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진보언론 비판하면 문빠?

며칠 전 뉴스수용자들이 “덤벼라. 문빠들”이란 ‘음주 페북’에 1만여 개의 댓글로 ‘응답’한 배경에는 ‘독자퍼스트 언론’을 구호로 내걸었던 한겨레21 전 편집장의 행간에서 ‘위선’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실상 한겨레를 응원하는 사람만 ‘독자’로, 비판하는 사람은 ‘문빠’로 규정했다. 최근 한겨레21을 절독한 정동옥씨는 한겨레21 1163호에서 “(한겨레21이 문재인 지지자를) 문 대통령이 하는 일은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지지자도 여러 부류다”라고 말했다. 이번 논란을 소위 ‘문빠의 광기’로 보고 ‘여기서 밀리면 문재인 비판 보도를 할 수 없다’는 식으로 접근해선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진보언론 비판=문재인 대통령 지지’란 등식이 맞을까. 한겨레를 중심으로 불거진 소위 ‘진보언론 혐오’ 논란은 문재인 대통령 지지층이 주도하고 있지만 앞선 등식을 전제로 논란을 판단할 경우 한겨레에 대한 비판을 “문재인을 확실히 지지해 달라”는 식으로만 받아들이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이번 논란은 문 대통령 지지와 상관없이 진보언론을 비판해왔던 사람들의 침묵 내지는 동조와 함께 폭발력을 갖게 되었다.

▲ 안수찬 전 한겨레21 편집장의 페북.
▲ 안수찬 전 한겨레21 편집장의 페북.
한겨레 경제부장·한겨레 시민편집인을 거친 이봉수 세명대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은 자신의 저서 ‘중립에 기어를 넣고는 달릴 수 없다’에서 “한겨레가 보수매체에 영향력이 뒤지는 것은 첫째 정치기사의 정파성 탓이 크다. 한겨레 정치부나 논설실 안에는 최소한의 합의된 논조가 없고 기자들이나 논설위원들 사이에 심한 정치적 성향 차이가 지면에 드러난다”고 주장했다. 이 원장은 “기사의 방향에 맞는 사람만 인터뷰해 기사를 작성하는 경향은 보수신문이 심하지만 한겨레에도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안티조선운동사’를 쓴 작가 한윤형씨 역시 “진보언론은 좁은 취재원에 갇혀 이념적 선명성을 앞세우는 정파주의적 보도에 몰입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시사주간지 시사인이 매년 실시하는 언론신뢰도 조사결과 한겨레를 가장 신뢰한다는 응답률은 2014년 8.4%, 2015년 7%, 2016년 5.4%로 하향세를 그렸다. 한겨레는 해를 거듭할수록 조선일보-한겨레라는 진영언론의 틀에 갇히고 있다. 한겨레 위기의 출발점이다.

2. 분노의 본질은

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해온 시민들은 참여정부 이전부터 준비된 집단이었다. 이들과 진보언론간의 갈등도 참여정부 때부터 존재했다. “(노무현의) 등 뒤에 칼을 꽂았다”는 식의 진보언론 비판 역시 오래된 주장이지만 소수였다. 하지만 모든 것들이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바뀐다. 그 전까지 소수에 불과했던 “진보언론이 노무현을 죽였다”는 서사에 동의하는 ‘국민집단’이 생겨난 것이다. 한윤형씨는 “대통령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국민들의 죄책감에 진보언론에 대한 서사가 투영됐다”고 설명한다. 이 서사는 참여정부를 잇는 문재인 정부의 등장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만큼은 지켜줘야 한다”는 서사로 이어진다.

디자인=안혜나 기자.
디자인=안혜나 기자.
2009년 5월24일. 노무현 전 대통령 빈소에 있던 KBS 중계차는 봉하마을 밖으로 쫓겨났다. 당시 현장에 있던 고재열 시사인 기자에 따르면 조중동 기자들에 대해서는 ‘색출작업’까지 벌어졌다. 진보언론은 어땠을까. 고 기자는 “한겨레나 경향신문 기자들도 조문객들에게 ‘너희들도 똑같아’라는 이야기를 듣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당시 고 기자는 “많은 언론이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노비어천가를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 그 많은 기획 중에, 지난 한 달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이렇게 물어뜯었다고 자기 고백하는 매체가 없다”고 적었다.

