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 15일자 1면 상단 기사는 11살 아이가 기자에게 건넨 말로 시작한다.“기자 아저씨, 배가 너무 고파요.”이태권 기자가 취재차 편의점에 갔다가 만난 형빈이 목소리다. 편의점에서 자기와 친구가 먹을 냉동 스파게티와 포장 햄버거를 사려고 서울시 아동급식카드를 내밀었다가 한도 초과가 나오자 머쓱한 표정을 짓던 아이다. 이틀 뒤 편집국 사무실 자리로 전화를 걸어왔다.다음 대목에서 보도는 지난해 아동급식카드 이용 건수가 전년에 비해 5배 폭증했다는 데이터와 코로나19로 학교급식을 못 먹는 아이들이 편의점에서 간식으로 배 채우는 장면
‘사이버불링’(Cyber Bullying).온라인에서 특정인을 대상으로 집단·반복적으로 모욕, 따돌림, 협박하는 행위를 일컫는다.지난 1일자 주요 일간지 1면은 ‘북한 원전 건설’ 사건에 집중했다. 반면 한국일보는 다른 소식을 다뤘다. 혜린양(16)이 전아무개(18)군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A양을 비롯한 또래 친구들에게 온라인상에서 괴롭힘을 당했다는 소식이었다.“드러븐 걸레짝 같은 X아, XXX아. 페메(페이스북 메시지)보라고 죽이기 전에”, “죽여두댐? 뒤질래?”, “니XX 걸레인 거 소문 내주리?”, “혜린이가 걸레인 건 개팩트
첫 인터뷰이는 2018년 12월 인권운동가 이용수씨였다. 마지막은 지난해 9월 ‘소금꽃’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었다. 2년 간 만난 여성 100여명의 이야기는 88회 팟캐스트로 연재됐다. 이들의 음성이 지난달 20일 책으로 발간됐다. 오마이뉴스의 유지영(30) 기자, CBS의 박선영(33) PD가 펴낸 책 ‘말하는 몸’ 얘기다.팟캐스트 말하는 몸의 부제는 ‘내가 쓰는 헝거’다. 헝거는 말하는 몸의 시작이었다. 페미니스트 작가 록산 게이는 자전 수필집 헝거에서 자신이 어린 시절 겪은 폭력의 상처부터 여성의 몸을 둘러싼 왜
지난 1~3일 연속 방송한 KBS 1TV 다큐멘터리 ‘코로노믹스’는 코로나19 이후 ‘새 질서’를 다룬다. 전염병으로 드러난 새 질서는 길게 쭉 뻗은 전망 좋은 길이 아니다. 취약 계층이 결코 쉽게 넘을 수 없는 불안과 혼돈의 길이다. KBS 코로노믹스는 전 세계 팬데믹 속 누가 고통받고 있는지 분명하게 조명하며 코로나19 시대 국가·정부 역할이 무엇인지 차분히 전달한다.카메라는 전 세계 곳곳을 비춘다. 브라질 상파울루 최대 빈민촌 ‘빌라 프루덴치 파벨라’는 대부분 실업 상태다. 프랑스에서는 봉쇄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로 몸살을 앓
지난해 2월20일 청도대남병원 폐쇄 정신병동에서 국내 첫 코로나19 사망자가 발생했다. 언론은 A씨가 20년 이상 시설에서 지냈고, 만성 폐질환이 있었으며 몸무게가 42kg에 불과했다고 전했다. 해당 병동에 수용된 104명 중 102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됐고 총 7명이 숨졌다. 집단발병 소식과 첫 확진자 사망, 열악한 시설 수용 상황이 떠들썩하게 보도됐다. 코로나19로 인한 국내 사망자 중 치매·조현병 등 ‘정신질환자’ 비율이 40%에 이른다는 사실도 알려졌다.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정신장애인 중 나머지 95명은 치료를 마친
양부모에게 입양된 후 상습적 폭행을 당하고 지난해 10월13일 세상을 떠난 정인이(입양 전 이름)의 죽음에 공분이 크다. 지난 2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정인이가 사망하기 전날 어린이집 폐쇄회로(CCTV) 영상을 공개했다. 16개월 아기가 축져지고 무감각해 보이는 모습이 담겼다. 특히 정인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등에서 3번이나 학대 사실을 알렸으나 경찰이 사건을 무혐의 종결 처리한 점 때문에 논란이 커졌다. 당시 사건을 담당한 경찰관 중 일부가 징계를 받기도 했다. 앞서 SBS ‘놀라운 이야기 Y’ 등도 이 사건을 다뤄 널리
1년6개월.법원이 세계 최대 규모의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를 2년8개월 동안 운영한 손정우에게 선고한 형량이다. 너무 배가 고파 먹을 게 없어 지난 3월 새벽 경기도 수원의 한 고시원에서 구운 달걀 18개를 훔친 이씨에게 검찰이 구형한 형량이기도 하다.JTBC는 지난 7월1일 구운 달걀 18개를 훔친 40대 이씨에 대한 보도를 시작했다. 이날 검찰은 이씨에게 절도 전과가 있다며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했다.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을 보면 상습적으로 절도를 하면 징역형을 선고하도록 규정한다.국민 법 감정이 예사롭지
