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대선으로 가닥이 잡히는 가운데 정치권이 결선투표제 도입을 두고 활발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단일화 논의만 이어가다 투표일을 맞았던 이전까지의 대선 사례를 고민해볼 때, 다당제 구도가 펼쳐진 현 상황에서 결선투표제가 정책 경쟁 선거가 가능케 하는 하나의 장치라는 주장이 나온다.

국민의당과 정의당 등이 현재 가장 활발하게 결선투표제 도입에 주력하고 있다. 국민의당은 안철수 전 대표의 제안에 따라 당론으로 채택해 결선투표제 도입을 추진 중이다. 국민의당은 오는 30일 결선투표제 도입을 위해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역시 29일 대통령 선거에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서 도입하려는 결선투표제 관련 법안은 공통적으로 대통령 선거 결과 아무도 과반을 얻지 못했을 경우 1, 2위 후보가 다시 투표해 1위를 가려낼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실 결선투표제는 조기 대선 국면을 맞아 불쑥 제기된 이슈가 아닌, 대선 국면마다 정치권에서 언급된 ‘오래된 의제’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도 2012년 대선 후보 당시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2차 포럼'에 참석해 '책임안보, 강한 대한민국'이란 주제로 기조연설 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대선 때마다 의제로 결선투표제가 언급되는 이유는 대선 국면마다 대권 주자들이 공약 연구가 아닌 단일화 논의에만 몰두하게 되는 문제 때문이다. 특히 야권의 경우 집권을 위해서라면 후보간 단일화가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공고하다.

또한 단순히 한 표 차이만 나도 결과가 엇갈리게 되는 선거제도 하에서는 50%도 안되는 득표율로도 당선이 가능하기 때문에 대통령으로서의 대표성이 취약해진다.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자들은 대체로 과반수 50% 득표율을 간신히 넘기거나(박근혜 대통령 51.5%) 과반수 득표는 실패한 사례가 적지 않다.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 40.27%를 얻어 당선됐으며 1987년 당선된 노태우 대통령의 경우 심지어 36.64%의 득표율을 기록했음도 당선됐다. 이는 당시 김대중·김영삼으로 야권 후보 단일화 실패의 결과이기도 하다.

다만 일각에서는 결선투표제의 도입은 헌법 개정을 통해 가능한 사안이며 법 개정만으로는 위헌 소지가 남아있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29일 국민의당이 개최한 토론회인 ‘결선투표제의 필요충분 조건’에서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개헌 없이 도입할 경우 “취지가 무색해질만큼의 정치적 혼란이 생겨날 수 있다”는 지적을 내놓았다.

개헌이 아닌 법 제도 도입만으로는 위헌 소지가 남아있고, 이 때문에 선거 이후 결과에 불복한 후보들의 위헌소송 등이 잇따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개헌 또는 이에 준하는 정도에서 후보자들 또는 정치 행위자들 간의 사전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또한 “도입한다면 1차 투표의 당선 기준을 결정하는 등의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 또한 2회 투표제 도입 시 추가선거 비용문제를 어떻게 충당할 것인지에 대한 충분한 대비책과 논거가 제시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 역시 “공직선거법의 개정만으로 절대다수결 선거 방식의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제의 도입은 위헌”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또한 “상대다수결 선거방식 하에서 민주적 정당성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는 장치로서 결선투표제를 마련하는 것이 대의제 민주주의에 충실한 입법”이라고 설명했다.

상대 다수제는 과반을 넘지 않더라도 후보 중 가장 많은 득표율을 점하면 당선되는 제도로 현 대선 제도가 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절대다수제는 득표율이 특정 상한선을 반드시 넘어야 당선이 된다. 현행 헌법이 상대 다수결 선거 방식에 근거하고 있으므로, 절대다수제를 근거로 하는 결선투표제 도입은 헌법 위배 사항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다만 헌법이 상대 다수제를 전제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대선과 국회의원 선거는 상대 다수제로 실시하지만 헌법 어디에도 대선이나 총선을 상대 다수제로 실시해야 한다는 명문화된 규정은 없다. 상대다수제를 명문화한 조항은 공직선거법”이라고 말했다. 즉 헌법이 아닌 상대 다수제를 규정한 공직선거법 개정을 통해 결선투표제 도입은 충분하다는 취지다.