이봉수 원장은 한겨레가 “자기성찰 무풍지대”라고 비판하며 “세계의 권위지들은 사과에 능한 신문들이다. 한겨레도 권위지가 되려면 사과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한겨레는 16대 대선에선 이회창 후보 아들 병역비리 의혹을 보도하며 확인되지 않은 김대업 주장을 크게 보도했다가 허위판결을 받았고, 17대 대선에선 이명박 후보 BBK 의혹을 보도하며 김경준 주장을 크게 보도했다가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다. 한겨레 주장처럼 판결이 언론자유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또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았던 검찰수사와 관련해 “한겨레가 검찰과 국세청의 의도에 말려드는 식의 보도 또한 적지 않았던 점은 아프게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처음부터 ‘정치보복 냄새가 진동했던 노무현 사건’이라는 인식이 있었다면, 엄중 수사를 촉구하는 사설들은 자제했어야 옳지 않을까”라고 되물었다. 이 같은 비판은 문재인 지지자가 아닌 독자들도 공유하고 있는 한겨레의 한계였다. 이런 가운데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깊은 애도를 전하며 보인 ‘태세전환’은 매우 위험했다. 이것이 분노의 본질이다. 또 다시 ‘위선’이다.

3. 레거시미디어의 한계

레거시(전통)미디어는 출입처와 보도 자료에 의존하고 그곳의 취재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한겨레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해 총선 예측실패에 있어 진보언론도 예외는 아니었다. ‘권갑장의 정치신세계’ 진행자 권순욱씨는 “(문재인 지지자들은) 친문패권주의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친문패권주의는 실체 없는 용어”라고 주장한다. 한겨레 또한 친문패권주의 프레임 안에서 기사를 썼다는 게 한겨레 비판의 한 축이다. 이는 정치인의 발언을 무비판적으로 가져다 썼다는 ‘쿼터저널리즘’에 대한 문제제기이기도 하다.

▲ 한겨레·경향신문·오마이뉴스를 조롱·비판하는 이미지.
▲ 한겨레·경향신문·오마이뉴스를 조롱·비판하는 이미지.
지난 23일 업로드 된 뉴스타파 ‘뉴스포차’에선 한겨레의 단독남발과 선정주의적 보도, 기계적 중립과 쿼터저널리즘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이날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진보언론의 역할을 강조하며 “기대가 크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전형적인 진영논리 사고라는 비판만 받았다. 아이디 ‘JB KIM’은 미디어오늘 기사 댓글에서 “왜 한경오(한겨레·경향·오마이뉴스) 자신들은 피아식별 하는 진영논리가 싫다면서 정작 독자들이 한경오를 까대면 피아식별 해달라면서 진영논리를 들먹이나”라고 비판했다.

한겨레에 대한 비판은 기사와 현실 사이의 괴리감에서도 비롯된다. 지난 19일 한 언론사채용커뮤니티 게시판에는 한겨레 편집국 아르바이트 사원 모집공고가 올라왔다. 공고에 달린 급여는 시급 6500원. 이 공고에는 ‘실망스런 최저임금 찔끔 인상’이란 한겨레 사설을 링크로 걸고 “논조와 실제 행동이 다르다”며 한겨레를 비판하는 댓글들이 달렸다. 과거 신입사원 채용방식에서도 한겨레는 조선일보와 다르지 않다며 비판받기도 했다. 물론 한겨레는 이 같은 지적을 받아들여 최근 서류전형을 없애는 등 채용절차를 바꿨다.

취재 및 기사작성 과정이 주류제도언론과 똑같은 구조에서 발생하는 경직된 남성중심 권위주의문화도 있다. 중년남성 중심의 유흥문화와 술자리에서의 성적농담도 바뀌지 않고 있다. 한겨레를 떠난 젊은 기자 가운데는 “중년남성의 불륜을 로맨스로 포장하던” 술자리에 대한 실망을 예로 들었던 이도 있다. 한겨레의 조직문화가 한겨레가 쓰는 기사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한겨레 부국장급 사원의 성추행 사건과 술자리에서 빚어진 한겨레 기자 사망사건은 표피적으로 드러난 모습일 뿐, 문제는 더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4. 한겨레에는 없는 김어준의 ‘효능감’

니먼랩에 따르면 인류문명이 시작되고 2013년까지 총 5엑사바이트의 데이터가 생성됐는데 오늘날 전 세계에서 이틀 동안 만들어내는 데이터양이 5엑사바이트다. 하루에 분당 2800만 개의 콘텐츠가 페이스북에 올라오고, 25만 건의 사진이 인스타그램에 올라온다. 우리는 지금 어떻게 뉴스를 소비하고 있을까. 하루 이용자만 10억 명인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보자.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곳에 뉴스가 다가온다. 좋아요를 누르고 공유를 하고 댓글을 달 수 있다. 수신자인 동시에 발신자다.