MBC 시사 프로그램 ‘스트레이트’가 지난 13일 네이버를 정조준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0월 검색 알고리즘을 조작해 자사 쇼핑 상품과 동영상 콘텐츠를 우선 노출한 네이버에 과징금 267억원을 부과했다.MBC 스트레이트는 이를 ‘더 깊게’ 다루면서 이어진 보도로 네이버 인공지능의 보수편향 뉴스 편집 경향성을 분석했다. ‘포털 뉴스의 보수매체 편중 현상은 여론 형성에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이다. “뉴스 편집은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이 한다”는 네이버 입장과 “인공지능 알고리즘도 결국 사람이 만드는 것”이라는 MB
25년 만에 피고인으로 다시 광주에 간 전두환씨의 범죄를 누구보다 꼼꼼히 전달한 건 ‘광주 기자들’이었다. 매 재판 취재는 물론 전씨가 법원에 출석한 날엔 눈을 부릅뜨고 포토라인에 대기했다. 그들에겐 시민들이 할 말을 질문으로 대신 묻고, 답변을 이끌어 낼 책임이 있었다.전씨가 내리는 승용차에서 법원 입구까진 불과 스무 발자국 거리. 전씨는 대통령 예우는 박탈됐지만 경호만 예외로 유지돼 항상 철통같은 경호원에 둘러싸였다. 기자들은 몸으로 부딪히고 크게 소리 지를 수밖에 없었다. 한 기자는 “광주시민들에게 사과하실 생각 없느냐”고 3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가 이동환 영광제일교회 목사에게 성소수자 축복기도를 했다는 이유로 지난달 15일 정직 2년을 선고했다. 이동환 목사는 지난해 8월 인천 퀴어문화축제에서 축복식 집례자로 나서 축복기도를 올리고 참가자들에게 꽃잎을 뿌렸다. 국내 기독교 교단이 목회자가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재판을 열어 징계한 최초 사례다.뉴스앤조이 다큐 영상 ‘축복 죄가 되다’ 제작진은 지난 23일 “이동환 목사 징계는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는 오히려 극우화돼 가는 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
13일 서울신문 1면에는 검은색 띠지가 둘러 있다. 1면 전체를 부고로 채운 ‘아무도 쓰지 않은 부고’ 기획은 서울신문 탐사기획부(부장 안동환, 기자 박재홍, 송수연, 고혜지, 이태권)가 올 1월부터 6월까지의 산업재해 1101건 가운데 148건의 야간노동에서 일어난 죽음에 대한 ‘부고 기사’다. 지면 기사와 함께 서울신문 웹제작부는 인터랙티브 기사 ‘달빛노동 리포트’를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야간 노동자들의 사망 기록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미디어오늘은 13일 안동환 서울신문 탐사기획부장을 인터뷰했다. 다음은 안 부장과의 1문1
“아빠가 엄마의 목을 조르는 걸 울면서 지켜보던 어린 시절을 지나, 이혼 후 매일 술에 취한 엄마는 술을 마시면 손에 잡히는 모든 걸로 소년을 때린다. 이 소년은 친구를 때린다. 쓰러진 친구 모습을 찍어 온라인에 올린다. 동네 형들과 밤새 술 먹고 차를 턴다.”(사례1)“서울에 사는 열다섯 예슬이는 친한 오빠들을 만나러 대구까지 택시를 타고 갔다. 택시비가 30만원이 넘게 나왔는데, 예슬이는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튀었다’. 예슬이는 오빠들과 같이 중고거래 사기를 치거나 ‘몇 번 자주면서’ 거리에서 생활했다.” (사례2)서울신문 기자
KBS 시사프로그램 ‘시사직격’이 지난 9일과 16일 두 차례 보도한 ‘메인드인 중앙지검’은 제목대로 검찰을 정조준한다. 2014년 이른바 ‘입법로비’ 사건 수사의 공정성을 도마 위에 올리고 기획 수사 의혹을 제기했다. 중앙지검이 주연이다. 과거 서울종합예술직업학교(서종예) 이사장으로 재직했던 김민성씨가 조연으로 발을 맞춘다.김씨는 2014년경 서종예 교비를 횡령했다는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그 과정에 서종예 명칭 변경과 관련 국회의원들에게 금품을 제공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신계륜, 신학용, 김재윤 등 의원들은 김씨에게 뇌물
