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석희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가 조재범 전 대표팀 코치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경찰에 추가 고소한 사실이 알려졌다. 조재범 전 코치는 심석희 선수에게 폭행을 가해 법정 구속된 상태인데 추가로 성폭행 혐의로 고소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적 분노가 커지는 상황이다. 

이번 사건은 8일 SBS의 단독 리포트를 통해 알려졌다. SBS 보도는 신중했다. SBS는 심석희 선수가 추가로 제출한 고소장에 “조재범 코치에게 폭행뿐 아니라 고등학생 때부터 4년 가까이 상습적으로 성폭력을 당했다는 내용”을 확인했다면서 “저희는 이 소식을 전하는 게 그 선수와 가족들에게 또 다른 피해를 주는 건 아닌지 많은 고민을 해 왔었는데 심석희 선수가 혹시 자기 말고 혹시 더 있을지 모를 피해자들도 용기를 내서 당당히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변호인을 통해서 저희에게 보도해도 좋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SBS는 조재범 전 코치가 폭행 혐의로 재판을 받을 때 증인으로 나와 “앞으로 스포츠계 어디에서도 절대로 일어나선 안될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고, 그러기 위해 엄벌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한 심석희 선수의 모습과 조재범 전 코치가 법정으로 향하는 화면을 내보냈다.

SBS 보도는 파장이 컸다. 국제 대회 직전까지도 성폭행을 당하고, 무려 4년 동안 성폭행에 시달렸다는 고발장의 내용은 국민을 공분케했다. SBS 보도 이후 언론 보도가 쏟아졌다. 8일 저녁부터 9일 오전 문화체육관광부가 ‘조재범 성폭력 폭로’ 근절 대책을 발표하기까지 언론보도는 모두 409건(이미지를 포함한 보도)이었다.

▲ 지난 8일 SBS 8뉴스가 보도한 ‘심석희 “조재범 전 코치가 ‘상습 성폭력’”… 용기 낸 호소’ 보도 갈무리.
▲ 지난 8일 SBS 8뉴스가 보도한 ‘심석희 “조재범 전 코치가 ‘상습 성폭력’”… 용기 낸 호소’ 보도 갈무리.
이 중 심석희 선수의 사진만 나온 보도는 242건이었다. 조재범 전 코치의 사진이 나온 보도는 86건에 그쳤다. 심 선수와 조 전 코치의 사진을 함께 실은 보도는 79건이었다.

심석희 선수는 자신이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기사에 ‘가해자’ 조재범 전 코치의 얼굴은 없고 자신의 사진만 나온 언론 보도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성폭력 보도에서 피해자 이미지만 부각시키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일 수 있다. 은연 중 독자들에게 가해자의 ‘폭력’보다는 피해자의 ‘희생’을 강조시켜 사건의 본질을 흐릴 수 있는 위험이다.

언론은 과거 심석희 선수의 인터뷰 내용을 찾아내 기사화하기도 했다. 2015년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심 선수가 “코치님은 제가 나약해지면 강하게 만들어주시고 힘들어하면 에너지가 돼 주신 분”이라고 말했다는 것. 심 선수가 2014년 성폭행을 당하고도 2015년 인터뷰에서 이 같은 말을 했다는 것에 주목해 ‘그루밍 성범죄 양상’이라고 단정짓는 보도 내용이다.

비상식적인 언론 보도의 제목과 내용도 보인다. 아주경제신문은 “심석희, 조재범 코치 고소...성폭행 방지앱 없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 여자 쇼트트랙 간판인 심석희 선수가 조재범 전 코치에게 4년간 상습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소하면서 논란이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여성의 성폭행 및 성폭력이 사회 문제로 대두된 가운데, 이를 알리거나 방지하는 모바일 앱은 없을까”라며 해외에서 여성 응급 지원 알림 시스템 앱을 개발했다는 엉뚱한 소식을 전했다.

“심석희 4년 성폭행 조재현 전 코치 ‘작심’ 고소, 체육계 ‘비상’”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마치 심 선수가 의도를 품고 고발을 해서 체육계가 피해를 입은 것처럼 보인다.

일부 언론은 국회에서 국회체육진흥법상 자격 정지 및 자격 취소 사유로 체육 지도자의 폭력 성폭력 행위를 포함시키는 내용의 개정안을 추진하자 이를 ‘심석희법’이라고 명명해 비난을 받고 있다.

지난해 6월 한국 기자협회와 여성가족부가 함께 만들어 발표한 성희롱 보도 유의점에 따르면 “피해자 중심으로 사건을 부르거나 피해자의 이미지를 남용하는 것은 가해자를 사건의 중심에서 사라지게 하여 사건의 책임소재가 흐려질 수 있고, 피해자를 주목하게 만들어 외모평가, 근거 없는 소문 등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신상을 공개한 피해자라고 하여 피해자의 과거 영상과 사진을 찾아내 자료화면으로 활용하는 것은 피해자에 대한 과도한 관심으로 사생활 침해행위”라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에서 언론 보도 제목에 “씻을 수 없는 상처”, “몹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도 문제다. “씻을 수 없는 상처”라는 말은 피해자의 상처는 극복하기 어렵고 피해자는 무기력하고 나약할 것이라는 편견을 갖게 만들고 “몹쓸”이라는 단어는 가해자의 책임을 가볍게 인식하게 해 성폭력 범죄를 가볍게 여기도록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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