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명이 다한 원전 가동을 연장하는 것은 선박 운항 선령을 연장한 세월호와 같다. 원전 중심의 발전 정책을 폐기하고 탈핵 시대로 가겠다.”(6월19일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문재인 대통령 발언)

미디어오늘이 고리1호기가 영구정지 된 6월19일부터 7월18일까지 한 달간 조선일보·한겨레·부산일보 지면의 원전 관련 기사·칼럼·사설 및 취재원을 전수 조사했다. 그 결과 조선일보가 80건, 한겨레가 46건, 부산일보가 109건의 기사·칼럼·사설을 개제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일보는 80건의 기사·칼럼·사설 중 문재인 정부의 탈 원전 정책을 비판하는 논조가 71건에 달했다. 탈 원전 정책에 긍정적인 논조는 단 2건에 불과했으며 이마저도 외부 칼럼이었다. 나머지 7건은 논조가 드러나지 않았다. 탈 원전 선언 이후 조선일보의 원전 관련 텍스트 가운데 88.75%는 탈 원전 반대였던 셈이다. 반면 한겨레는 46건 가운데 탈 원전 정책에 긍정적인 논조가 32건이었으며 중립적인 논조가 13건, 비판적 논조는 1건이었다. 원전이 밀집한 지역에 위치한 부산일보는 109건 가운데 탈 원전 비판 논조가 7건에 불과했으며 대부분이 탈 원전정책에 찬성하는 기사였다.

▲ 디자인=용지수 대학생 명예기자.
▲ 디자인=용지수 대학생 명예기자.
원전업계는 지난 17일 한수원 노조가 조선일보에 탈 원전 반대 광고를 게재하는 등 조선일보 지면을 매개로 탈핵이란 정책기조를 되돌리기 위한 총력전에 나선 모습이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조선일보는 최근 한 달 간 무려 13건의 탈 원전 반대 사설을 쏟아냈다. 조선일보의 경우 기사에 등장한 취재원 및 기고자 110명 가운데 탈 원전 정책에 긍정적인 사람은 19명에 그쳤다. 이들 또한 청와대 고위관계자 등 정부 측 인사가 대부분이었고 해명 위주의 코멘트였기 때문에 사실상 조선일보 지면은 원전업계 인사들이 점령했다고 봐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한겨레의 경우 83명의 취재원 및 기고자 가운데 탈 원전 정책에 부정적인 사람이 14명 등장했고 부산일보는 116명 중 탈 원전에 긍정적인 사람이 92명, 부정적인 사람이 16명이었으며 의사표명이 드러나지 않은 사람이 8명으로 나타났다. 이는 조선일보와 매우 대조적인 결과다.

▲ 탈원전 관련 조선일보 기사들. 조선일보는 주요 종합일간지 가운데 가장 앞장서서 새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 탈원전 관련 조선일보 기사들. 조선일보는 주요 종합일간지 가운데 가장 앞장서서 새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원전업계를 대변하는 김창섭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와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를 비롯해 노동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자력정책연구실장, 황일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등을 주요한 취재원으로 등장시켰다. 이밖에도 익명의 한수원 관계자와 에너지 전문가들이 등장했다. 7월10일부터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과 관련해 한국수력원자력 노동조합의 의견을 비중 있는 취재원으로 등장시키기 시작했다.

조선일보는 7월11일 원전 폐쇄 반대운동을 하는 마이클 셀렌버거를 1면에 등장시키며 “원자력은 무조건 위험하고 신재생에너지는 깨끗하고 지속 가능하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원자력이 100% 안전할 수는 없지만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원전은 악惡이라는 선동을 깨는 데 앞장서야 한다”는 발언을 강조했다.

