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뉴욕타임스를 형편없는 수준으로 만들었다. 독자에 대한 존중, 기사의 공정성과 진실에 대한 최소한의 윤리의식을 저버리고 왜곡과 축소, 견강부회식 해석으로 가해자를 피해자로 둔갑시키는 오류를 범했다. 조선일보에도 영어에 능통한 기자들이 많을텐데 어떻게 이런 식의 보도를 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고의로 문재인 정부를 비난하기 위해서 이런 식의 기사작성을 했는지, 실수로 이렇게 했는지는 조선일보가 직접 나서서 밝혀야 할 문제다. 실수라면 기자들 영어수준 문제인지, 게이트 키핑 시스템 고장인지, 경영진 눈치를 살펴 이런 식으로 외국 신문사까지 저질로 둔갑시키는 조선내부 문화인지를 따져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와 TV조선이 뉴욕타임스 기사를 왜곡 인용해 ‘문재인 대통령의 평창올림픽 재계 홀대론’을 펼쳤다는 지적은 미디어 전문지 ‘미디어스’에서 처음 나왔다.

미디어스는 민주언론시민연합의 2월13일 ‘뉴욕타임즈는 조선일보 말대로 정말 ‘평창 재계 홀대’를 지적했나’라는 모니터 보고서를 인용, 조선일보와 TV조선이 뉴욕타임스 기사를 왜곡 인용했다고 보도했다. 민언련이 지적한 보도는 2월10일자 조선일보 ‘1조 후원하고도…기업인들은 평창에 안보인다’ 기사와 TV조선 ‘‘평창’ 유치 주역 “개막식 땐 소외”’ 리포트다.

문제의 조선일보 보도와 뉴욕타임스 보도를 홈페이지에 들어가 전문을 비교 분석한 결과, 간과할 수 없는 고의성 다분한 오류들이 쏟아졌다. 하나씩 짚어본다.

우선 두 신문은 제목에서부터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 지난 2월7일 뉴욕타임즈
▲ 지난 2월7일 뉴욕타임스
‘1조 후원하고도…기업인들은 평창에 안보인다.’ 조선일보 2월10일자 9면 제목이다. 후원한 기업인들이 홀대받고 있는 점을 부각시킨 제목이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 제목은 “For Korea Inc., Money and Politics Make an Awkward Olympics (주식회사 대한민국, 돈과 정치가 우스꽝스런 올림픽으로 전락시키다)”이다.

뉴욕타임스를 인용한 조선일보는 기업인들이 홀대받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정작 뉴욕타임스는 재계의 돈이 정치와 함께 올림픽 정신을 타락시키고 있는 공동주범으로 비판하고 있다. 제목은 기사 전체의 주제를 압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조선일보의 무리한 해석과 자의적 인용은 위태롭다. 기사의 구체적 내용을 살펴봐도 출발점과 시각이 다른 두 기사는 큰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조선일보는 관련 기사에서 “올림픽은 전 세계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을 수 있는 행사라 개최국 대표 기업이 대대적으로 후원하며 홍보 효과를 노리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한국 기업은 평창올림픽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있다”는 뉴욕타임스 기사를 일부 인용했다.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한국 기업이 평창 올림픽 유치에 결정적 기여를 했지만 정작 올림픽에서는 소외됐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고 소개했다. 조선은 ‘재계 홀대론’까지 나오면서 평창올림픽에 1조 원 이상을 후원·기부한 대기업이 문재인 대통령이 주최한 평창리셉션에 초청받지도 못했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가 인용한 앞부분은 뉴욕타임스 본문에 그대로 있다. 그러나 “이른바 재계홀대론까지 나와… 초청받지도 못했다”는 부분은 사실과 다르다. 조선일보의 자의적 해석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얘기다. ‘재계홀대론’에 이어 ‘문 대통령이 초청하지 않았다’는 내용이나 해석의 여지는 뉴욕타임스 어디에도 없다.

뉴욕타임스는 거꾸로 재계가 왜 이런 처지가 됐는지 조선일보와 정반대 분석을 내놓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삼성의 뇌물 수수 사건과 박근혜 게이트와의 유착관계가 밝혀지면서, 기업의 올림픽에서의 적극적인 후원, 마케팅이 국민들로부터 오해를 살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버렸다는 점’ 등을 ‘삼성이 과거에 비해 덜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게 된 배경으로 분석했다. (But in South Korea, the recent atmosphere of scandal has made it an especially awkward time for the country’s leading corporate names to be plastering Olympic venues with logos and showering athletes with freebies. The corruption allegations that ensnared Mr. Lee’s son and heir — and that last year felled Park Geun-hye, then South Korea’s president — involved bribery via sports sponsorships.)

