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26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 나섰던 나경원 후보의 ‘1억 피부클리닉’ 의혹에 대해 경찰이 30일 ‘사실무근’이라는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다고 31일자 신문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보수신문들은 이를 선거철 흑색선전의 사례로 끌어 올리며 SNS를 주범으로 꼽고 나섰고, 조선일보는 이를 최초보도한 시사인을 지목했다. 시사인은 ‘경찰의 언론플레이’라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경찰은 “나 후보가 피부과 병원에서 쓴 돈은 550만원”이라며 나 후보가 지난해 2월부터 10월까지 모두 15차례에 걸쳐 진료를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30일 밝혔다. 경찰은 또 해당 피부클리닉의 연간 회원권이 1억 원이라는 보도도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최대 진료비가 회당 25만~30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경찰은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해당 피부클리닉에서 입수한 진료기록과 회계장부 등을 토대로 이 같은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시사인은 30일 오후 <“경찰이 나경원 선거 운동원인가”>라는 제목의 온라인 기사를 통해 “이는 시사IN이 취재한 내용과 다르다”며 “시사IN은 ‘연간 회비는 1억 원이다’라고 김 원장이 직접 확인해준 발언 녹취록을 갖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에 따르면, 당시 고객 신분으로 클리닉을 찾은 시사인의 20대 여기자에게 피부클리닉의 김아무개 원장은 “20대 여성에게는 반장만 받겠다. 반장은 1년에 5천만 원이다”라고 말했다. 시사인은 “상담 후 간호사도 20대 여기자에게 5천만 원이라고 관리 비용을 확인해 주면서 5천만 원을 준비해 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기사는 서울시장 선거를 엿새 앞둔 지난 10월20일에 출고됐다. 시사인은 “김 원장은 기자에게 다시 연락해 ‘병원이 문 닫을 정도로 시달리고 있다. 1억 원은 아니다’라고 부인했다”고 보도했다. 또 “이어 취재진이 김 원장을 다시 찾아가 만나 ‘나경원 후보에게 1억이 아니면 얼마를 받았느냐, 5천만 원 선인가?’라고 묻자 김 원장은 ‘3천만 원이 조금 안 되는 돈이다’라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시사인은 이를 근거로 경찰의 중간조사 결과가 “김 원장이 경찰 조사에서 번복한 진술을 토대로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시사인은 또 “경찰은 이 사건이 보도된 지 무려 45일이 흐른 지난해 11월30일에야 ㄷ클리닉을 찾아가 장부를 압수했다”며 “경찰 조사 발표 내용의 신뢰성과 공정성에 의심이 갈 수밖에 없는 대목”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나경원 전 후보가 4월 총선에서 서울 중구에 출마하겠다는 결심을 밝힌 지 이틀 만에 “뚜렷한 사유도 없이 중간에 언론플레이 형식으로 흘렸다”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실제로 경찰의 수사 발표 소식은 동아일보가 30일자 신문 1면에 ‘서울지방경찰청’을 인용해 “29일 밝혔다”고 단독보도하면서 알려졌다. 그러나 29일이나 30일, 경찰의 별도 공식 브리핑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루 뒤인 31일, 상당수 신문들은 이 소식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한겨레는 10면에서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를 인용해 이같은 내용을 전하며 시사인이 경찰 발표에 반박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향신문도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이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1억 피부숍’, 사실이 아니라는데…>라는 사설에서 “결론적으로 이 의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며 “선거운동에서 ‘SNS의 파괴력’을 보여준 대표적인 선례”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훨씬 ‘세게’ 치고 나갔다. 조선은 이날 10면에서 경찰의 발표 내용을 전한 뒤, “(시사인은) ‘연간 회비는 1억 원이라고 말한 병원장의 녹취록도 갖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경찰에 녹취록을 제출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이어 “시사인 취재 경위 등을 추가로 조사해 형사 처벌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경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추가 혐의가 있다는 듯한 여지를 남기기도 했다. 조선은 해당 기사에서 시사인 기자의 실명을 언급하는 한편, 이 과정에서 한 기자의 이름을 잘못 적는 ‘실수’도 저질렀다.

조선은 이날 사설에서도 한 단락을 할애해 시사인을 거론했다. 조선은 “시사인 기자가 사실을 사실대로 명확히 밝힌다는 자세로 취재했다면 나 후보의 피부클리닉 치료비가 550만원이었고 그것도 장애가 있는 딸의 치료비와 본인 치료비를 합친 액수였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사인 기자’를 지목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문제의 기자는 자신의 선입견을 기사화하는 데 편리한 대목까지만 알아보고 취재를 적당히 그만둔 건 아닌지 하는 의심마저 든다”는 대목에선 ‘훈계’의 목소리마저 들린다.

시사인 측은 “조선일보의 보도는 명백한 오보”라며 반박했다. 시사인 허은선 기자는 31일 밤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녹취록은 이미 제출했다”며 “녹취록을 증명하는 녹음파일을 가져오라고 처음 통보받은 게 지난 금요일이고, (경찰이 보내온) 출석 요구 날짜는 2월1일”이라고 말했다.

시사인 측은 이날 조선일보의 보도에 대해 공식 항의했고, 조선은 인터넷판 기사에서 ‘녹취록’을 ‘녹취 파일’로 수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오보를 인정한 셈이지만, 여전히 “녹취 파일을 제출하지 않았다”는 대목을 남겨둔 건 논란거리로 남는다. 시사인의 주장대로라면, 녹취파일 제출 기한은 2월1일까지이므로, 시사인 측이 고의로 증거(녹취 파일) 제출을 회피했다고 볼 여지는 없기 때문이다.

조선은 잘못 기재한 시사인 기자의 이름은 그대로 남겨두는 한편, 31일 밤 인터넷판 후속 기사에서는 시사인의 반박에 대한 경찰의 재반박 의견을 토대로 ‘경찰과 시사인의 진실공방’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또 앞선 기사의 제목 밑에는 “병원장 녹취록 있다던 시사인 끝까지 제출 안 해”는 부제목을 그대로 달아 놓았다.

허 기자는 “경찰이 (시사인이) 녹취록을 주지 않았다고 조선일보 기자에게 말했다면, 조선일보의 기자는 시사인 기자에게 (해당 사실을) 확인하고 실명이든 익명이든 보도를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허 기자는 또 “경찰이 만약 녹취록을 주지 않았다고 얘기했다면 그건 경찰도 문제”라며 “녹취록은 이미 냈다”고 거듭 경찰과 조선일보의 보도를 반박했다.

시사인 정희상 기자도 1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12월 중순 7시간 넘게 자진해서 경찰 조사에 충실히 응했다”며 “(조사 당일) 녹취록도 제출했다”고 밝혔다. 정 기자는 또 “경찰이 마치 의혹이 모두 해소된 것처럼 발표하고 언론들이 그대로 받아쓰고 있다”며 “(조선이) 기본적 사실도 틀려가면서 특정 언론과 기자의 실명을 거론했다”고 조선일보의 보도를 비판했다.

정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부터 법률 자문과 검토를 다 거쳤다”며 경찰과 언론이 사실을 왜곡한 채 ‘협동플레이’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언론에서 알려진 대로) 피부숍이 아니고 전문 피부과 클리닉”이라며 “유명 연예인들도 VIP 회원으로 등록되어 있는 특별한 병원”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정 기자는 또 “기획 취재 단계에서 나꼼수와 아무 상관없이 (자체적으로) 보도한 것”이라며 “(총·대선을 앞두고 나꼼수와 SNS 등에 대한) 족쇄 채우기의 의도가 다분히 깔려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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