“너만 힘드냐?” “그게 뭐가 힘들어?” “멀쩡해 보이는데” “먹고 살 걱정 없어서 그런 거야.” ‘우울증’이란 말에 따라 붙는 흔한 반응들이다. 우울증 환자들이 진단 사실을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기도 하다. 우울증은 내과·외과 질환과 같은 병이고 원인과 증상이 다양해 겉모습만 보고 획일적으로 단언할 수 없지만 사회적 편견은 여전히 강하다.그런 면에서 지난 15일 발간된 ‘나의 F코드 이야기’(출판사 심심)는 반가운 안내서다. F코드는 정신·행동 장애를 나타내는 질병분류기호다. 우울증에 걸린 한 30대 직장인이 병에 대한 사회적
시한부 선고를 받은 줄 알았던 ‘낙태죄’가 정부 입법예고로 돌아왔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4월11일 임신중단한 여성과 의료진에 처벌을 규정한 형법과 모자보건법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했다. 1년 반이 흘러 개정 시한인 2020년 12월31일이 다가오기까지 공론화 과정은 없다시피했다. 그러다 별안간 정부가 비공개로 낙태죄 관련 형법 개정 작업을 마무리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경향신문의 지난달 21일 보도 ‘“낙태죄 형법개정’ 5개 부처 장관회의…‘낙태죄 기준 임신 14주 논의’”를 통해서다.보도는 국무총리실이 9월23일 법무부·여성가족
“도망 나오기 한 보름 전에 김광석(중대장)이가 밤에 ‘선도실’로 불렀어요. 다른 언니들이 밤에 불려 나가면 밀감이나 사탕 같은 걸 얻어와요. 그거 얻어먹으려고 앞에 서 있었어요. 그게 성폭행인 줄 모르고 멍청한 것들이. 빵도 가져오고 초코파이도 가져오고 산도도 가져오고 그러니까. 멍청한 것들이 그 언니가 나가고 언제쯤 온단 시간에 거기 서 있는 거예요. 그거 얻어 처먹으려고. 난 지금 그게 너무너무... 그 언니들한테 너무너무 미안한 거예요.”형제복지원 피해자 박순이씨가 부산일보에 처음으로 자신이 당한 성폭행 이야기를 밝혔다. 여
“부정 입사자 은행권의 ‘정유라’를 정리해 주십시오.” 지난 11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게시된 간곡한 호소다. 2018년 은행권 채용 비리 사건으로 범죄 피해자가 된 취업 준비생들의 절절한 사연이 담겼다. 청원인은 “좋은 스펙도 ‘좋은 부모’ 앞에선 무용지물”이라며 “채용비리는 ‘하면 된다’는 믿음을 비웃고, 모든 노력을 가치 없게 만든다. 공정하지 못한 방식으로 채용된, 은행권의 부정 입사자들을 정리해달라”고 호소했다. 청원인은 은행 채용비리 부정 입사자 조사 및 징계 의무화와 채용비리 재발 방지를 위한 ‘채용비리 처벌특례법’ 제정
이번엔 농촌의 ‘산재 사각지대’다. 김지환 경향신문 기자가 지난 8일과 11일 보도한 “사각지대에 방치된 ‘농업인 재해’” 기획의 주제다. 매일 농업인 1명이 작업 중 재해로 사망한다고 추정되지만 이들은 산재보험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농업인 대부분이 자영농이지만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분류되지 않아’ 산업안전보건법 보호망에서 비켜나 있다.김 기자의 산재 사각지대 조명은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 5월엔 ‘바다 위 김용균’이란 화제를 꺼냈다. 산업안전보건법 보호 바깥의 어선원들이 대상이었다. 이들이 근무 중 사망하는 숫자만 매년 14
A씨는 가까운 사이인 B씨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 B씨의 일과와 움직임을 기록해두고, A씨 본인보다 더 잘 안다. B씨의 몇 달치 동선을 수분 단위로 그릴 정도다. 무서운 건 B씨가 이 사실을 모른다는 점이다. A씨는 자신이 B씨를 따라다니며 기록한 동선을 쌓아둬도 되는지 물은 적이 없다. A씨는 이렇게 얻은 정보를 기업에 넘기고 돈을 벌고 있다. B씨는 A씨가 이런 식으로 얼마를 벌어들이는지 알 길이 없는 것은 물론이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여기서 B씨는 현재 국내 이동통신사를 이용하는 모든 가입자에 해당한다. A씨는 국내 이동
“KBS는 이번 기획처럼 뼈 때리는 지적을 계속해야 한다.” 8월 KBS 시청자위원회에서 찬사를 받은 KBS 기획은 사회부 이슈팀 ‘일하다 죽지 않게’라는 연속 보도다. ‘일하다 죽지 않게’는 한국의 산재 사망 실태, 사고 유형과 업종, 원하청 비율, 죽음의 외주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위반 양형기준의 문제와 대기업 산재 은폐 의혹까지 산업재해를 전 방위적으로 다뤘다는 평을 받았다. 산재라는 의제를 꾸준히 제기하는 ‘어젠다 키핑’(agenda keeping) 보도였다. 지난 7월3일 “죽은 곳에서 또 죽는 일터는 어디?”라는 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