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자회사 조선뉴스프레스(구 조선매거진) 출판팀 소속 A씨는 지난 2014년 상사 B씨로부터 성희롱 피해를 당했다. 당시 고위 간부였던 B씨는 함께 잡지협회 교육을 받는다는 명목으로 본인 차량을 이용해 A씨와 이동했다.

B씨는 기혼자인 A씨에게 “좋아하는 남자가 있느냐”고 묻거나 “너는 섹시하거나 예쁘지도 않은데 보호 본능을 일으킨다”며 성희롱 발언을 했다.

서울 상암동 조선뉴스프레스 사옥 인근에서 미디어오늘과 만난 A씨는 4년 전 일을 떠올리며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는 “상사이기 때문에 대놓고 ‘노’(No)를 말할 수는 없었다”며 “B는 은근슬쩍 손을 만지고 수위 높은 발언을 했다”고 말했다.

A씨가 성희롱 피해 사실을 회사에 알린 계기는 인사고과 평가였다. B씨 행태를 더 이상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A씨가 거리를 두기 시작한 뒤, B씨가 A씨를 불러 세워 혼내는 일이 잦아졌다. 이후 인사고과에서 A씨를 포함해 출판2팀 직원들에게 최하등급이 부여됐다.

보복성 인사라고 판단한 A씨는 팀장에게 성희롱 피해 사실을 털어놨다. 사측에 탄원서를 제출했지만 B씨는 감봉 처분을 받는 데 그쳤다. A씨는 “본사인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에게 알리겠다며 시정을 요구한 뒤에야 회사가 B에게 대기발령 처분을 내렸다”고 말했다.

A씨는 성폭력 폭로 이후 2차 피해가 이어졌다고 증언했다. 회사 안에서 ‘상사를 내보낸 나쁜 여자’로 낙인찍혀 눈칫밥을 먹어야 했다는 것이다. 2017년 기존 부서가 적자를 이유로 폐지될 때 A씨는 인사이동이 아닌 권고사직 제안을 받았다. 미뤄뒀던 육아휴직을 낸 뒤 올해 1월 복직한 그는 납득할 수 없는 인사 조치가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첫 번째 발령 부서는 가해자 B씨가 소속된 같은 계열사 잡지사 ‘여성조선’이었다. 회사는 B씨가 다른 팀으로 파견을 가 있다고 설명했지만 A씨는 올해 말 파견 기간이 끝난 뒤 B씨가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에 불안감을 떨치기 어려웠다. 그는 “인사 발령이 난 이상 어쩔 수 없어 더 열심히 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성조선에서 일하는 동안 A씨가 아이템 회의에 참석할 수 있었던 기회는 단 한 번이었다. 데스크에 발제한 아이템은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A씨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다른 동료들이 취재한 녹취를 대신 풀어줬다”며 “기자 중 한 분이 일이 많다면서 넘겨준 특집 기사와 인터뷰 기사 1건을 썼던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그리고 3개월 뒤 여성조선 편집장은 A씨를 불러 출판팀(기존 출판1팀)으로 보낼 것이라고 예고했다. 기자 출신이 아니고 나이가 많아 여성조선 기자 업무와 맞지 않다는 이유였다.

▲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여성조선 편집장은 미디어오늘에 A씨가 업무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주장했다. “3개월 동안 분위기를 익힐 기회를 줬다”는 것이다. 그는 “여성지 기자들은 기본적으로 젊은 친구들이 많다”며 A씨가 후배들과 어울리지 못한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A씨와 함께 여성조선에서 일했던 직장 동료는 “일부러 배제했는지는 모르겠다. A와 같이 아이템 회의를 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라며 A씨가 기자들과 어울리지 못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인사 발령은 예정대로 이뤄졌다. 지난달 25일 새 부서로 첫 출근한 A씨는 책상을 정리하자마자 팀장으로부터 ‘팀이 5월 안에 없어질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A씨는 조선뉴스프레스 대표에게 인사발령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이메일을 보냈지만 돌아온 것은 ‘더 이상 이메일을 보내지 말라. 당신에게 좋을 것이 없다’는 회사 관계자의 말이었다.

조선뉴스프레스 사측은 A씨 인사이동이 불가피했다는 입장이다. A씨가 기존에 일하던 부서가 없어진 상황에서 기회를 주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사측 관계자는 “여성조선으로 발령을 냈는데 부서장이 타 부서로 방출해달라고 요청했다”며 “A씨를 받으려는 부서가 없었다”고 말했다. 폐지가 예상된 부서로 A씨를 보낸 이유를 묻자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A씨를 곧 마케팅부서로 발령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A씨는 육아휴직에서 복직한 지 5개월 만에 세 번째 인사 발령을 앞두고 있다. A씨는 “제대로 업무 배정을 받은 뒤 내가 부적합하다고 판단했다면 알아서 나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음고생을 호소했을 때 회사는 ‘네가 뭘 할 수 있겠어’라는 태도였다. 너무 상처를 받았다”고 말했다.

조선뉴스프레스 노동조합은 지난 19일 노보를 통해 A씨에 대한 인사 불이익 사실을 알렸다. 단체협약에 따라 회사는 조합원의 인사이동을 공고 전에 조합에 통보해야 하며 이의제기가 있을 경우 재심의를 거쳐야 한다. 노조 관계자는 “사측으로부터 A씨 인사이동을 통보 받은 적이 없다”며 “인사가 원칙이나 철학 없이 이뤄지는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김민아 노무사(법무법인 도담)는 A씨에 대한 인사 조치는 현행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육아휴직 이후 불합리한 근무처 변경을 비롯한 ‘불리한 처우’는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지원에 관한 법률 취지에 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노무사는 이어 “성희롱 문제 등을 제기한 당사자에게 당장 불이익을 주지 못하고 이후 틈만 나면 불이익을 주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사례들이 종종 있다”며 고용노동부 등을 통한 실태 조사가 필요할 수 있다고 전했다.

A씨는 “주변에서 원하는 게 뭐냐고 묻는데 나는 자존감을 회복하고 싶다”며 “나는 두 아이 엄마이자 먹고 살아야 하는 비루한 인간이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해도 괜찮은 존재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런 일이 나만의 일로 끝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선례로 분명 남을 것”이라며 “할 수 있는 일들을 다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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