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 비정규직 차별 문제가 ‘방송 정상화’ 국면에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지난 24일 한 방송 작가의 폭로로 드러난 뉴스타파 ‘목격자들’의 임금 체불이나 SBS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의 갑질 행태 등이 대표적이다. 비정규직 제작진 임금을 상품권으로 지급하는 관행이 지상파 3사에서 용인돼온 사실이 드러나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정상화를 기치로 내건 방송사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미디어오늘은 MBC에서 ‘영상PD’로 불리는 비정규직 카메라 기자 A씨로부터 열악한 방송 노동 환경과 정규직과의 차별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MBC는 2012년 노조의 공정방송 파업 이후 정규직 카메라 기자를 뽑지 않았다. 대신 ‘영상PD’란 이름으로 계약직을 뽑았다. 계약직인 이들은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본부장 김연국)에 가입할 수 없다. 계약서상 손해배상 관련 규정 탓에 발언권도 사실상 전무했다.

A기자에 따르면 영상PD 임금은 정규직 카메라 기자 절반도 안 됐다. 일부 영상PD들은 100만원대 임금을 받고 있다. 10년 이상의 카메라 기자 경력이 있어도 200만원을 간신히 넘는 수준. 보통 1년 계약을 한 번 연장해 2년 일하면 계약이 만료된다.

▲ MBC ENG 카메라. 사진=이치열 기자
▲ MBC ENG 카메라. 사진=이치열 기자

MBC는 정규직에겐 ENG카메라를 지급하고 비정규직에겐 ‘6mm’라고 부르는 작은 카메라를 제공한다. 자연스레 취재 현장에서도 차별이 발생한다. ENG카메라가 없으니, 대표로 영상을 찍어 다른 언론사들과 공유하는 ‘풀’단에도 들어갈 수 없다. 촛불집회 당시에도 큰 그림을 찍기 위해 성능 좋은 ENG카메라가 세종문화회관 등 건물 옥상에 배치됐다. 촛불 시민 사이에서 비난을 받는 건 ‘6mm’를 든 비정규직들이었다. 노조 파업 때는 노동 강도가 더 세졌다. 쟁의권이 없는 영상PD들은 파업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적폐’로 분류되곤 했다.

최승호 MBC 사장이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약속했지만 A기자는 “우리를 다 내보낸 뒤 정규직 공채로 채우겠다는 건지, 우리도 큰 잘못 없으면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A기자는 “노조가 복귀했을 때 우리가 듣고 싶었던 말은 ‘수고했다’였다”고도 했다.

MBC는 조직을 개편해 보도국 내 각 부서에 흩어졌던 대다수 영상 기자를 ‘뉴스콘텐츠센터’로 모았다. 무언가 바뀔 때마다, 곧 계약 기간이 만료되는 영상PD들은 불안하다. A기자는 “급여를 정규직과 똑같이 해달라는 것도 아니다. 어느 정도만 맞춰주되 걱정 없이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MBC 정상화 선언 이후 뉴스데스크 얼굴이 바뀌었다. A기자 눈에 들어온 건 뉴스 리포트 끝에 달리는 바이라인이었다. 카메라 기자들은 ‘영상취재 아무개’라고 이름이 뜬다. 하지만 비정규직의 경우 ‘영상취재 아무개VJ’라고 뜬다. A기자는 “채용할 땐 영상PD로 뽑혔는데 이제는 그런 직책이 없다며 VJ라고 표기한다”며 “사실 무슨 기준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분 짓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 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오른쪽 아래 바이라인에 비정규직들은 VJ라고 추가돼있다.
▲ 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오른쪽 아래 바이라인에 비정규직들은 VJ라고 추가돼있다.
▲ 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오른쪽 아래 바이라인에 정규직들은 이 '아무개'라고 이름만 나온다.
▲ 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오른쪽 아래 바이라인에 정규직들은 이 '아무개'라고 이름만 나온다.

미디어오늘은 MBC 영상기자회, 보도국 뉴스콘텐츠센터 간부들에게 입장을 요구했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 MBC 홍보부 관계자는 30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회사 차원에서 비정규직 정책에 대해 TF에서 논의 중”이라며 “개별 계약직 직원의 계약 만료 시기가 돌아올 때 연장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작가들의 노동 환경과 처우도 열악하기 마찬가지다. 한 방송작가는 지난 24일 ‘KBS구성작가협의회’ 홈페이지에 SBS ‘그것이 알고싶다’와 뉴스타파 ‘목격자들’ 제작진으로 일할 당시에 겪은 비정규직 차별과 정규직 갑질 행태를 폭로했다. 작가 ‘인니’(게시판 필명)에 따르면 ‘그알’은 6주 텀으로 돌아갔다. 당시 월급은 160만원이었는데 그마저도 월별로 주지 않고 방송이 끝나면 6주 후 일괄 지급했다. 6주 중 5주는 밤낮·주말 없이 일해야 했지만 수당은 없었다. SBS 담당 PD는 “여기는 똑똑한 작가가 아니라 말 잘 듣는 작가를 원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폭로 이후 비난 여론이 커지자 SBS 측은 “전반적으로 조사를 진행해 문제점이 발견되면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SBS ‘그알’의 사례는 SBS 본사의 문제지만 뉴스타파 ‘목격자들’의 경우 뉴스타파와 독립(외주)제작사 모두의 문제다. 최저임금도 받지 못했다는 ‘인니’ 폭로에 대해 뉴스타파는 지난 26일 이를 인정하고 미지급금 731만원을 작가들에게 지급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 독립PD는 “뉴스타파에서 보통 ‘목격자들’ 한 건당 제작비를 1000만원 정도 지급하고 평균적으로 한 달간 제작한다”며 “조연출, 카메라, 작가 등 최소 인력의 인건비도 안 나온다”고 말했다. 부족한 제작비로 인해 제작진 내 가장 힘없는 작가는 최저임금도 받지 못한 채 일해야 했다. 이 PD는 “그래도 뉴스타파는 다른 방송사와 달리 2차 저작권을 독립(외주)제작사·독립PD 쪽에 준다”고 전했다.

그 외에도 ‘인니’는 같은 글에서 한 EBS PD가 ‘야, 너는 그래서 정규직이 안 되는 거야’, ‘야, 내가 이런 것까지 해야겠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사례, 한 KBS PD가 술을 마시고 회의에 들어오는데 이를 말리지 못한 조연출이 다른 스태프들 앞에서 대신 죄인이 되었던 사례 등도 폭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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