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매체 프레시안이 정봉주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피해자 인터뷰를 보도한 후 양측의 진실 공방은 법적 고소로까지 이어졌다.
프레시안 측은 “보도의 본질은 정치인 정봉주와의 ‘진실 공방’이 아니라, 그에게 당했던 악몽을 7년 만에 세상에 토해낸 피해자의 외침이 사실로 입증돼 가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 전 의원 측이 피해자의 주장을 사실로 인정하지 않고 계속해서 반박 자료를 내면서 프레시안이 보도한 피해자와 목격자들의 증언이 사실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팩트’ 싸움은 피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아직까지 ‘진실’이라고 단정할 만한 확증은 양측 어디에도 없다. 7년 전에 일어난 일을 어렵게 고발한 미투 피해자에게 ‘확실한 증거를 대라’는 것은 피해자의 고통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요구이고, 정 전 의원 측 역시 무고함을 증명할 ‘알리바이’ 증거를 충분히 갖고 있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 사진은 이날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를 녹음하기 직전 서울 마포구 스튜디오에 모인 정 전 의원을 비롯한 나꼼수 멤버들이 촬영된 것으로, 변호인단은 사진 안에 촬영된 휴대폰 대기화면을 통해 해당 사진이 촬영된 시각이 오전 11시54분임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사진은 민국파씨(‘정봉주와 미래권력들’ 전 카페지기)가 정 전 의원이 이날 여의도 렉싱턴 호텔에 갔다고 기억하는 오후 1~2시경 찍은 사진이 아니기에 ‘정 전 의원이 렉싱턴 호텔에 가지 않았다’는 알리바이의 핵심 증거가 되기엔 여전히 부족하다.
지금까지 정 전 의원 측과 피해자 A씨, 그리고 민국파씨가 서로 인정한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이날 정 전 의원의 동선을 추정하면 아래와 같은 정도다.
-정 전 의원은 이날 오전 서울 합정동 인근에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인들과 함께 있었다.
-정 전 의원은 변호사들과 대책 회의를 하고, 점심을 먹다가 모친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 노원구 하계동에 있는 을지병원으로 이동해 오후 1시 전후에 병원에 도착했다.
-정 전 의원은 이날 오후 2시52분 전에 서울 홍익대 인근에서 명진스님을 만났고, 이후 나꼼수 멤버들과 함께 저녁 시간까지 함께 있었다.
만약에 프레시안과 피해자 측에서 주장하는 정 전 의원과 서울 여의도 렉싱턴 호텔 카페에서 만나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다면, 정 전 의원이 을지병원에서 홍대 방향으로 이동하는 중간 시점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민국파씨는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정 전 의원의 어머니가 계신 을지병원에서 다시 민변 사람들을 만나러 합정동으로 복귀하던 길에 정 전 의원이 ‘여의도 렉싱턴 호텔에 약속이 있으니까 가야 한다’고 해서 갔다”며 “도착한 시간은 1~2시경”이라고 기억했다.
정 전 의원은 나꼼수 녹음과 관련해 “22일 밤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나꼼수’ 방송을 녹음하고 멤버들과 함께 식사하고 헤어졌다”고만 밝힌 것을 보면 나꼼수 녹음은 22일부터 23일에 걸쳐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정 전 의원이 23일 저녁까지 나꼼수 멤버들과 녹음 스튜디오 등에서 함께 있었으므로 녹음 시간은 일정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한편 이미 정 전 의원 측이 프레시안 측을 검찰에 고소한 상황에서 양측이 논란을 매듭지을 만한 증거나 기사를 내놓지 못하고 소모적인 논란만 가중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프레시안 보도는 나를 서울시장에 당선되지 못하게 하려고 기획된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정 전 의원 측 주장은 무리가 있지만, 언론사가 정 전 의원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고소하는 것도 적절하지 못한 대응이었다는 비판이다.
진중권 동양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는 17일 프레시안에 보낸 기고문에서 “정 전 의원의 주장이 진실성을 인정받으려면 △1시에서 2시 52분 사이에 렉싱턴 호텔이 아닌 곳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를 제시해야 하며 △프레시안 측이 정봉주의 서울시장 출마를 저지함으로써 획득할 이익이 무엇인지 설명해야 한다”며 “이 두 가지만 이루어지면 ‘여론도 결백을 확신하고 있다’고 억지로 바람 잡지 않아도 사회의 대다수 성원이 자연스레 그의 주장을 진실로 인정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정주식 직썰 편집장은 “프레시안의 여러 패착 중 가장 안타까운 모습은 정봉주에게 ‘인정 안 하면 더 깐다?’며 기사로 밀당을 하는 모습”이라며 “프레시안이 정말 제보자를 향한 2차 가해를 걱정한다면 그런 밀당을 하지 말고 빠르게 논란을 매듭지어야 한다. 본인들 말처럼 그러는 사이 제보자는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