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줄기같은 국정원 선거개입 적폐

지난 이명박 정부 시절 확대·개편된 국가정보원 민간인 댓글부대의 불법 정치·선거 개입 활동 기록이 연일 터져 나오고 있다.

이에 모든 주요 일간지는 민간인을 동원한 국정원의 정치개입 행위에 대해 강하게 질타했다. 다만 일부 보수 신문은 국정원 댓글부대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면서도 전 정권에 대한 정치보복으로 흘러선 안 된다는 ‘프레임’을 제시했다. 이는 보수야당에서도 펴고 있는 주장이다.

현 정부 들어 출범한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에서 국정원이 2009년 5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민간인으로 30개 팀을 운영하며 인건비로 한 달에 2억5000만~3억 원을 지급한 사실을 확인한 데 이어, 민간인 댓글팀원에게 1인당 적게는 5만 원에서 100만 원까지 성과급식으로 지급한 것으로 밝혀졌다.

4일 국정원 적폐TF에 따르면 국정원은 민간인 여론조작팀인 ‘사이버외곽팀’의 팀원이 포털사이트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여론 조작을 위한 댓글을 달면 민간인 팀장을 통해 보상금을 지급했다. TF 관계자는 “댓글을 많이 달면 많이 주고, 적게 달면 적게 주는 성과급식이었다”고 전했다.

TF 관계자는 “일각에선 사이버 외곽팀에 소속된 민간인 수가 3500여명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은 아이디 개수가 잘못 알려진 것”이라며 “다만 팀 규모가 30개나 된다는 건 사이버외곽팀이 상당히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활동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한국일보] 국정원, 댓글 많이 달면 100만원대 성과급 줬다_종합 01면_20170805.jpg
한국일보는 “검찰이 본격 재수사에 착수하면 대선 개입에 가담하고도 사법처리를 피해갔던 국정원 직원 상당수가 재수사를 받을 가능성이 점쳐진다”며 “또 30명에 달하는 당시 민간인 팀장에 대한 소환조사도 불가피해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국일보는 “다만 이들이 형사처벌을 받을지는 미지수다. 공직선거법을 적용할 경우 공소시효가 선거일로부터 6개월이기 때문에 기소할 수 없다”면서 “국정원법을 적용한다면 공소시효가 올해 12월까지로 범죄사실을 입증하기까지 시간이 촉박하다. 검찰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밝혔다.

‘여론조작 몸통’ MB 향하는 칼끝

2012년 18대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원세훈 국정원장 시절 광범위하고 대대적인 국정원의 민간인 댓글부대 활동이 드러난 만큼 이제 사정당국의 칼끝은 이명박 정부를 향하고 있다.

그러자 정치권도 ‘적폐청산’ 요구와 함께 ‘정치보복’이란 주장이 정치적 입장에 따라 충돌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정의당은 국정원 중간조사 결과가 빙산의 일각이라며 ‘MB(이명박) 청산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반면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정치보복은 안 된다’면서도 사태 추이를 숨죽이며 지켜보는 모양새다.

경향신문은 “이 전 대통령 측은 ‘과거 들추기’로 깎아내리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며 “향후 검찰 수사에서 구체적 정황이 추가로 드러날 경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이어 제2의 국정농단 사태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서울신문] 국정원TF “댓글 추가 조사 후 고발”… MB 향하는 칼끝_종합 03면_20170805.jpg
서울신문은 “검찰의 칼끝이 어디까지 겨눌 것인지도 관심이다. 현재 국정원 여론조작의 책임자는 원 전 원장이지만 결국 이 전 대통령이 목표가 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꼼꼼하고 주도면밀한 이 전 대통령의 성격과 행동을 감안하면 수사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힘을 얻고 있다”고 분석했다.

