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류진 작가가 쓴 은 지금 출판계에서 가장 ‘핫’한 소설이다. 작가가 직접 겪은 회사생활의 애환이 고스란히 녹아있어서인지 웹사이트에 소설을 업로드한 당일 서버가 다운되고 직장인 사이에서 ‘하이퍼 리얼리즘 소설’로 입소문을 탈 만큼 반응이 폭발적이었다고 한다.소설을 잘 읽지 않지만 재밌다는 평을 많이 접해서 홀린 듯 책을 샀다. 일 자체에서 오는 환희와 환멸, 노동법과 동떨어진 일터에서 일어나는 웃기고도 슬픈 사건들, 상사의 부당한 대우를 개인 차원에서 기어코 이겨내고야 마는 ‘을’의 빼어난 생활력 등이 촘촘하고도
얼마 전 일이다. 합정역 근처에서 볼일을 마치고 겸사겸사 평소 가보고 싶었던 식당을 향해 걸어가던 중, 60대쯤으로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나를 붙잡았다. 손에는 전단지와 미용티슈가 담긴 쇼핑백을 들고, 오피스텔 분양 상담을 받아보라고, 5분이면 된다며 계속 말을 걸어왔다. 약속이 있어서 죄송하다 말하고 발걸음을 재촉하자 “약속이 몇 시야? 할머니 좀 도와줘” 하며 갑자기 팔을 붙잡는데, 순간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다. 당황해 얼굴을 붉히며 황급히 자리를 떠났는데 그로부터 100미터도 채 안 되어 같은 쇼핑백을 들고 있는 다른 할머니
‘무덤에서 요람까지’란 말이 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국가가 국민의 삶을 보장해준다는 의미이다. 이 유명한 말은 물론, 현재도 진행형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복지에 관한 개념이 여전히 시혜적이고 제한적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적어도 복지의 양적인 확장에 관한한 열성적인 것으로 보인다. 복지와 관련된 구호들은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정치인 사이에 경쟁후보자와 자신을 차별화할 수 있는 무기가 된다. 포퓰리즘에 그치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로 지방자치단체에서 복지제도들을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적어도 복지국가의 구색
예전에 식당에서 조리사로 일하던 노동자의 임금체불 사건을 수임한 적이 있다. 근로계약서에는 근로시간이 10시~22시라고 적혀 있었으나 아침 9시부터 출근을 시키던 사업장이었다. 오전에 1시간씩 일찍 출근한 부분에 대한 연장근로수당을 청구하던 건이었다. 그러나 출퇴근 기록부도 없고 근로시간을 입증할 만한 자료가 딱히 없었다. 노동청에서 사업주와 대질조사를 하였다. 노동자가 ‘아침 9시부터 출근을 하도록 지시했다’ 고 진술하자 사업주는 ‘증거 있어요?’ 라고 반문하였다. 그래서 ‘9시부터 일 시킨 적이 전혀 없으세요?’라고 묻자 ‘증거
요새 핫한 말 중 하나는 ‘플랫폼 노동’이다. 플랫폼 노동은 SNS, 앱 등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노동을 의미한다. 4차 산업혁명, 공유경제 등 새로운 시대의 용어들과 함께 소비자와 노동자를 매개하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 현실을 이름짓는 말이다. 우버택시부터 카카오 카풀, 요기요, 타다 등이 대표 사례다. 플랫폼을 매개로 플랫폼 업체에게 일정한 수수료를 제하고 직접 소비자로부터 서비스 대가를 받는 형태의 플랫폼 노동자는 현행법으로는 이른바 ‘특수형태근로자(특고)’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다. 사실 특고는 학습지교사, 보험
해고상담을 할 때나, 또는 부당한 해고에 법적인 구제절차를 함께 할 때는 매번 많은 부담을 느꼈다. 법이 금지하는 해고의 기준은 추상적인 반면에 해고사유는 다양하고 맥락의존적이어서 같은 행위라도 다르게 판단될 수 있다. 한편 해고는 노동자의 삶에 너무 큰 영향을 준다. 생계를 위협하고 생계불안은 삶의 다른 영역으로 쉽게 퍼진다. 경제적 어려움도 문제지만, 조직에서 배척당했다는 슬픔과 분노로 인한 마음의 상처도 더 큰 문제가 된다. 노동자가 절박하면 할수록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상황은 악화돼, 지옥에 사는 것과 비슷해진다. 그래
서랍 속에 사직서 하나씩 품고 사는게 회사원이라지만 요즘처럼 퇴사가 트렌드가 된 적이 있나 싶다. TV와 서점가판, 유튜브에 퇴사 콘텐츠가 넘쳐난다. 그야말로 ‘퇴사 전성시대’다. 쿨하게 퇴사하고 블로그에 연재한 세계여행기가 책이 되거나, 도시를 떠나 게스트하우스나 서점을 여는 사람들의 삶이 연일 미디어를 장식한다. 파워블로거나 인플루언서들의 억소리나는 수익과 성공신화도 빠지면 섭섭하다. 최근에는 무작정 퇴사 할 수는 없으니 퇴사를 배워야 한다는 ‘퇴사학교’까지 등장하더니 한순간 다 때려칠 수는 없으니 있는 자리에서 의미를 찾아보자
