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제균은 세상만사를 스펙터클과 코미디로 버무려 신파로 마무리하는 영상 상품으로 만드는데 뛰어난 감독이다. 첫 영화인 에서 청소년들의 세계를 교육계의 비리와 조직폭력이 경합하는 학원폭력물로 만들며 코믹과 액션의 마무리를 신파로 장식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에서는 젊은이들의 사랑과 가난을 성적인 스펙터클로 만들
이토록 크리스마스 시즌에 딱 맞는 영화가 있을까?김재환 감독의 .< 트루맛쇼 > 로 대중이 미디어를 통해 비쳐지는 이미지에 얼마나 쉽게 현혹되는지, 그리고 그런 대중을 미디어는 얼마나 쉽게 조작하는지를 까발리고, 에서는 17대 대선 당시의 선거 캠페인을 통해 대통령 출마 후보들과 유권자 모두 당시 당
세밑 찬바람 부는 날, 오랜만에 전화 연락을 해 온 지인이 안부인사고 뭐고 다 건너뛰고는 다짜고짜 물었다.“ 관객 백만은 들 것 같아?”픽 웃으며 대답했다.“무슨 소리야? 3백만은 충분히 넘을 걸? 그 강이 그렇게 작지 않아요.”그러자 그 지인은 다시 물었다.“그
한국영화사에는 제목과 내용은 전해지지만 필름이 유실되어 볼 수 없는 작품들이 꽤 많다. 일제강점기 시대 조선영화의 예술성과 배우의 스타성을 아우른 (1926년, 나운규 감독 겸 주연)이 그렇고, 배우 탕웨이와 감독 김태용의 오작교가 된 리메이크 영화의 원작 (1966년, 이만희 감독)가 그렇고, 한국흑백영화 사상 최고의
플로라 라우 감독의 는 한 자녀 정책 때문에 둘째를 낳는 것이 불법이 되는 이웃 나라 중국에서 본토에서 홍콩으로 만삭의 아내를 몰래 데려가기 위해 법과 영토의 경계를 넘는 젊은 부부 이야기가 한 축을 이루는 영화다.영화의 한자 제목 ‘과계(過界)’는 ‘경계를 넘는다’는 뜻이다. 홍콩의 신인 감독
1999년 이전에 21세기는 세상의 종말로 예언되던 시기이기도 하고, 무시무시한 묵시록적 재앙을 겪어낸 후에 새로운 천년 왕국이 도래 하리라던 시기이기도 하고, 과학 기술의 무한한 진보로 인류가 우주 식민의 시대를 열게 되리라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렇게 컴퓨터로 원고를 쓰는 것이 일반화된 세상에서 밀레니엄 버그가 몰고 올 문명의 혼란에 대해 전 지구
한 영화제에서 급하게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마침 부지영 감독이 를 제작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 영화제는 여성 영화인이 만든 영화, 그 중에서도 여성적 시선으로 카메라를 겨누는 영화, 그런 영화들을 통해 세상이 좀 더 나아지도록 만들 수 있는 영화들을 위한 자리였고, 는 그런 조건에 더할 나위
채집과 수렵, 그러니까 눈에 띄는 대로 동물은 잡아먹고, 식물은 거둬먹으며 살았다던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던 인류가 정착을 통해 뿌리를 내리면서 문명을 일구었다고 한다. 정착을 위해 전쟁을 하고, 전쟁을 통해 정복을 하고, 정복의 대가로 점령을 하고, 점령을 유지하기 위해 억압과 착취를 하고, 억압과 착취를 피하기 위해 이주를 하는 것, 인류의 역사는 이렇게
서태지의 ‘소격동’은 음악만으로가 아니라 뮤직비디오까지, 그것도 아이유가 부르는 버전과 서태지가 부르는 버전을 같이 보면서 들을 때 더 많이, 더 깊이 느껴지도록 세심하게 짜여진 곡이다. 거기에다 ‘크리스말로윈’까지. 이 두 곡의 뮤직비디오는 모두 ‘실종’에 대한 영상 텍스트이다. 첫사랑, 할
어딘가 훌쩍 떠나 둘러보고 오는 여행이든, 일 때문에 다녀와야 하는 출장이든, 삶의 터전을 아예 다른 고장으로 옮기는 이주든, 살다보면 이래저래 오고 갈 일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렇게 오고가는 길목이 도시가 되었고, 도시에서도 특히나 드나드는 사람 많은 곳에는 역이니, 터미널이니, 항구니, 공항이니 하는 시설들이 들어서게 된다. 그렇게 사람들 몰리는 주변에
지금의 한국사회를 아찔한 속도로 작동되는 긴급하고도 위험한 상태인 비상사태로 보고, 아이돌 중심의 케이팝이나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가 이끄는 문화 상품인 ‘한류’는 이런 조건에서 만들어진 ‘판타지 상태’의 자장에서 나왔다면, 그 영화에서 무엇을 읽어내야 할지를 섬세하고도 섬찟하게 짚어낸 평론집