▲ 한 누리꾼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언론사 비판·조롱 관련 이미지.
▲ 한 누리꾼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언론사 비판·조롱 관련 이미지.
독일의 미디어비평가인 노르베르트 볼츠 베를린공과대학 미디어학과 교수는 “미디어가 연출의 힘으로 현실 깊숙이 침투해 들어온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진정한 현실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져간다”고 지적했다. 정보의 범람 속에 적극적 뉴스수용자들을 진실을 찾고자 검열이 없는 팟캐스트로 갔다. ‘나는 꼼수다’를 비롯한 시사 팟캐스트는 진실에 대한 갈망을 충족시키며 역설적으로 공정성에 대한 인식을 바꿨다. 팟캐스트에 익숙해진 뉴스수용자들은 한겨레가 지면에서 추구하는 기계적인 균형에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뉴미디어의 문법이 결합한 한겨레TV ‘김어준의 파파이스’를 보기 시작했다.

뉴스수용자들은 정말, 드라마틱하게 달라졌다. 김민하 전 미디어스 편집장은 기자협회보와 인터뷰에서 “김어준이 왜 각광받고 위력을 갖추게 됐는지 기성 체제에 속한 언론이 반성할 부분이 있다. 항상 ‘떠받들어 주는 문재인 지지자나 이런 사람들이 문제다’라는 말이 따르는데 김어준이 주는 효능감을 기성 언론이 주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말한다. “인터넷에서 쓰이는 문법이 일반화된 사회에서 그 방식으로 효능감을 주는 건 크게 어렵지 않은 일인데 정론적인 방식으로 효능감을 주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뉴스수용자들은 특정후보를 위해 왜곡해서 보도해 달라는 게 아니다. 공정하게 보도해 달라는 것이다. 박근혜 탄핵 찬성 여론이 75%일 때는 지면의 75%를 찬성여론에 할애하고, 문재인 정부 지지 여론이 80%에 육박하면 그에 상응하는 보도를 해달라는 것이다. 그것이 객관이고 공정이며 언론이 줄 수 있는 효능감이다. 그러나 언론은 이 효능감이란 것에 대해 경계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언론인은 늘 열성적인 무언가를 경계하도록 배워왔다. 김낙호 미디어연구가는 아이즈(ize) 기고글에서 “진영에 복무하고자 정보의 냉엄함과 이성적 전달이 부실해지는 것을 감수한다면, 그것이 바로 언론의 부실”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뉴스수용자들은 단순히 진영에 복무해달라는 요구 이상의 것을 바라고 있다. 팟캐스트와 SNS를 통해 익숙해진 ‘효능감’이다.

5. ‘표현대중’

문재인정부 언론환경은 참여정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 뉴스플랫폼이 다변화되며 조선·동아일보의 지면 영향력은 절반 수준으로 하락했고, TV조선·채널A·MBN은 특혜를 환수하고 약탈적 직접광고만 관리·규제해도 나가떨어질 판이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최근 ‘지지자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손 떼면 벌어질 일’이란 제목의 이미지가 돌았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은 순식간에 모든 언론이 문 대통령을 적대할 수 있다며 불안해한다. 유시민이 ‘어용지식인’을 자처한 것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문재인 대통령을 지켜내겠다는 결사항전의 자세가 느껴진다. 이는 보수와 진보를 떠나 레거시미디어 자체에 대한 뉴스수용자들의 불신을 의미한다. 

