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가 6일 <한없이 가벼운 ‘시사예능’ 이대로면 독>이란 기사를 실었다. 시사예능에 대한 전반적 평가가 담겼지만 주요 초점은 SBS ‘블랙하우스’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 신문은 “‘블랙하우스’ 논란은 시사프로그램의 예능화가 지닌 허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대중의 지식과 정치적 관심을 향상시키는 순기능보다 시청률 경쟁에 매몰돼 객관성을 잃을 수 있는 점을 보여줬다”며 강유미씨의 엠부시 취재와 정봉주 전 의원의 성추행 보도 논란을 일례로 들었다.

한국일보는 “2013년 예능 요소를 강화한 JTBC ‘썰전’이 인기를 끌면서 시사프로그램 제작 방향은 예능 쪽으로 더 기울었다”고 전한 뒤 “시사·정치 콘텐츠가 가벼워지는 현상은 세계적인 흐름이지만, 정치 논제를 가십거리로 다루는 예능 형식은 우리나라만의 특징이라는 게 언론학자들의 해석”이라고 보도했다. 이어 “자극적인 시사예능프로그램에 대한 피로감으로 정통 탐사 저널리즘이 다시 인기를 끌 것”이라며 ‘PD수첩’과 ‘추적60분’에 대한 기대로 마무리 지었다.

▲ 한국일보 4월6일자 기사.
▲ 한국일보 4월6일자 기사.
그런데 독자들은 당장 제목에 분노한 듯 보인다. 해당기사의 온라인 판에는 “시사가 왜 심각해야해?”, “시대적 흐름 하나 읽지 못하는 시각이 안타깝다”는 등의 비판적 댓글이 달렸다. 한 누리꾼은 “시사는 진지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이미 구시대적 발상이다. 시사나 기사는 가벼움과 진지함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과 진실을 얼마나 성실하게 전달하느냐에 있다”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많은 누리꾼들은 “그냥 김어준이 싫으면 싫다고 말해라”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시사의 예능화에 대해 실제 시사교양PD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MBC ‘PD수첩’을 총괄하는 강지웅 MBC 시사교양1부장은 “너무 나간다 싶은 위험성은 모든 프로그램이 안고 있는 문제”라고 전한 뒤 “시사든 예능이든 드라마든 대중의 상식을 벗어나면 외면 받고 배척된다. MBC ‘스트레이트’든 SBS ‘블랙하우스’든 변화된 시청자와 변화된 시대에 맞게 새로운 길을 열고 있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여러 불협화음 또한 있을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지웅 부장은 이어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스릴러와 미스터리 장르에 특화되고 ‘PD수첩’이 거대담론을 지향하듯이 각자의 지향점과 문법이 있다”고 전한 뒤 “시청자들이 ‘블랙하우스’를 보는 이유는 재미나 희화화 때문이 아니라 결국 정보가 있기 때문”이라며 “한국일보 기사는 (시사 장르에) 지나치게 엄숙주의를 강조하는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예컨대 ‘박근혜 5촌 살인사건’ 같은 이슈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처럼 미스터리에 특화된 시사 장르로 풀어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것처럼, 저마다의 강점을 극대화하는 것이 중요하지 포맷 자체가 문제가 될 순 없다는 의미다.

사실 시사프로에 중요한 것 포맷이 아니라 팩트 그 자체다. 팩트가 빗나가면, 예컨대 5·18 북한군 개입설을 여과 없이 내보냈던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나 세월호 폭력집회라며 조작사진을 냈던 채널A ‘김부장의 뉴스통’처럼 폐지 수순을 밟으며 저절로 도태될 수밖에 없다. ‘블랙하우스’ 역시 팩트가 어긋나면 자연스레 도태될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프로보다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 곧바로 팩트의 어긋남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젊은 시사교양PD들은 <블랙하우스>처럼 예능적 요소가 가미된 시사교양프로그램을 연출하고 싶어하는 분위기다. KBS ‘추적60분’을 연출하는 KBS 한 시사교양PD는 “정통 시사를 만드는 입장에서 오히려 우리가 시청자의 욕구를 못 따라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며 “과거의 정통 포맷만을 고수하는 것만으로는 도태되기 쉽다”고 지적했다. 강유미씨의 출연과 관련해선 “PD와 기자들이 할 일인데 오죽하면 강유미씨가 나섰나 싶은 마음에 자책감도 든다”고 전했다.