졸업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고등학교 2학년 문학 시간을 선명히 기억한다. 다른 반이 복잡한 문장을 독해하고 작가 이름을 외울 때, 우리 반은 문학 선생님이 선별한 도서목록에서 책을 골라 읽고 함께 감상을 발표하거나 모둠을 이뤄 토론했다. 그 중 특별했던 수업은 보수·진보 일간지 사설을 비교하며 읽는 것이었다. 한 이슈를 각 언론사가 어떻게 바라보는지 분석하며 각자 생각과 느낌을 이야기했다. 보수와 진보가 뭔지도 모르던 내가 봐도 보수 일간지 사설은 가진 자들에게 노골적으로 편파적인 논조였다. 그날 수업을 마치고 화가 나 해당 언
벌써 5년째 서울노동권익센터는 일하는 서울시민을 위한 노동상담을 해왔다. 일하는 사람들이 갖는 궁금증은 가지각색이지만 매일 상담하다보면 시기별로 문의 주제나 이슈가 있다. 연말에는 계약기간 만료나 갱신기대권, 퇴직금 상담이 많고, 연초에는 미사용 연차수당 문의가 노·사 양측에서 밀려온다. 법 개정 때면 그 내용 문의도 많은데 7월16일 직장내괴롭힘법(근로기준법 개정) 시행에 따라 일터괴롭힘 문의가 많아졌다. 상담에서 끝나지 않고 권리구제지원까지 이어지는 사건도 종종 경향성이 있다. 올해는 유독 인사발령, 그 중에서도 ‘전보’ 사건이
지난 16일 직장내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됐다. 직장내괴롭힘은 가해자가 직장 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기에 본질적으로 권력 작용이다. 권력이 무엇이고 어떠한 속성을 가졌기에 법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는가 이야기해 보자. 권력은 인간이 집단을 이루어 살면서 출현했다. 권력의 정의항은 다양하지만 본질은 ‘내 생각을 타인에게 관철시키는 힘’이라 볼 수 있다. 권력은 권력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상대방에 대한 배타적 지배력을 끊임없이 갈구한다. 그러나 독점 권력 내지 배타적 권력은 계속 성공하기 어렵다. 권력의 성공여부는 역설적으로 상대방의 동의를
유독 어려운 노동상담이 있다. 바로 직장 내 괴롭힘 상담이다. 서울노동권익센터에도 상사나 동료에게 괴롭힘 당한다는 전화가 자주 온다. 사소한 갈등을 계기로, 사직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인센티브나 연차 같은 자기 권리를 주장했다는 이유로 괴롭힘이 시작된다. 괴롭힘의 대상이 된 노동자는 폭언, 업무배제, 불합리한 업무지시, 물건을 집어던지기까지 하는 공포 분위기,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 상황에 직면해 있다. 출구 없는 괴롭힘에 우울증과 공황장애 같은 정신질환을 호소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퇴사를 결정하기도 쉽지 않다. 50~60대 중장년
매년 이맘때 쯤이면 서울노동권익센터는 전년도 상담과 권리구제 사례를 정리하고 분석하는 노동상담 사례집 발간 작업이 한창이다. 한 해 마무리하고 바로 발간하면 좋지만, 서울시 민간위탁기관의 성격상 예산 승인도 받아야 하고, 업무가 밀리기도 하다보니 이즈음이 되는 것이 보통이다. 올해도 2018년도 상담과 권리구제 결과를 정리하는데, 눈에 띄게 권리구제 승인율이 낮아졌다. 노동위원회는 주로 노동자들이 정당한 이유없이 해고됐을 때 구제신청을 하러 찾아가는 곳이다. 부당해고만이 아니라 부당한 징계나 인사처분도 구제신청 할 수 있다. 승인율
권위있는 국제 영화제가 최고상을 주었다는 이유로 극장에 가기를 몹시 귀찮아함에도 개봉 첫날 영화를 봤다. 빈부격차, 양극화를 다뤘지만 재미있다고 하고, 외국의 관객들도 많이 웃었다고 하니 웃을 준비를 하고 앉았지만, 영화 내내 웃을 수 없었다. 영화 속 빈자의 삶이 남의 일이 아니었고, 부자에게 기생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죽이는 모습이 너무 어리석어서 답답했다. 또, 자신의 노동을 팔고 그 대가를 받는 취업(근로계약)이 기생으로 표현되는 것도 불편했는데 그게 설득력이 있다는 게 더 찜찜하기도 했다. 이 영화에 대해 많은 이들의 많
12시, 고민이 깊어지는 시간. 점심 해결할 장소를 찾을 시간이다. 회색빛 건물에서 시내로 쏟아져 나오는 직장인 무리에 섞여 새로 생긴 음식점들을 탐색한다. 신통방통한 맛일 거라, 막연한 기대감을 품고 입장한다. 상냥한 종업원 대신 세로로 긴 가판대가 일행을 맞이해준다. 세로로 긴 가판대 이름은 바로 ‘키오스크’다.음식이 나오는 동안 키오스크의 효율성을 생각해 본다. 키오스크는 ‘당연히’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다. 따라서 최저임금을 줄 필요도 없고 휴게시간도 필요 없다. 사장님은 아르바이트생 무단결근과 퇴사통보 걱정에서 해방된다
권익센터도 개소한지 5년이 넘다보니 어느새 단골고객이 꽤나 생겼다. 센터를 찾는 이들 중 상당수는 일터에서 겪는 다양한 어려움을 센터에 털어놓고 만능 해답을 얻어가길 기대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노동상담이나 법률지원만으로는 슈퍼맨처럼 짠하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부당한 해고는 법으로 금지돼 있지만 해고되기 전에는 법으로 취할 방법이 없고, 직장 상사의 괴롭힘은 악질적이지만 처벌할 마땅한 법적 수단이 없다. 법은 언제나 최소한의 기준만을 정하고 있고, 상당부분 해석을 통해 판단되기 때문에 비슷한 상황에 처한 ...
