌아볼 일이다. 별다른 실익도 얻지 못한 채 끌려 다닌 것은 아닌지, 특히 조용환 후보자 인준도 해결하지 못한 채 지난해 연말 국회를 끝낸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는 얘기다.

이번에도 조용환 후보자 인준안을 앉아서 당하고 말았다. 김진표 원내대표의 정치력에 근본적인 의문이 든 사건이다. 이번 사건으로 ‘김진표 정치력’은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는 얘기다. 김진표 원내대표가 한나라당(새누리당) 책임론을 강하게 성토한다고 해도 여론이 얼마나 호응해줄지는 의문이다.

한나라당(새누리당)에 부정적인 시선이 이어지기는 하겠지만 이에 못지 않게 민주통합당, 특히 김진표 원내대표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도 이어지지 않겠는가. 이번 사건 이전에도 트위터 등을 중심으로 김진표 원내대표를 둘러싼 비판 여론은 심상치 않았다.

2010년 경기도지사 선거 과정에서 김진표 원내대표는 야권 단일화 경쟁에서 박빙의 승부 끝에 패한 일이 있다. 결과를 깨끗이 인정하고 당시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의 손을 들어줬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오랫동안 공을 들였던 경기도지사 자리를 선거를 코앞에 두고 유시민 대표에게 빼앗긴 심정이었겠지만, 결과에 승복하면서 훗날을 기약할 계기를 마련했다.

결국 김진표 원내대표는 2011년 5월 13일 민주당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김진표 원내대표 체제로 2012년 4월 총선을 준비하게 됐다는 얘기다. 총선이 끝나고 19대 국회가 시작될 때까지 김진표 원내대표는 원내사령탑으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김진표 원내대표는 정치력과 관련해 후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전임 박지원 원내대표가 탁월한 정치력으로 한나라당(새누리당)을 쩔쩔매도록 했다는 점에서 더욱 비교되는 대목이다.

민주당이 한미 FTA 강행처리 과정에서 탄탄한 방어태세를 마련했는지도 의문이다. 김진표 원내대표 정치력을 둘러싼 비판론은 일부 과한 점도 없지는 않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얘기다.

김진표 원내대표는 민주통합당의 한나라당(새누리당) 책임론에 여론의 시선이 냉랭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김진표 원내대표는 ‘한미FTA 사태’에 이어 ‘조용환 사태’까지 원내 사령탑으로서 가장 중요한 능력인 ‘정치력’ 부분에서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한나라당(새누리당) 책임론에 앞서 정말로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진표 원내대표 임기는 아직 남아 있다. 분명한 점은 김진표 원내대표는 정치력에 있어 심대한 상처를 입었다는 점이다. 야당이 김진표 원내대표 체제로 4월 총선 정국을 돌파할 수 있을지 근본적인 물음을 던질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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