1996년 4월 28일은 내 기억에 굉장히 무더운 날이었다. 4월임에도 불구하고 한여름처럼 굉장히 무더웠던 것 같다. 일 년 전 대구 상인동 가스폭발 사고 이후로 지내온 시간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진 땅 같은 하루하루가 계속되었다. 세상을 떠난 두 친구의 부모님은 소리 없이 동네를 떠났다.사람들과의 대화가 줄었고, 모든 일에 의욕이 생기지 않아 한
4월 16일로부터 175일 째 되는 10월 7일 오전, 나는 광화문 단식 농성장 천막에 앉아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가 실린 조간신문을 보고 있었다. 세월호 수사 결과 발표에 대해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그 빈약한 수사 내용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을 비수처럼 찌르는 대목이 하나 있었다.결코 새로운 뉴스는 아니었지만, 내막이 그러려니 짐작하던 그대로가 검찰
사실 예견된 문제였다.19회를 맞는 국제규모의 행사, 처음 시작할 때의 기대와 우려를 딛고 아이가 자라 성인이 되듯 규모며 내용이며 행사 참여자가 점점 더 늘어나 아시아 최대 규모로 커 온 행사, 부산국제영화제.처음 부산국제영화제가 닻을 올리던 때, 과연 해외에서 이 영화제를 찾아올 게스트가 꾸준히 늘어날지 염려스러웠다. 영화란 그저 ‘가시나&r
영화인인 저는 27살입니다. 어떻게 보면 어리다 할 수 있겠고, 좋게 말하자면 젊다고도, 좀 비틀어서는 그 나이면 이제 좀 알 만하겠다고 여겨질 수도 있겠습니다. 글쎄요, 상대적이겠죠.저는 결혼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아이도 낳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유가족을 이해한다는 말은 거짓일 것입니다. 공감한다고 아무리 생각한들 단 1%도 못 미칠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이들과 함께 우십시오.(로마서 12장 15절)느닷없이 이 성경구절이 떠오르는 것은 내가 특별한 신앙인이어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어느덧 익숙해진 광화문광장에서의 시간이 던져준 화두여서는 더욱 더 아니다. 다만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질 수밖에 없는 마음, 人之常情의 상념에 빠져 이리저리 뒤척이다 새벽녘에 생각난 글귀다.그들도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로 시작하는 소월의 시 은 굳이 입시교육 때문이 아니더라도 한국인이면 누구나 외우는 시로 첫손 꼽힌다.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려 줄 테니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라니, 얼핏 떠난다는 사람에 대해 참 속없이 애틋도 하
노란리본을 소일삼아 천막을 지키는 동안 지나는 ‘어떤’ 이들을 마주칩니다.억울한 게 많다며 알리고 싶다는 어떤 성형 여인, 쯧쯧쯧 혀를 차며 지나가는 할아버지, 단식하는 동안 유일한 음식인 물을 그냥 집어가는 어떤 할아버지, 10대 아들 손을 잡고 수고 많다며 천막마다 인사를 하고 다니시는 어떤 아버지, 수원부터 걸어왔노라는 노란 티셔
광장은 햇살로 가득했습니다.각 종교단체와 민간단체에서 자원해서 나온 봉사단원들은 행인들의 발걸음을 잠시라도 늦추고자 호소하였습니다. 막사 안 단체장들의 단식 투쟁은 벌써 25~30일을 넘어섰고, 그들은 스쳐가는 행인의 슬픔조각을 받아먹으며 허기진 배를 달래는 듯 했습니다.세종대왕 동상 너머 뵈는 푸른 지붕은 한창 숨바꼭질에 심취하는 중입니다.‘너
특별한 것은 없었습니다.좋은 체험이었습니다. 잠들기 전의 공복이 좀 힘들었고, 아침 되니까 괜찮았는데..... 좀 있으면 밥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더 배고파지는 정도였습니다.단식에 참가하는 것,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었습니다. '의지'는 있어도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