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을 틀면 남자들만 가득하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미디어오늘이 5일 기준 KBS MBC SBS JTBC tvN Mnet 채널A 등 7개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 74개의 고정 출연자 성비를 전수조사 한 결과 남성이 254명, 여성이 121명으로 나타났다. 남성 출연자(67%)가 여성 출연자(32%)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수치다. 3개 프로그램 이상 중복 출연자 수도 이상민(7개) 등 남성이 17명인 반면 여성은 1명(한은정)에 불과했다. 남성만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26개, 여성만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2개에 그쳤다.

분석 결과 남성만 출연하는 프로그램의 경우 토크쇼·여행·버라이어티·서바이벌 프로그램 등 콘셉트가 다양했지만, 여성만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뷰티·패션 분야에 주제가 한정됐다. 프로그램 내 출연자 역할에서도 성차별은 여실히 드러났다. 여성과 남성이 함께 MC를 맡은 프로그램의 경우, 여성은 남성 옆에서 보조적 역할을 하는 데에 그쳤다. ‘냄비받침’의 트와이스, ‘해피투게더’의 엄현경, ‘인생술집’ 유라, ‘나도 CEO’의 한은정이 한 예다.

▲ 예능프로그램의 고정출연자 성비. 디자인=용지수 대학생 명예기자.
▲ 예능프로그램의 고정출연자 성비. 디자인=용지수 대학생 명예기자.
▲ JTBC '비정상회담'.
▲ JTBC '비정상회담'.
남성 출연자는 예능에서 지적 전문성을 인정받기도 한다. ‘알쓸신잡’, ‘뇌섹시대-문제적남자’, ‘비정상회담’ 등이 대표적이다. ‘쿡방’과 ‘먹방’의 경우도 ‘냉장고를 부탁해’, ‘백종원의 3대천왕’, ‘집밥 백선생’, ‘수요미식회’ 모두 남성 출연자의 직업적 전문성을 강조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각각 방송과 게임 분야에 전문성을 내세운 ‘세모방:세상의 모든 방송’, ‘게임쇼 유희낙락’도 남성 고정 출연자만을 일종의 ‘멘토’로 삼고 있다.

예능프로그램에선 성비뿐만 아니라 연령에서도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다. 남성과 여성이 2MC 혹은 3MC로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대부분 여성이 남성보다 어렸다. ‘연예가중계’, ‘섹션TV연예통신’, ‘본격연예 한밤’ 등 지상파 3사의 연예 정보 프로그램과 ‘영화가 좋다’, ‘출발! 비디오여행’, ‘접속 무비월드’ 등 영화 전문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이번 조사 대상이었던 7개 방송사의 74개 프로그램 중 40대 이상 여성 출연자는 24명으로 19.8%에 불과했다.

기혼자 비율도 성별차가 크다. 남성 출연자의 경우 3개 프로그램 이상 출연자 중 절반 이상이 결혼 경험이 있는 반면(17명 중 10명), 여성 출연자의 경우 대다수가 미혼이었다. 이와 관련 SBS ‘세상에 이런 일이’를 19년간 진행한 방송인 박소현은 장수MC비결을 묻는 질문에 “결혼과 출산을 안 했기 때문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답하기도 했다.

예능프로그램의 출연자 성비 불균형 문제는 남성들이 여성의 외모를 품평하고 고정된 성역할을 강조하며 여성혐오적 장면을 유발하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여성 연예인들은 같은 연차의 남성 연예인에 비해 출연 영역이 보장되지 않는 결과 기회의 불평등에 놓여있고, 그 결과 출연에서 배제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 MBC '무한도전'의 한 장면.
▲ MBC '무한도전'의 한 장면.
이 같은 문제는 제작현장에서부터 변화가 이뤄져야 가능해보인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016년 방송 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5년 방송 산업 종사자 가운데 남성은 2만3937명, 여성은 1만1159명으로 남성이 68%를 차지했다. 놀랍게도 이번 조사에서의 남성비율과 거의 같은 수치다. 제작현장에서의 남성중심적 구조가 바뀌어야 프로그램의 내용도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관련기사=“남성 압도적인 방송현장에서 성평등한 콘텐츠 나올 수 없다”)

이와 관련 모바일 방송국 와이낫 미디어 손승희·한수지 PD는 지난달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연출부에) 남녀 성비를 맞추려고 한다. 미디어에서 너무 남성의 시각으로 여성을 본다. 연출자로서 (미디어 내 고착화 된 성역할을) 깨고 싶다”고 밝혀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지난해 11월 ‘양성평등문화 확산을 위한 프로그램 제작 가이드라인 개발’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방송은 주제의 선정에서부터 양성평등이 적극 반영돼야 한다 △방송은 남성과 여성 모두를 균형 있게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 △방송은 성역할 고정관념에 치우치지 않는 여성과 남성의 다양한 삶을 보여 주어야 한다 △방송은 어떠한 성적 폭력이나 가정폭력도 정당화하거나 선정적으로 다뤄서는 안 된다 △방송에서는 성차별적 언어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영국 BBC는 ‘프로듀서를 위한 지침서’를 통해 프로그램 진행자의 인종과 성비를 맞춰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갖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