사실 강유미씨를 둘러싼 언론계의 대응은 오랜 역사성을 갖고 있다. 2003년 12월 코미디언 김미화씨가 MBC 저녁 시사프로그램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의 진행자로 발탁되자 언론계는 ‘시사프로그램은 취재 경험 있는 기자가 해야 하는데 요즘은 연예인까지 하고 있으니 문제’라는 투로 부정적 여론을 형성했다. 

당시 손석희 MBC아나운서는 문화일보 칼럼을 통해 “시사프로그램에 있어서 현장 경험은 실체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이미지의 문제다. 그것을 마치 절대적인 전제조건인양 주장하는 것은 편견에 의한 착오와 다름없다. 내가 보기에 시사프로그램 진행자에게 더 필요한 것은 세상에 대한 문제의식과 애정이다”라고 지적했다. 이후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은 김재철 전 MBC사장이 그렇게 망가뜨리고 싶어 했던 최고의 시사프로그램으로 오랜 기간 존재했다.

‘블랙하우스’와 ‘자격증 저널리즘’

▲ SBS &#039;김어준의 블랙하우스&#039;. ⓒSBS
▲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SBS
한국일보 기사를 둘러싼 뉴스수용자들의 불만은 시사프로그램에 지나친 엄숙주의를 강조한다는 대목과 더불어 김어준씨에 대한 주류언론의 시선이 불합리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되고 있다. 한 방송사 고위관계자는 김어준씨를 둘러싼 주류언론의 프레임과 관련해 “자격증 저널리즘”이란 표현을 썼는데, 많은 뉴스수용자들 역시 김어준씨로 상징되는 ‘자격증 없는 저널리즘’에 대한 주류언론의 반감을 지면으로 느끼고 있다.

한국기자협회는 4월4일자 <팟캐스트 스타와 저널리즘 원칙>이란 제목의 기자협회보 사설을 통해 “나꼼수 등 정치 팟캐스트의 활성화는 탈정치 성향의 청년세대를 정치에 관심을 갖도록 한 순기능도 적지 않았다는 게 언론계 안팎의 평가”라고 전제하면서도 “문제는 이들 팟캐스트 스타들이 공중파 방송에 진출한 뒤 보여준 태도다. 팟캐스트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이들은 보수정권과 정치인들을 직설적으로 공격하면서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았는데, 여기서 잇따라 무리수를 둔다”고 주장했다.

한국기자협회는 “김씨의 프로그램은 사실검증과 객관성 확보라는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에 충실하지 못했다”며 “팟캐스트 진행자들이 저널리즘의 기본에 충실하고, 방송 외로는 영향력에 걸 맞는 품위를 보여줘야 함은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사설에는 ‘경찰서 출입도 안 해본, 기자단 시스템도 모르는 자격증 없는 인물이 주류미디어로 진입하고자 한다면 우리의 문법에 따라야 하고 우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행간이 담겨있다. 

이는 김어준씨가 ‘미투 운동’을 정치적 진영논리로 해석했다는 비판과 정봉주 전 의원의 성추행 논란에서 정 전 의원의 편을 들었다는 비판과는 다른 맥락으로, 주류언론의 가장 큰 권력인 ‘사건의 프레임 구성 능력’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집단대응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실제 주류언론은 2011년과 2012년 ‘나는꼼수다’에 의해 이 헤게모니를 빼앗긴 경험이 있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주류언론에 소속된 기자들은 ‘김어준’이란 스피커가 강해질수록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물론 이 같은 불편함은 “김어준은 저널리즘을 위해 운동하는 게 아니라 운동을 위해 저널리즘이란 방식을 이용한다”는 혹자의 우려와 맞닿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기자들은 tbs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전체 시사 라디오프로그램 청취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지금은 ‘자격증’이 없어도 저널리스트가 될 수 있고, ‘자격증’이 있어도 저널리스트가 아닌 세상이다. 김어준씨의 잘못을 지적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동시에 주류언론 스스로 신뢰를 높이고 선택받기 위해 뉴스수용자를 얼마나 이해하고 이에 맞춰 변화하고자 노력했는지 되물어볼 필요가 있다. 지금 주류언론이 처한 문제는 김어준씨를 지상파에서 쫓아내고 팟캐스트로 되돌려 보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돌이켜보면 ‘자격증도 없는 음모론자’ 김어준씨의 영향력을 키운 건 뉴스수용자들에게 실망을 안겨왔던 주류언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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