헌법을 둘러싼 다양한 해석의 여지들이 나오지만, 결국 중대한 위헌 사유가 아닌 이상 해석의 여지가 다른 정도로는 대의 민주주의의 상징인 의회에서 결정된 법안을 뒤집기는 쉽지 않다. 공론화 과정을 통한 논의와 공직선거법 개정안 통과만으로도 충분히 도입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위헌이 아니라는 해석도 상당수다.

노회찬 대표는 “현행 헌법은 ‘대통령 당선인 결정방식’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공백을 두고, 그것을 법률에 위임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김진욱 변호사(참여연대 공동운영위원장)는 “(다수 의석을 차지한 당이 의석수를 무기로 날치기 법안 처리를 하지 못하게 막은) 국회선진화법 역시 다수결 원리를 고려해볼 때 위헌 소지가 없지 않다. 국회선진화법을 두고 헌법재판소는 의회가 결정할 사항이라고 했다. 그런 사례를 비춰보면 헌재가 (결선투표제 도입 이후 위헌이라고) 뒤집을 가능성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해석했다. 결국 의회의 논의 과정을 통해 도입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특히 결선투표제는 단일화 논의를 줄이는 대신 후보 간 정책 경쟁 기회를 늘린다는 점에서 장점이 많은 제도로 꼽힌다. 유권자에게 두 번에 걸쳐 신중하게 후보를 고를 기회가 주어지며, 특히 진보와 보수 세력으로 갈려 정치권의 지난한 후보 단일화 과정을 거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결선투표를 통한 후보 단일화가 되며, 이 과정에서 정의당과 녹색당 등 군소 정당에게도 좋은 정책을 내걸고 유권자들에게 선택을 받을 기회가 주어진다.

▲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가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의당 전국청년대회 특강에 참석, 참석자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결선투표제의 도입을 둘러싸고 정치권은 입장 차를 보이고 있다. 현재 야권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받고 있는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의 경우 현재 결선투표제가 필요는 하지만 위헌 문제가 걸려있어 내년에 치러질 조기 대선에 바로 도입하기는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문 전 대표의 경우 단일화 과정을 통해 속속 등장하고 있는 야권 대선 후보들의 지지율을 모두 자신의 지지율로 끌어와 공고히 1위 자리를 다지는 것이 당선에 유리하기 때문에 결선투표제의 즉각 도입에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으로 풀이된다.

박지원 전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26일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해 “안 전 대표가 제안을 하니 문 전 대표는 자기가 먼저 결선투표제를 제안했다면서도 반대한다”고 꼬집었다.

현재 결선투표제를 가장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대권주자는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다. 

2012년 대선에서도 안철수 전 대표는 문재인 전 대표와의 단일화를 둘러싸고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후보를 사퇴한 바 있다. 또한 현재 안 전 대표는 대권주자 중 지지율 4위에 머무르고 있어 결선투표제가 도입되지 않을 경우 단일화 과정을 거쳐 또 다시 대선 완주가 어려울 수 있다는 상황도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안 전 대표는 29일 국민의당이 주최한 결선투표제 토론회에서 “50% 이상 지지율을 받는 대통령이 이번에 반드시 당선돼야 한다”며 “현안 과제가 많은데 지금이야말로 강력한 리더십을 가지고 많은 개혁을 해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바람직한 제도에 대해 어렵다고 해서 하지 말자고 하는 건 언어도단"이라고 꼬집었다. 

결선투표제를 둘러싸고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엇갈리지만, 결선투표제 자체를 정치공학적 논의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김진욱 변호사는 “결선투표제 도입 논의는 30여년 전부터 불거진 논의다. 현실 정치와 연관된 정치공학적 논의같지만 선거제도는 결국 선거 기간을 맞아 개편 논의가 이뤄질 수 밖에 없고 (조기 대선을 앞둔) 이번 역시 선거제도 개편 논의 과정에서 다시 불거진 것이라고 봐야한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또한 “특히 지금은 정치 세력이 분열돼있으며 야권이 집권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본격적으로 도입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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