앞으로 근로자는 입사 면접을 볼 때 이런 질문을 해야 할 것 같다. ‘혹시 여기서 일하는 사람은 몇 명인가요?’ 근로자 수 5인 미만 사업장(이하 ‘5인 미만 사업장’ 이라한다.)이라면 사업주는 근로자가 연장근로를 해도, 야간근로를 해도, 휴일근로를 해도 50%의 가산임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 연차휴가도 안줘도 된다. 부당해고를 당해도 부당해고구제신청을 할 수 없다. 그 외에도 누리지 못하는 권리가 더 있지만 생략하겠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해고를 당하는 경우 그나마 해고예고 규정으로 보호 받아왔다. 해고예고...
누군가 꿈꾸었듯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해 통일적으로 움직인다면 노동자들은 가히 세상을 바꿀 혁명적 힘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경계도, 경쟁과 차별이라는 이름의 분절화 전략도 노동자들은 연대의 힘으로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그 와중에 대한민국 노조조직률은 10%를 겨우 넘는다. 10명 중 1명이 노조원이고, 그나마도 기업별 노조가 대다수인 한국사회에서의 노동3권 보장이 결사의 자유에 관한 87조 협약, 단결권 단체교섭권을 보장하는 98조 협약 등의 ILO 핵심협약 비준을 하니 마니 논쟁하는 정도밖에 ...
경사노위에서 탄력근로시간제 대상기간을 6개월로 늘리기로 한 뒤 이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다. 다양한 의견이 분출돼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할 필요는 없을 듯하고, 탄력근로시간제를 포함해 노동시간제도에 평소 필자가 가졌던 고민을 풀어보고자 한다. 몇 시간 일하고, 얼마 받을지는 근로계약에서 근간을 이루는 내용이다. 아무리 많은 시간을 일해도 1일 24시간, 주 7일을 넘는 건 불가하고, 인간 존엄성을 고려하면 적정 노동시간을 일하고 적정한 임금을 받는 문제는 노동법에서 가장 핵심일 수밖에 없다. 1886년 메이데이 때 노동자들 요구가...
최저임금 8350원이 적용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모든 노동자가 임금상승 효과를 본 것은 아니다. 서울노동권익센터를 찾는 이들의 대다수는 최저임금선에 가장 가까이 서 있는 노동자인데, 연말이 되면 다음 해 최저임금 상승을 이유로 해고될 까 전전긍긍하고, 연초가 되면 남들 다 오른 임금 나만 안 올랐다며 답답해한다. 흔히 취약계층 노동자라 통칭되는 이들의 공통점은 장시간·저임금의 고령자라는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바로 휴게시간이 참 길다는 점이다. 하루 24시간 경비초소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비노동자부터...
‘손님’은 대부분 반가운 존재다. 그러나 ‘객 신세’라는 말이 있는 걸 보면 한편으론 서러운 처지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노동법에도 ‘손님’이 있다. 바로 객공(客工)이다. 객공은 기본급 없이 만든 수량에 따라 보수를 받는 개수제를 적용받고 생산에 필요한 원재료와 시설을 사용자로부터 제공받는다는 특징이 있다. 역사적으론 상업길드가 출현한 10세기 가내수공업을 기원으로 하고, 자본적 시설을 갖춘 제조공장이 출현하면서 현재 모습과 유사한 임금노동형태가 나타났다. 우리에겐 일제강점기 근대화와 함께 출현한 제화공이 대표적 객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