17일 사설과 18일 보도를 통해선 “괴담 수준의 강의를 한 김익중 동국대 교수가 새 정부 탈 원전 정책을 수립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고 보도했다. ‘정부의 원전정책이 괴담 유포자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는 식의 프레임이다. 조선은 사설에서 “국가 에너지 정책이 비전문가들의 허무맹랑한 신념에 휘둘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등골이 서늘해진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조선일보 지면에선 원전 찬성론자들의 모든 프레임이 등장한다. 예컨대 ‘600조 원전 시장 스스로 걷어차는 한국’(7/15), ‘탈원전 하자면서 절전엔 관심 없는 정부’(7/14), ‘국무회의 20분 만에 결정된 원전 임시 중단’(7/13), ‘공대교수 417명 “전력복지 제공한 원전 말살은 제왕적 조치’(7/6), ‘신고리5·6호기 건설 중단하면 760개 업체 5만 명 일손 놓아야’(6/29), ‘태양광 발전 하기엔 국토가 좁고, 풍력 발전 하기엔 바람 약하고’(6/29) 등이다.

▲ 탈 원전 관련 부산일보 기사들. 조선일보 기사와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부산일보와 조선일보의 차이는 위치다. 조선일보는 원전이 없는 서울에 있고, 부산일보는 원전이 밀집한 부산에 있다.
▲ 탈 원전 관련 부산일보 기사들. 조선일보 기사와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부산일보와 조선일보의 차이는 위치다. 조선일보는 원전이 없는 서울에 있고, 부산일보는 원전이 밀집한 부산에 있다.
이는 부산일보 보도와 대조적인 프레임이다. 부산일보는 ‘원전 1기도 없이 원전 고집하는 수도권’(6/21)이란 제목의 기사를 비롯해 ‘“탈핵 땐 전기료 폭탄”은 가짜뉴스’(6/22), “환경비용 고려 땐 원전이 발전단가 훨씬 비싸”(7/3)와 같은 기사가 눈에 띄었다. 

부산일보는 조선일보가 띄운 셀런버거 대표를 두고서도 ‘탈핵 반대 알고 보니 원전 장학생’(7/13) 기사를 통해 “탈핵 반대론자들이 셀런버거 대표가 타임지가 선정한 환경 영웅이라는 점을 들어 주장에 권위를 부여하지만, 4대강 사업을 벌인 이명박 전 대통령도 같은 환경 영웅에 선정된 바 있다”며 “마치 미국의 저명한 환경운동가가 정부 정책을 비판한 것으로 호도해서는 안 된다”고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앞서 2007년 6월부터 2015년 6월까지 8년 간 조선일보·중앙일보·경향신문·한겨레·부산일보·국제신문의 원전보도를 분석한 논문 ‘우리나라 원전에 대한 신문보도 프레임 변화 연구’에 따르면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전 보도에선 환경안전 프레임이 13.7%, 경제효용 프레임이 34.2%였으나 사고 이후 환경안전 프레임은 62.8%로 대폭 증가한 반면 경제효용 프레임은 2.6%로 크게 줄었다. 같은 기간 조선·중앙일보의 경제효용 프레임은 사고 이전 61.1%에서 사고 이후 7.1%로 급감했다.

하지만 적폐청산을 공약으로 내건 문재인 정부가 탈핵시대를 선언하면서 다시금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경제효용 프레임이 증가하며 안전에 대한 합리적 우려를 괴담으로 취급하는 논조가 공세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선우정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공포를 과학으로 극복하자”(7/5)고 말한 것이 일례다.

▲ 고리원전 1호기. ⓒ연합뉴스
▲ 고리원전 1호기. ⓒ연합뉴스

한겨레는 문 대통령의 탈핵 선언 이후 원전 해체에 방점을 찍으며 투명한 정보공개를 강조하는 한편 원전사고 위험성 고려 없이 매몰비용을 계산하는 원전찬성론자들의 주장이 ‘난센스’라고 지적한다. 

이와 관련 장정욱 일본 마쓰야마대학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 18일 ‘보수언론은 핵마피아라고 고백하나’란 제목의 한겨레 칼럼을 통해 “보수언론이 이미 붕괴된 ‘핵발전소의 안전신화’를 다시 꺼내 핵발전소의 경제적 우월성(?)을 강변하는 손익비교분석의 근거는 무엇인지 매우 궁금하다”며 “언론의 기본적 의무는 프로파간다가 아니라 치밀한 조사와 객관적 분석에 근거한 정보 전달”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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