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수경 기자
- 승인 2011.04.21 15:23
“내가 저 상황이었다면 나도 그들과 똑같은 눈물을 흘렀을 거에요.”
그만큼 공감이 갔단 얘기다. 그는 목소리가 잠겨있었다. 촬영테이프를 돌려보면서 담배를 무진장 폈던 탓이다. 담배에 손이 안 갈 수가 없었다고 했다. 19일날 방영된 문화방송 PD수첩 ‘우리는 살고 싶다 - 쌍용차 해고자 2년’을 연출한 이우환 PD를 만나 쌍용차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하루에 1,2시간씩 자고 최루액과 볼트공격에 시달리는 상태가 한 달 이상 지속됐으면 자율신경계가 다 무너졌을 것이에요. 그 뒤에도 계속 시달렸고요. 그렇다면 자살까지 이른 건 당연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서울 여의도 MBC 방송센터 3층 휴게공간에서 만난 이우환 PD는 정혜신 박사가 쌍용차 노동자와 가족들을 대상으로 하는 2차 정신상담에서 그들이 울고 절망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노동자들의 아내들에게 PD가 “어떻게 사세요?”라고 물으면 그들은 인터뷰 내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MBC PD수첩 화면 캡쳐 | ||
그들은 어떤 상태일까. 이 PD는 쌍용차 노동자들와 정상적인 의사소통을 하기는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들 대부분은 정신을 놓고 있는 경우가 많았고, 대화할 때 자기 생각만 계속 이야기하거나 손을 떨고 약속을 잘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대표적인 증상이다. “보통은 회사나 집, 친구들을 통해 사회성을 유지하는데 그들은 회사동료들나 사회와 단절된 채 오직 가족과 해고자 몇 명과만 교류해요. 사회성이 약해지는 거죠”.
쌍용차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은 그들의 아이들에게까지 이어졌다. 그는 “조합원의 4살짜리 아이가 심리치료를 받고 있어요. 전경버스가 생각나 아직 버스도 못 타고 쌍용차 정문엔 가기조차 싫어한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방송 마지막을 죽은 임아무개 조합원 아이들의 뒷모습을 비치며 ‘잘 살아라’라는 식으로 끝내고 싶었지만 가족들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고통스러워해서 만나지도 못했다고 이 PD는 안타까워했다.
PD 수첩이 그들의 상처만 지적했지 해고와 같은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다. 이 PD는 “분명 맞는 말이지만 나는 사회적으로 입은 상처를 사회화하고 싶었다”고 답했다.
“정혜신 박사도 논쟁보다는 그들의 아픔을 끄집어내달라고 했어요. 이는 쌍용차만의 아픔이 아니라 이 시대 노동자들의 아픔이기 때문에 그 아픔을 보여주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PD는 우리 사회가 경제제일주의에 매몰돼 노동자들의 죽음을 크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도 지적했다. 그는 언론에 대해 “카이스트의 죽음은 집중보도하면서 정작 쌍용차 14명의 죽음에는 침묵한다”며 “원래는 평택시민들이 파업에 우호적이었는데 언론이 ‘외부세력’, ‘경제가 죽는다’는 프레임을 설정한 뒤 여론이 바뀌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한 “MBC는 노동자와 사용자 모두의 관점에서 사안을 바라봐야 하지만 노동자들이 정말 위험한 상태에 처해있다면 이 기계적 균형을 꼭 지켜야 되느냐”며 본질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언론의 한계에 의문을 제기했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세상에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이 PD는 인터뷰가 끝날 무렵 이 같은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우리 아프다는 것 인정해달라’는 거, 그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