뉴욕 타임스는 또한 연합뉴스 기사를 인용해 지난해 4월 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가 기획재정부 장관과 올림픽 기금 조성과 관련하여 논의하는 과정에서 ‘올림픽조직위원장이 국내 현안인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와 연계된 재벌의 뇌물사건 때문에 기업의 기금조성 협조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이와 함께 정경유착 폐해가 어떻게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는 우스꽝스런 올림픽을 만들고 있는지 자세하게 정리했다.

뉴욕타임스는 평창올림픽 유치 캠페인 주역이었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박용성 두산 회장들이 비리로 기소되었던 사실을 적시했다. 특히 2008년 탈세 혐의로 기소된 이건희 회장의 경우 올림픽 유치를 명분으로 사면되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Three leaders of Pyeongchang’s winning campaign to host the Winter Games were industrialists who had, at one point or another, been convicted of financial crimes: Mr. Lee of Samsung, Cho Yang-ho of Korean Air and Park Yong-sung, formerly of the Doosan conglomerate. The company’s chairman, Lee Kun-hee, is a longtime member of the 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 and lobbied for years behind the scenes to bring the Winter Games to South Korea. The government saw Mr. Lee as so pivotal to its Olympic dreams that after he was convicted of tax evasion in 2008, the country’s president then pardoned him expressly so he could resume lobbying for Pyeongchang.)

뉴욕타임스는 제목에서부터 구체적 내용 하나하나 모두 재벌의 돈과 정치가 어떤 식으로 얽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올림픽 정신을 훼손했는가를 문제삼았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재계 홀대’ ‘문재인 대통령이 기업인을 초청하지 않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홀대했다’는 식의 내용을 만들어냈다. 이는 저널리즘의 부정이다.

특히 조선일보는 최근 송희영 전 주필이 권언유착의 산물, 뇌물과 향응접대 장본인이 된 것을 반성하며 새롭게 조선일보 윤리강령을 자세하게, 구체적으로 만들었다. ‘조선일보 윤리규범 가이드 라인’으로 명명된 해당 윤리강령에는 기자들의 자의적인 해석을 최소화하도록 자세하게 행동규범을 정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 지난 2월13일 서울중앙지법이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오른쪽 인물)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송 전 주필은 미디어오늘 기자의 계속된 질문에 침묵한 채 법정을 떠났다. 사진=이치열 기자
▲ 지난 2월13일 서울중앙지법이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오른쪽 인물)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송 전 주필은 미디어오늘 기자의 계속된 질문에 침묵한 채 법정을 떠났다. 사진=이치열 기자
이런 외신보도 인용과 관련해서도 ‘제2장. 확인 보도, 제1조. 사실 확인 부분’에서 “①확인된 사실을 기사로 쓴다. 사실 여부는 공식적인 경로나 복수의 취재원을 통해 확인한다. ②취재원의 일방적인 폭로나 주장은 독자적인 취재를 통해 사실 여부를 확인한다…” 등으로 철저하게 사실관계를 확인하도록 명시했다.

뉴욕타임스 기자에게 확인할 필요도 없이 보도 인용에 대해 ‘얼마나 사실관계에 충실하고자 했는지’ 조선일보 윤리규범 가이드 라인 수준에서 체크해보기를 권한다.

또한 가이드라인 ‘제3조. 기록과 자료 조작 금지’ “①기록과 자료를 조작하지 않는다. ②고의로 잘못된 정보를 삽입하거나 사진, 그래픽, 오디오나 영상을 포함한 뉴스 보도 중 어떤 것도 위조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함께 살펴야 할 부분이다. 외신 자료를 고의로 인용하거나 바꾸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런 식으로 문재인 정부 공격용으로 둔갑시킬 수 있는 것인가.

마지막으로 가이드 라인은 ‘제2조. 오보 등 기사의 정정’ 부분에서 “①오류의 가능성에 대한 모든 지적을 수용하고 확인한다. ②정정보도는 가능한 빨리 처리한다. 신문에 게재되기 전이라도 인터넷, 소셜미디어 등을 활용해 신속히 정정보도를 게재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조선일보 윤리강령 기준에 따라 스스로 오보에 대한 지적을 조사하고 정정보도를 가능한 빨리 처리하는 지도 살펴볼 것이다. 조선일보 스스로 ‘1등 신문’을 내세우며 최근 윤리규범도 다시 만들었다. 조선일보가 자발적으로 만든 그 규범에 따라 어떻게 오보 지적을 수용하고 정정보도 하는지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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