적폐청산 TF는 검찰수사 등을 고려해 결과가 나오는 대로 추가 발표를 해 위법성이 드러나면 검찰에 고발한다는 방침이다. 정해구 국정원 개혁위원장은 “어제 발표는 댓글 사건에 대한 중간 발표였고 그중 일부분만 발표한 것”이라며 “댓글 사건은 앞으로 계속 더 조사를 해 밝혀지는 대로 발표를 해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박근혜 국정원’도 사정권에 벗어날 수 없다

경향신문은 이명박 정권 시절 국정원 민간인 댓글부대 3500여 명을 운영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들이 박근혜 정부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국정원에서 활동비를 받으며 2012년 총선·대선 국면에서 활동한 민간인 댓글부대가 해산했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며 “오히려 이들이 2014년 세월호 참사와 2016년 총선을 거쳐 지난 대선까지 지속적으로 여론조작을 시도한 흔적들이 발견된 바 있다”고 지적했다.

[한겨레] 검 ‘정치 댓글’ 재수사 불가피…‘박근혜 국정원’도 사정권_정치 05면_20170805.jpg
지난해 7월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보수단체 애국시민연합 사이버감시단장 김상진씨(49)가 다수의 유령 계정을 활용해 세월호 유족을 폄훼하는 글을 유포한 사실을 밝혀냈다. 또 특위 조사 결과 김씨가 사이버여론전을 위해 활용한 트윗 계정 64개 중 60개는 2011년 12월 일제히 만들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가 민간인 댓글부대 3500명에 포함됐는지는 아직 명확지 않지만 2011년 11월 국정원이 청와대에서 SNS를 국정홍보에 활용하라는 지시를 받고 여당 후보 지원 방안을 보고한 직후와 겹친다는 점이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김씨가 2012년 대선 전후에도 보수단체 회원들과 연계해 적극적인 사이버여론전을 주도한 사실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한겨레도 검찰의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 재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면서 “국정원개혁위가 ‘사이버외곽팀’ 조사 범위를 2013년 이후로 확대하겠다고 밝힌 만큼, 검찰 수사가 이뤄질 경우 이명박 정부뿐 아니라 박근혜 정부의 국정원 적폐까지 겨낭할지에 관심이 쏠린다”고 관측했다.

국정원 적폐 청산에 보수신문의 ‘정치보복’ 프레임 

한겨레는 사설을 통해 “국정원의 민간인 동원 여론조작팀 운영은 TF 조사 대상 13건 가운데 일부일 뿐 박근혜 정권 아래서의 정치공작 의혹 등 나머지 사안들은 여전히 조사 중”이라며 “박근혜 정권에서도 국정원은 들통 난 댓글 공작은 중단했을지 몰라도 민간인 사찰이나 정치공작은 계속했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화이트리스트와 우익단체를 동원한 정치공작의 실상 등 13개 사안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며 “민주주의를 좀먹는 국기문란은 정권의 유불리를 따져 대응할 사안이 아니다. 정치관여죄 등의 공소시효가 5개월밖에 남지 않은 이상, 검찰도 수사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일보] [사설] 어이 없는 국정원 댓글부대 … 철저히 밝혀라_사설_칼럼 26면_20170805.jpg
한편 조선일보는 “국기관이 수년에 걸쳐 회사원, 주부, 학생 등에게 돈을 주고 인터넷 여론 조작을 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충격적”이라면서도 “검찰 재수사도 전모를 밝히되 정치 보복으로 흐르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재수사에 돌입하면 언제든 ‘정치 보복’ 프레임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복선이다.

중앙일보 역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거대 정보기관이 국내 정치에 불법 개입하고 언론 탄압에 나선 것은 21세기에 상상하기 어려운 야만적 민주주의 파괴행위다. 철저한 조사를 통해 낱낱이 사실을 밝혀내고 관련 책임자들을 엄벌해야 한다”며 “다만 이른바 ‘적폐 청산’이 전 정권에 칼날을 휘두르는 정치보복으로 흐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중앙일보는 “그렇잖아도 현 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캐비닛에서 발견했다는 문건을 흘리는 식의 행태로 정치보복 의심을 받고 있다”며 “이번 사건이 그런 소리를 듣는다면 국정원 적폐의 청산은 또다시 공염불이 되고 새로운 정치보복의 빌미를 만드는 악순환을 낳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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