▲ ‘지지자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손 떼면 벌어질 일’이란 제목의 이미지.
▲ ‘지지자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손 떼면 벌어질 일’이란 제목의 이미지.
이들은 이낙연 총리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그의 자격을 비판한 야당 국회의원들의 치부를 자발적으로 취재하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기레기 감시’를 위한 데이터베이스도 구축했다. 이들은 더 이상 ‘문빠’라는 비하적 단어로 규정될 수 없다. 지금은 평론가 박권일씨가 사용한 ‘표현대중’이란 표현이 적합해 보인다. 이들은 적극적으로 뉴스를 비평하고 취사선택하며 정보를 가공해 스스로 뉴스를 생산해 특정 프레임을 확산시키기도 한다. 소위 ‘좌표’를 찍고 문자폭탄을 보내거나 언론사에 항의전화를 하는 식의 적극적 정치행위도 거리낌이 없다.

박권일씨는 2013년 2월 ‘표현대중의 민낯’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총표현사회의 실제 모습은 아름답고 스마트하지만은 않다. 이들이 쏟아내는 이야기는 와전된 소문, 날조된 미담이 많고 감정을 과장하거나 극단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소위 사회지도층, 유명인, 비유명인 모두 평등하고 투명하게 망가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총표현사회의 실제모습은, 최소한 한국을 보자면 자기전시의 동물원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표현대중’은 조선일보 등이 ‘홍위병’을 운운하는 것처럼 디지털시대의 어두운 단면인가. 박권일씨는 “대중은 옳다/그르다”는 관념 자체가 문제라고 강조한다. 그는 “2002년부터 시작된 촛불시위도,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일베도 모두 한국의 표현대중이 지닌 모습”이라고 지적한다. 그것이 좋은 면이든 나쁜 면이든 표현대중의 모습 그 자체라는 것이다. 최근 논란에서 기자들을 향해 등장했던 과도한 언어폭력과 신상털기, 가족을 향한 협박 등 용인될 수 없는 문제적 행동들은 표현대중이 갖는 속성이란 의미다. 이 때문에 이 문제적 행동만을 비판해서는 논란은 소모적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다.

6. 무엇을 할 것인가

최근 ‘미디어시민의 탄생’이란 책을 펴낸 한윤형씨는 “이들(표현대중)이 언론과 노조와 정당과 잘 협력한 결과가 지난해 촛불이었고 박근혜 파면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맹목적으로 무언가와 불화하면 꼬이게 되는데 지금이 그런 경우”라고 말했다. 그는 언론이 이들의 심리와 패턴을 이해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들이야말로 진보언론의 콘텐츠를 가장 적극적으로 소비하고, 진보언론에 기꺼이 지갑을 열었던 행동주의 시민들”이어서다.

한윤형씨는 “진보언론은 문재인을 배격하지 않는다. 진보언론은 그 어떤 대통령보다 문재인 대통령을 신뢰하고 좋아한다. 하지만 진보언론은 문빠를 싫어한다. 정확히는 그의 열성적 지지자를 싫어한다”고 지적했다. 한윤형은 열성적 지지자들의 행위를 “자기인정투쟁”으로 설명하면서 “진보언론은 이들이 여론장에서 과잉 대표되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도 “동시에 이들이 이렇게 화내는 이유를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진보언론을 조롱하는 만화.
▲ 진보언론을 조롱하는 만화.
돌이켜보면 한겨레를 적극적으로 비판했던 이들은 지난해 말 ‘#그런데최순실은?’ 해시태그 운동을 주도하며 언론의 최순실 관련 보도를 적극 유도했으며 이 과정에서 한겨레의 단독보도를 가장 열심히 확산시켰다. 이들은 추운 겨울에도 주말마다 광화문광장에 나와 촛불을 들었다. 한겨레는 촛불과 가장 가까이 있었던 언론사였다. 이는 경향신문과 오마이뉴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진보언론을 비판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이제 진보언론이 없어도 불편하지 않다며 ‘돈 없는 조중동’이란 수식어를 붙이며 과격해졌다. 왜 그럴까. 정답을 찾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중요한 건 이들의 비판을 뉴스룸의 혁신을 위한 에너지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다.

길윤형 한겨레21 편집장은 1163호에서 이렇게 적었다. “가슴 떨리는 감동의 시간들은 지났고, 미디어 환경은 악화되고 있으며, 저희는 중간에 길을 잃었습니다. 다시 한 번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겸손한 ‘한겨레21’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말씀드립니다. 독자님들은 여전히 저희의 벅찬 자랑입니다. 분발하겠습니다.” 오래된 습관을 이겨내기 위해선 복잡한 반성이 필요하다. 미디어오늘도 마찬가지다.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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